1. ‘도덕성’에 관한 고찰
1) Freud의 도덕성에 대한 주장
2) 도덕성에 대한 Piaget의 주장
2. Kolhberg의 도덕발달 이론
1) Kolhberg의 딜레마
2) Kolhberg의 도덕성 발달 단계
3) 이론의 예시와 검증
4) Kohlberg 이론의 검증
Ⅲ. Kohlberg 이론의 특징과 시사점
1) Kolhberg의 이론의 특징
2) Kohlberg 도덕 발달 단계의 시사점
Ⅳ. Kohlberg 이론에 대한 비판점과 그에 따른 후속 연구
1) 콜버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점
2) Kohlberg 이론에 기초한 도덕성 발달에 대한 후속 연구
Ⅰ. Kohlberg의 생애
콜버그(Lawrence Kohlberg, 1927-1987)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인지심리학의 기수이며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소년들의 반응을 토대로 Piaget의 도덕발달이론을 정교화하고 확장시켜 나간 학자이다.
-자신이 추구했던 도덕적 이상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다간 교육자로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스승으로 기억되고 있다.
콜버그(Lawrence Kohlberg)는 1927년에 뉴욕주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부유한 실업가였다. 그는 예비학교 출신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17세의 어린 나이에 선원생활을 시작하여 20세가 될 때까지 세계를 여행하였다. 그 후 그는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여 2년 만에 1949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대학의 박사 과정에 입학한 그는 임상심리학과 아동 발달에 관심을 보였다. (대학에서 그는 철학과 문학을 통해 도덕적 전통을 배웠으며, 대학원 과정에서 Bruno Bettlheim, Carl Rogers와 같은 분들로부터 임상적 이론과 실제에 관한 지도를 받았다) 그 당시 학계는 정신분석학이나 행동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때였지만 콜버그는 피아제 이론에 심취하게 되어 발달관계에 입각한 도덕성을 규명하려는 새로운 착상을 하였다.
콜버그는 자신의 논문 계획서대로 피아제의 도덕발달의 2단계를 10-16세 소년들에게 확장시켜 적용하는 도덕발달의 단계 구조를 만들고, 이를 시카고 지역 소년들을 통해서 검증해냈다. 이렇게 해서 박사 과정 9년 만에 1958년 박사학위 논문(<10-16세까지 사고와 선택유형발달>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마쳤다. 이 때부터 그는 논문작성에 참여했던 소년들을 3년마다 면담하면서 그들의 도덕발달을 주술에 걸린 듯 20여 년이 넘도록 추적하였다. 콜버그는 1987년 보스턴 항구의 해변가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도덕발달과 도덕교육에 몰두하였다.
콜버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곧 이어서 교수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제일 먼저 초빙되는 곳이 예일대학교이었다. 이어서 모교인 시카고 대학교(1962)로 옮겨 8년을 봉직한 후에 다시 하버드 대학교(1968)로 초빙되어 죽을 때(1987.4)까지 이곳에서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였다. 그는 하버드의 대학 안에 “도덕교육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도덕성 발달 및 교육연구를 추진해 나갔다(문용린, 1988: 102). 그러나 그는 도덕적 이상주의와 현실간의 괴리로 인해 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59세에 생을 마치기까지 정의를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Ⅱ. Kohlberg의 도덕성 발달 이론
1. ‘도덕성’에 관한 고찰
심리학자들은 도덕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정의적 요소, 인지적 요소, 행동적 요소를 가정하여 연구해왔으며 각각의 입장에 따라 초점을 맞추는 측면이 다르다. 먼저 정신분석이론가들은 도덕발달의 정서적 측면을 강조한다. Freud에 의하면 자녀가 부모를 얼마나 좋아하는가가 부모의 도덕기준을 내면화하는데 영향을 준다. 그리고 부모의 도덕기준을 내면화한 아동은 그것을 위반했을 때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인지발달이론가들은 도덕의 인지적 측면 또는 도덕적 추론을 강조하였고 도덕에 대한 아동의 사고방식이 성숙하면서 도덕적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해왔다. 사회학습이론가와 사회정보처리 이론가들은 어떻게 아동들이 나쁜 행동을 억제하고 유혹에 저항하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1) Freud의 도덕성에 대한 주장
프로이드에 따르면 초자아는 남근기에 발달하는데(3-6세) 그 시기에 아동들은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과 같은 욕망 때문에 동성부모에 대한 적대적 경쟁심을 경험하게 된다. 우선 소년의 경우,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적대감이 형성되고,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를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아동들은 아버지의 도덕기준을 포함한 여러 속성을 내면화한다. 프로이드는 남성의 초자아가 아동초기에 출현해서 6-7세에 성숙되며 이에 따라 오이디푸스 갈등이 해소된다고 가정했다.
소녀들은 아버지의 애정을 두고 엄마와 경쟁하기 시작하는 남근기 동안에 비슷한 갈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측되나, 소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느끼는 것만큼 어머니를 그렇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어머니들은 소녀들을 결코 거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도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를 어쩔 수 없이 동일시하면서 두려움을 해결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드는 여성들의 초자아가 남성들에 비해 더 약하다고 믿었다.
2) 도덕성에 대한 Piaget의 주장
Piaget은 도덕 발달의 기본골격을 마련하고 거기에 두 단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도덕 전 단계를 먼저 설명했다. Piaget에 따르면, 학령 전 아동들은 규칙에 대한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거나 규칙이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공기놀이게임에서 도덕 전 단계의 아동들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놀이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하고 놀이규칙을 임의로 만들었다. 다만 게임이 서로 교대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도덕 전 시기가 끝날 무렵(4-5세)에 아동은 규칙에 따라 놀이하는 손위 아동의 행동을 주시하여 모방함으로써 규칙을 알게 된다. 그러나 도덕 전 단계의 아동은 아직 규칙이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합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1) 사실적 도덕성의 단계
6-10세의 아동은 규칙과 신념에 대한 강한 존중감을 발달시키고 그것에 항상 복종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타율적 도덕단계의 아동들은 규칙이란 권위적 인물이 일방적으로 부과하며 매우 신성하고 결코 변경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위급한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중에 '도로규칙'을 위반했을 때에도 어린 아동은 그 행동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타율적 도덕단계의 아동들은 규칙을 절대시한다. 이때 아동들은 행위자의 의도보다는 행위의 객관적 결과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쉽다. 예를 들어 우연히 컵 15개를 깨뜨린 아이가 잼을 훔치려다 컵 한 개를 깬 아이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즉 자신이 나쁜 행동을 하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상대적 도덕성(자율적 도덕성)의 단계
10-11세가 되면, 도덕발달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자율적 도덕단계의 아동들은 사회규칙들이 변경될 수 있으며, 규칙이 사람들의 동의여하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임의적 합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규칙이란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위배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제 아동은 행동 자체의 객관적 결과보다는 의도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다.
2. Kolhberg의 도덕발달 이론
Kolhberg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10, 13, 16세의 소년들의 반응을 토대로 Piaget의 도덕발달이론을 정교화하고 확장시켜왔다. 딜레마를 보고 소년들은 두 가지, 즉 규칙, 법, 권위적 인물에 복종하는 것과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규칙과 명령을 어기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Kolhberg는 Piaget가 도덕성을 타율적 도덕성과 자율적 도덕성으로 양분한 것은 도덕성 발달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본 것이라고 생각하고, Piaget가 주로 어린이를 연구의 대상으로 한 것에서 성인까지 확대하여 도덕성 발달을 3 수준 6 단계로 확대하여 제시하였다. Kolhberg는 그의 도덕성 연구에서 질문지를 사용하였다. 그는 질문에서 단순하게 "예" 혹은 "아니오"라는 응답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논리에 관심을 두었다.
하인즈가 약을 훔치다
“유럽의 한 부인이 특수한 종류의 암을 앓아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 부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약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약은 같은 마을에 사는 어느 약사가 최근에 발명한 라디움 종류의 약이었다. 그 약을 만드는 데는 원가가 상당히 비싼데다가 그 약사는 약값을 원가의 10배나 요구하였다. 라디움을 200 달러에 구입해 가지고 그 조그만 약을 2,000 달러에 팔려고 한 것이다. 병든 부인의 남편인 하인즈는 돈을 구하기 위해 아는 사람들 모두 찾아 다녔으나 그 약값의 절반밖에 안 되는 1,000 달러밖에 마련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하인즈는 그 약사에게 가서 자기 부인이 죽어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그 약을 1,000 달러를 받고 싸게 팔거나, 아니면 외상으로라도 자기에게 팔아주면 다음에 그 돈을 갚겠다고 간청했다. 그러나 그 약사는 "안 됩니다. 그 약은 내가 발명한 약인데, 나는 그 약으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절망에 빠진 하인즈는 결국 약방을 부수고 들어가서 자기 부인을 위하여 그 약을 훔쳐내었다.”
콜버그는 소년들의 도덕적 추론구조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 남편은 약을 훔쳤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만 하는가?
☞ 약제사는 그렇게 터무니없이 비싼 약값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 약제사가 부인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한가?
☞ 만약 정당하다면 그리고 부인이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약제사를 더 심하게 처벌해야 할까?
1) Kolhberg의 딜레마
2) Kolhberg의 도덕성 발달 단계
(1) 제1수준, 전인습적 : 전도덕성
도덕적 선악의 개념은 있으나, 준거는 권위자의 힘이나 개인적 욕구에 관련시켜 해석한다.
① 1단계(주관화 - 복종과 처벌지향)
하인즈가 약을 훔치는 것은 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판단한다. 권위자의 벌을 피하고, 권위에 복종한다. 3세-7세에서 나타나는 이 단계는 벌과 순종을 향하여 있다. 놀이 친구를 고자질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나이 또래의 어린이는 “차라리 말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매 맞을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② 2단계(상대화 - 상대적 쾌락주의)
약을 훔쳐서라도 하인즈는 자기 아내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시기이다. 자신의 욕구충족이 도덕 판단의 기준이며, 욕구 배분의 동기는 있으나 자신의 욕구충족을 우선 생각한다. 8세-11세의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이 단계는 순진한 도덕적 상대주의(naive instrumental relativism)에 있게 된다. 앞 선 질문에 대하여 어린이는 오히려 다음과 같이 답변할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고자질하지 않겠어요.” 제 2단계의 어린이들은 고도로 발달된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든지 모든 사람이 동등한 분깃을 받도록 공명정대함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그런 어린이들은, 자신들은 잠을 자야 되는데, 왜 더 나이가 많은 어린이들이 더 늦게까지 자지 않아도 되는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2) 제2수준, 인습 수준 : 타율 도덕성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대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며 사회질서에 동조하고자 하고 힘 있는 사람과의 동일시를 하려 한다. 다른 사람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사회 지향적 가치기준을 갖는다.
③ 3단계 (객체화 - 착한 아이 지향)
하인즈가 약을 훔치는 것은 약사의 권리를 침해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대인 관계 및 타인의 승인을 중시한다. 12세-17세의 청소년에게 나타나는 이 시기는 상호 인격적 일치가 나타난다. 청소년은 다른 사람의 관점과 의도를 이해할 수 있고, 고려할 수 있다. 정의는 항상 다른 사람을 부정하고 해치지 않는 옳은 것에 대한 인습적 형상(image)을 포함한다. 아무리 반항적인 청소년일지라도 항상 그들의 도덕적 개념을 유지해 주는 동년배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의 도덕적 판단의 특징적인 결과는 보다 덜 반항적인 청소년들과도 마찬가지이다.
④ 4단계 (사회화 - 사회질서와 권위 지향)
법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하인즈의 행동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시기이다.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무를 다한다. 18세-25세의 시기에 주로 나타난다. 이 때에는 법과 질서가 호소력이 있다. 친구의 비행을 말할 것인가, 아니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행위가 법을 어겼는가? 또는 공공의 질서를 심각하게 방해 하였는가 이다. 정의는 자신의 의무를 행함으로, 자기 자신의 사회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소수의 권리에 대한 예리한 감각은 없다. 가장 성숙한 측면이 탈 인습적 측면이다. 여기에서 도덕적 관습이 이해된다. 그러나 다른 것을 고려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3) 제3수준, 후인습수준 : 자율도덕성
자신의 가치관과 도덕적 원리원칙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별개임을 깨닫게 되면서 개인의 양심에 근거하여 행위를 하게 된다.
⑤ 5단계 (일반화 - 민주적 법률)
하인즈가 약방문을 부수고 들어간 것은 잘못이나 인명을 구하기 위한 일이므로 용서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시기이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원리에 따라 행동한다.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공리주의, 가치기준의 일반화를 추구한다. 25세 이상의 시기에 나타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상호 유익을 위하여 합의를 시도한다. 그러므로 소수까지 포함된 모든 개인의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 모두의 관심거리가 된다. 어떤 친구의 비행을 말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이제는 그 친구가 그 행위를 하게 된 이유에 달려 있게 되고, 가능한 여러 행동이 그 친구와 보다 넓은 공동체에 끼칠 영향력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의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⑥ 6단계 (궁극화 - 보편적 원리)
법이나 관습 이전에 인간 생명이 관여된 문제로서 생명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보편적 도덕 원리를 지향한다. 스스로 선택한 도덕 원리, 양심의 결단에 따른다. 제 6단계에 있어서(극히 소수만이 단계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에 나이를 들 수가 없다) 보편적 도덕의 원칙을 인식하게 된다. 사회적 질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와 모든 사람을 결속시키는 도덕적 원칙에 대한 존중이 극에 달하게 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지고의 측면에 인도하기 때문에 의무적이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의 정의는 모든 주장에 대하여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결코 수단으로만 여겨지지 않고 목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⑦ 7단계 : 우주적 영생을 지향하는 단계
콜버그는 말년에 7단계를 추가한다. 그것은 도덕 문제는 도덕이나 삶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주적 질서와의 통합이라고 보는 단계이다. 예수, 간디, 마틴 루터 킹, 공자, 소크라테스, 칸트, 본 회퍼, 테레사 등의 위대한 도덕가나 종교지도자, 철인들의 목표가 곧 우주적인 원리이다. 우주적인 원리가 속하는 것은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율과 같은 곳에서 드러난다. 생명의 신성함, 최대다수를 위한 최선의 원리, 인간 성장을 조성하는 원리 등이 우주적인 원리에 속한다.
하인즈의 행동에 대한 도덕발달단계별 반응 예시
(Shaffer, 1993 송명자, p287)
단계 1
괜찮다
훔친 약값이 실제로는 200불 밖에 안 될 것이다.
나쁘다
남의 것을 함부로 훔치는 것은 죄가 된다. 약값이 비싸므로 비싼 것을 훔친 만큼 죄가 크다.
단계 2
괜찮다
약국 주인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또 언젠가 갚을 수도 있다. 아내를 살리려면 훔치는 수밖에 없다.
나쁘다
약사가 돈을 받고 약을 파는 것은 당연하다.
단계 3
괜찮다
훔치는 것은 나쁘지만 이 상황에서 훔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아내를 죽도록 버려둔다면 비난 받을 것이다.
나쁘다
아내가 죽더라도 남편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약을 훔치지 않았다고 해서 무정한 남편이라고 할 수 없다.
단계 4
괜찮다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약사가 나쁘다. 아내를 살리는 것이 남편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약값은 반드시 갚아야 하고, 훔친데 대한 처벌도 받아야 한다.
나쁘다
아내를 살리려면 하는 수 없지만. 그래도 훔치는 것은 나쁜 행동이다. 개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규칙은 지켜야 한다.
단계 5
괜찮다
훔치는 것이 나쁘다고 하기 전에 전체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이 경우 훔치는 것은 분명 나쁘다. 그러나 이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라도 약을 훔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쁘다
약을 훔치면 아내를 살릴 수 있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하인즈가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훔친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단계 6
괜찮다
법을 준수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하라면 법을 어기더라도 생명을 구하는 것이 더 수준이 높은 행동이다.
나쁘다
암환자는 많고 약은 귀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약이 돌아갈 수는 없다. 이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감정이나 법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무엇이 이성적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참고) Piaget와 Kohlberg의 도덕성 발단 단계 비교
Piaget
Kohlberg
사실적
도덕성
(6-
10세)
- 규칙이란 권위적 인물이 일방적으로 부과하며 매우 신성하고 결코 변경될 수 없음
- 행위의 객관적 결과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쉬움
전인습
수준
(자아 중심적인 특징)
단계 1
(3-7세)
처벌과
복종지향
-처벌을 피할 수 있거나 힘을 가진 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도덕적 행위라고 판단
-처벌받는 행위는 나쁜 행위이며 그렇지 않으면 옳은 행위
상대적
(자율적)
도덕성
(10-
11세)
- 사회규칙은 변경될 수 있음
- 행동 자체의 객관적 결과보다는 의도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판단
단계 2
(8-11세)
상대적
쾌락주의
-자신이나 타인의 욕구 충족 여부를 기준
인습수준
(다른 사람의 판단과 의견을 고려, 사회의 인습· 규칙에 동조)
단계 3
(12-17세)
대인간계 조화를
위한
도덕성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행위가 도덕적 행위
-착한 소년-소녀지향
단계 4
(18-25세)
사회질서
및
권위유지
-현재의 법이나 질서와의 일치 여부가 기준
후인습 수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원리에 비추어 도덕
판단)
단계 5
(25세 이상)
사회계약으로서의
도덕성
-사회적 합의에 의한 도덕판단
-융통성 있는 법의 개념
단계 6
보편적 원리에 의한 도덕성
-스스로 선택한 도덕적 원리에 따른 양심에 의해 도덕적 행위 결정
-도덕적 원리는 추상적이고 보편적 원리
3) 이론의 예시와 검증
문제 상황
“수학 시험 시간이다. 주관식 한 문제가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는다. 어제 저녁에 한번 풀어봤는데 해법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그 문제를 풀던 연습장이 쉽게 손닿는 곳에 있다. 감독 선생님의 눈도 피할 수 있다. 이 시험은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중요한 시험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 1단계 : 만약 발각되어 처벌받을 위험성이 전혀 없다면 부정행위를 하겠다고 말 할 수 있다. 또는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 있다 해도, 만에 하나 발각되면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는 등 신체적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안 하겠다고 말 할 수도 있다.
● 2단계 : 내신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말 할 수 있다. 또는 내가 부정행위를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의 내신이 불리해져도 나의 내신만 높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부정행위를 할 수도 있다.
● 3단계 : 선생님에게 발각되지 않아도 옆의 친구들이 보고 나서, 나를 부정행위 잘하는 놈이라고 놀려댈까 봐 하지 않을 수도 있다.
● 4단계 : 처벌에 상관없이,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상관없이,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이며 교칙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무조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안 할 수 있다.
● 5단계 : 단순히 교칙이나 사회 규범에 어긋나기 때문이 아니라, 부정행위가 사회에 보편화되면 사회구성원들이 살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아주 넓은 시야에서 생각하고 부정행위를 안 할 수도 있다.
● 6단계 : 극히 일부의 철학자들에게나 나타나며,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4) Kohlberg 이론의 검증
미국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연령증가에 따라 전인습 추론(1,2단계)은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 약 22세까지는 인습적 추론의(3,4단계) 사용이 증가하였다. 또한 후인습 추론(5,6단계) 도 연령에 따라 증가되었다. 그리고 10-16세 소년들이 5,6단계 추론을 결코 사용하지 않는데 비해 24세 된 성인들은 약 10%가 후인습 수준에 있었다. 비슷한 연령별 추세가 멕시코, 버어마, 타이완, 터어키, 중앙아메리카, 인도, 케냐, 그리고 나이제리아 등에서도 입증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인습 후 수준이 도달하는 것은 아니며 사실상 모든 사회에서 성인 대부분의 도덕추론수준은 인습적 도덕수준(3,4단계)에 머물러있다. Kohlberg에 의하면, 이와 같이 도덕발달이 멈추거나 한 단계에 고착되는 이유는 개인이 현재 수준의 도덕적 추론방식을 반성할 충분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Ⅲ. Kohlberg 이론의 특징과 시사점
1) Kolhberg의 이론의 특징
(1) 단계들이 불변의 연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입은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은 반드시 순서에 따라 각 단계를 거쳐 간다. 다시 말해서 도덕 발달은 다른 모든 발달처럼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진행되므로 하룻밤 사이에 지고의 도덕군자로 변신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2) 단계들은 계층적 통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낮은 단계는 높은 단계의 도덕적 추론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높은 단계는 낮은 단계의 도덕적 추론을 포괄하고 이해한다. 단계의 이동은 도덕적 추론을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인지적 구조가 재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3) 발달은 인지적 불균형이 생성될 때 발생한다. 도덕적 난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는 인지적 판단이 서지 못한 상태를 불균형이라 한다.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에서 현재의 인지적 판단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새로운 인지적 구조로 전환하여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발달의 특성이다.
2) Kohlberg 도덕 발달 단계의 시사점
콜버그의 인지적 접근의 도덕성 발달이론은 인지적 요인을 중시하는 교육에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콜버그는 교육에서 도덕적 추론능력 혹은 도덕 판단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토론식 수업을 제안했으며, 이것의 효과를 여러 연구에서 입증했다. 그는 학교에서 도덕성의 문제를 어린이에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도덕성 판단 단계에 맞게 소집단을 형성하여 도덕성 문제 및 도덕적 가치 갈등에 대하여 토론을 하게 함으로써 도덕성발달이 하위단계에서 다음 상위단계로 이행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어린이는 자신의 현재 도덕성 단계보다 한 단계 상위단계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며, 보다 상위단계의 판단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콜버그는 도덕성 발달이론은 부모나 교사들이 어린이의 연령에 따라 어떻게 도덕 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유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예컨대, 아주 어린 아동들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는 즉각적인 처벌로 어린이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다 성숙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사회적 제재보다 보편적인 가치기준 혹은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적절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이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하였으나 이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인 서구문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과 또한 도덕 판단력과 도덕적 행위는 일치하는가에 문제가 있다.
Ⅳ. Kohlberg 이론에 대한 비판점과 그에 따른 후속 연구
1) 콜버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점
콜버그 접근법은 원리주의 혹은 연역적 도덕적 추론양식, 피아제식의 경성 발달단계의 개념, 수수하게 언어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연구 방법론, 그리고 지나치게 제한된 초기 발달단계와 관련하여 비판을 받아왔다. 콜버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점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덕적 추론양식
콜버그의 도덕적 추론양식에 대한 비판은 철학적 관점에서 제기되어 왔다. 그 동안 도덕 이론들은 근본 원리주의 방식을 고수하여 왔다. 다시 말하면, 줄곧 어떠한 “기본적인 원리”를 중심으로 도덕 이론들이 형성되어 온 것이다. 도덕 이론들이 근본 원리를 이론의 중심에 끌어들인 까닭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도덕적 문제 사태에 봉착했을 때, 그러한 원리를 근거로 연역적인 도덕적 판단을 하기를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연역적 도덕 추론 양식”의 도덕성은 원리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콜버그는 자신의 도덕 발달 이론의 철학적 배경으로 이러한 접근법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정의는 곧 근본원리에 해당되었다.
도덕 철학자들은 1960년대 이래 이러한 접근 방식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소위 말하는 “원리주의” 혹은 “연역적 추론양식”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툴민(S. E. Toulmin)이다. 툴민은 합리적 윤리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기존의 방법론들은 거짓 가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객관적 접근법의 옹호자는 마치 견문이 넓은 사람들은 가치에 관하여 일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하고, 주관적 접근법의 옹호자는 마치 사람들은 저마다 가치의 표준을 다르게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툴민의 지적은 사람들이 정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도덕적 문제에 대한 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는 콜버그의 관점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된다. 도덕적 문제에서 귀납적 추론 양식의 타당성을 제시한 것이다.
콜버그 이론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콜버그의 전기 이론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인간을 격리된 개인적인 의사 결정자로서 상정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의 이론적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직관적 상상으로부터 자신의 도덕적 관점을 구성하는 존재이다. 즉, 인간이 자신이 속한 특수한 공동체 관계나 역사와 무관하게 보편적 표준에 입각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2) 발달단계 개념
콜버그는 발달의 모델로서 계단에 비유되는 피아제식 경성 단계 개념을 채택하였다. 이 개념에서 보면 발달이란 한 순간에 한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해석된다. 단계와 단계 사이가, 비록 중첩을 인정한다 하지만,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매우 경직된 단계 개념이다.
콜버그는 행위자의 도덕판단에 초점을 둠으로써 개인적 상대성과 문화적 상대성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불변적 단계 계열을 통해 발달하고 있는 문화적으로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콜버그에 있어서 보다 높은 판단의 단계란 양심이나 내면화라는 모호한 개념들보다는 한결 간결하게, 단계를 도덕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형식적 특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개인의 행위가 그의 판단에 대응하는 한, 그리고 그 판단이 높은 단계에 속하기에 그만큼 더 선명하게 도덕적인 것으로 보는 한, 우리는 그 행위를 문화적 변수와 별개의 또는 상황적 편의의 요인과 무관한 상태에서 “도덕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콜버그의 이와 같은 경성 단계 개념을 주장하지 않는다. 인지발달의 단계들은 사회 문화적으로 보편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글러는 콜버그의 경성 단계 모델에 관한 잘못을 두 가지 측면에서 지적하고 있다. 우선, 아동들은 모든 인지발달 영역들에서 대부분의 현상에 관하여 전형적으로 다중적인 사고방식들을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인지 발달 변화는 아동들이 새로운 사고 방식들의 소개뿐만 아니라, 이들 방식에 의존하여 사고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는 변화를 포함하며, 그러한 변화는 일종의 계단식의 진보라기보다는 일련의 중첩되는 파동들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3) 연구 방법론
심리학자들은 콜버그가 도덕적 판단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연구 방법론을 심각하게 비판하여 왔다. 그의 연구 방법론은 순수하게 언어적인 방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콜버그는 인터뷰를 통해 피험자들의 도덕 판단에 대한 정당화 자료를 수집하였다. 곧 피험자들이 인터뷰 과정에서 제공하는 언어에 오로지 의존하여 평가를 하였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인지적 과정을 자기 스스로 보고하는 방식이 지닌 심각한 한계들을 지적하여 왔다. 심리학자들은 암묵적 과정들과 무언의 지식이 인간의 의사결정에 대해 갖는 영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험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도덕적 판단들을 정당화하도록 요구하는 표준 교격화된 인터뷰 자료는 도덕적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지구조에 관한 평가가 “도구에 제한”되어 버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도구로부터 자유로운 평가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은 인터뷰 자료가 전혀 가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언어적 자료 산출물들은 마음의 복잡한 작용들을 자칫 잘못 나타내거나 혹은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준 규격화된 자료의 타당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4) 초기 발달단계
많은 학자들은 콜버그가 주장하였던 도덕적 판단 발달의 초기 단계들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콜버그는 아동기(5-8세)에 주로 나타나는 1단계와 학동기(9-11세)에 주로 많이 나타나는 2단계는 인습 이전 수준으로, 1단계의 타율적 도덕성과 2단계의 개인주의, 도구적 목적, 교환의 단계가 이에 해당한다. 1단계의 타율적 도덕성은 처벌을 받기에 규칙을 어기지 않으며, 복종을 위한 복종을 하고, 또한 사람과 재산에 대한 물리적 손상을 피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여긴다. 2단계의 도구적 목적의 도덕성은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될 때만 규칙을 따르며,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 부합되도록 행동하고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한다. 옳은 일이란 공정한 것, 요컨대 공정한 교환, 거래, 협약이다.
그러나 데먼(W. Damon), 아이센버그(N. Eisenberg), 호프만(M. Hoffman) 등은 어린 아동들이 콜버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어린 아동들은 타인들의 신체적 및 심리적 상태들을 해석하는 인지적 능력,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정서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적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불만을 경감시키려고 노력하는 행동 목록을 가지고 있다. 어린 아동들은 콜버그의 이론에서처럼 자기 중심적 반응 혹은 강한 힘에 대한 복종으로 그렇게 제한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센버그는 콜버그의 잘못이 추상적 정의를 지나치게 강조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엄격하고 절대적인 단계를 가정한데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녀에 따르면, 개인의 도덕적 판단은 문화적 특성이나 순간적 상황에 의해 영향받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발달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예측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높은 수준의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내일은 더 낮은 수준의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판단을 하는가 하면,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더 낮은 수준의 판단을 하는 과제 특징적인 경향을 보이므로, 도덕적 사고의 단계를 엄격하게 계단식으로 가정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호프만의 연구에 따르면, 아동은 아주 어린 시기에서부터 이타적 행동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피아제가 말하는 감각운동기에 해당하는 2세 전후의 아동들은 다른 사람이 고통이나 어려움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3-7세가 되면 다른 사람이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누구인지도 안다. 비록 그 사람이 자신과 다른 감정이 있고, 지금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적절하게 반응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공감 능력이 아주 어린 아기에게서도 발달되고 있다는 점이 콜버그의 초기 발달단계의 내용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2) Kohlberg 이론에 기초한 도덕성 발달에 대한 후속 연구
앞서 비판점을 살펴보았듯이, 1980년대 이후 콜버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는 자신의 접근법에 대한 몇 가지 한계들을 인정하고, 비판자들의 입장을 수용하여 수차례에 걸쳐 기꺼이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였다. 그는 도덕적 영역은 매우 넓고 다양하여, 어떤 하나의 접근법으로 그것을 개념화하고 또한 평가한다는 것은 그러한 다양성을 철저히 논하거나 혹은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였다. 도덕 심리학에는 다른 과정들(processes)과 구성들(constructs)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콜버그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단계에 대한 정의와 면담 자료를 점수화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인정하였고, 딜레마 토론을 통한 개인의 인지적 성장에 초점을 두었던 도덕교육 접근법을 “정의 공동체”의 건설로 전환시켰다. 그는 또한 자신의 3수준 6단계 이론을 모든 도덕적 영역을 포괄하는 추론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정의와 관련한 사고로 협소화시켰다.
콜버그 자신도 비판의 일부를 수용하여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였지만, 뿐만 아니라 이후에 신콜버그파는 콜버그 이론에 대한 그러한 비판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이론적 정립을 시도하였다. 신콜버그파란 콜버그의 주요 이론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인간의 도덕성 발달을 설명하고자 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지칭하며, 대표적 학자들로는 레스트(J. Rest), 나베츠(D. Navaez), 투리엘(E. Turiel) 등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인지를 강조하고, 아동은 도덕에 관한 인식을 스스로 구성해 나가는 존재로 이해하며, 발달의 개념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습 이후 사고에 여전히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콜버그 이론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콜버그 이론이 갖고 있는 위의 비판들을 수용하여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이론을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1) 귀납적 추론 양식
그러나 툴민을 비롯한 현대 도덕 철학자들은 선험적인 도덕적 원리에 기초한 합의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은 하나의 특별한 공동체의 도덕적 체계는 다른 공동체의 도덕저거 체계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보편적 도덕적 체계에 대한 요구를 포기한다. 이들은 특정 공동체에서 몇 가지의 범례적인 경우들에 대해 실제적인 합의에 이르는 것은 선험적인 추상적인 원리들을 근거로 합의점을 찾으려는 소득 없는 노력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주장한다.
많은 현대 도덕 철학자들은 도덕성을 특수한 시간에 있는 특수한 공동체에 대해 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도덕적 회의주의, 곧 모든 도덕적 담론은 단순히 개인적 선호의 승인이라는 신념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확립된 집단 관습과 전통에 대한 마음 없는 혹은 전혀 의심 없는 순응도 아니며, 그리고 도덕적 이상을 폐기하는 것도 아니다. 툴민과 같은 철학자들은 도덕적 사고가 반드시 원리의 측면에서 가장 믿을만하게 작동한다는 생각에 도전하였다. 사람들이 원리에 합의하지 못해도, 구체적인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 서로 정당한 이유에 입각하여 합의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도덕적 사고의 가장 진보된 형식이 도덕적 결정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과는 무관한 개인의 사고 작용이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그들은 생명 지원체계의 제거에 대한 의학적인 윤리적 지침들의 발달을 예로 들고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수년 동안 뇌사 상태에 빠져 생명지원체계에 의해 삶을 인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 상황적 특수성과 사회적 특수성이 의학적 “윤리”를 결정하게 된다. 의학적, 철학적, 법학적, 그리고 정치적 권위자들에 의해 합의가 형성되고, 그것이 생의학적 윤리의 지침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의 철학자들은 도덕을 하나의 본래적으로 타고난 사회적 현상, 곧 한 공동체의 특별한 경험들과 심사숙고 속에 체현된 사회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결국 도덕성이란 사회적 조직 그리고 집단 합의와 분리된 별개의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이는 관습적 도덕성이 상대주의가 무비판적 혹은 지각없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공동체의 특수한 역사와 맥락에 있는 도덕적 이상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콜버그의 구조/내용 구분에 대한, 인습 이후에 관한, 범 문화적 보편성의 주장에 관한, 그리고 도덕적 사회에서의 논쟁과 심사숙고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함축들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신콜버그파는 도덕 심리학에서 콜버그식의 연역적 도덕적 추론보다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들은 도덕적 민감성, 판단, 동기, 인격 등의 요소들이 도덕적 행동을 산출하는데 작용하는 네 가지 구성요소라 말한다. 각기 다른 구성요소들은 도덕성 발달에 대한 각기 다른 접근법들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콜버그도 후기에 이르러 도덕적 판단과 발달의 6단계 모델에 입각한 연역적 도덕적 추론 중심의 도덕교육 접근법에서 차츰 벗어나 도덕성의 사회적 구성에 초점을 둔 정의 공동체 접근법에 애착을 보였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콜버그가 추론 능력의 계발 중심의 접근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회적 맥락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도덕적 추론 능력을 생각했던 것이다.
(2) 도식 이론
신콜버그파는 오랜 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단계라는 용어보다는 도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도식이란 말은 요소들 간의 관계를 포함한 몇몇 자극 현상의 정신적 표상으로 이루어지는 인지적 구조로서, 피아제가 생물학적인 지식에서 빌어 온 개념이다. 도식이란 한마디로 아동 자신의 경험적 활동에 의해 조직화한 행동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 ‘이해의 틀’을 도식 또는 구조라고 말한다. 신콜버그파가 피아제가 사용하였던 도식이란 용어를 다시 사용하는 까닭은 인지구조의 유형이 몇 가지 중요한 방식에서 콜버그의 단계들과 다르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신콜버그파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도식이란 말이 기존의 콜버그의 단계 개념과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인지구조들을 “조작”, 곧 콜버그의 “정의 조작”과 같은 측면에서, 정의하지 않는다. 둘째, 콜버그의 계단식 발달의 경성 단계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어느 한 때에 어느 특정 단계에 속한다는 콜버그의 가정도 인정하지 않는다. 셋째, 도덕적 도식의 보편성에 대한 선험적 주장을 하지 않는다. 즉, 신콜버그파는 도식에서의 범 문화적 일치에 대해 경험적 의문을 품고 있다. 끝으로, 내용을 근본적으로 무시하고 구조만을 대상으로 하는 콜버그의 점수화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차별적 의미에서, 신콜버그파는 단계라는 용어 대신에 도식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콜버그의 이론에서는 발달이 정신적 조작의 측면에서 설명된다. 즉, 보다 나중의 단계들은 이른 단계보다 더 복잡한 정신적 조작들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발달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콜버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보다 많은 것들을 보다 복잡한 방식에서 처리하게 되면서 발달한다. 그러나 신콜버그파는 이와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도식들은 세계에 관한 일반적 ‘내용’의 표상들이다. 이들의 도식 개념에 따르면, 결과물 혹은 내용의 측면에서 인지구조의 발달을 정의한다. 즉, 이들의 도식 개념에 따른 발달은 인지구조를 결과물 혹은 내용의 견지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개념이 보다 복잡해지고 또한 규범적으로 더 적절하다면, 그 사람의 인지구조는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신콜버그파는 발달 도식으로 ‘개인적 이익’ 도식, ‘규범들의 유지’ 도식, 그리고 ‘인습 이후’ 도식 등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물론 이 세 가지 도식들이 도덕 판단의 완전한 의사결정 모델을 나타내는 것으로 제안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도식들은 콜버그의 단계들과는 다르지만, 아직 콜버그의 주요 개념들의 핵심들은 유지하고 있다. 다만 콜버그의 단계 개념의 핵심과 구분하기 위해, 신콜버그파는 다른 용어들을 사용한 것이다. 예컨대, 콜버그가 사용하였던 “법과 질서”하는 용어 대신 “규범들의 유지” 도식이란 말을 쓴 것이다. 신콜버그파가 말하는 발달의 도식은 콜버그가 정의 조작의 측면에서 단계들을 기술하였던 것보다는 사회도덕적 관점의 측면에서 발달을 설명하였던 방식과 유사하다.
(3) 영역 접근
신콜버그파는 발달의 모델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콜버그의 경직된 계단 모델에서 파동 모델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새로운 발달의 모델은 보다 발달된 사고를 점차적으로 사용하고 선호하는 빈도수가 증가하는 측면에서 상승운동으로 표현한다. 신콜버그파에 있어서, 발달이란 한꺼번에 한 계단이 변화하는 전환이 아니라, 보다 낮은 사고의 형식들에 대한 보다 높은 사고의 형식들의 점진적 증가를 의미한다. 이는 신콜버그파가 기존의 콜버그의 경성 영역 접근법에서 연성 영역 접근법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다.
(4) 도덕성 개념의 확장
콜버그는 길리건과의 논쟁을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단계들이 ‘정의'의 범위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곧 자신의 도덕적 딜레마와 점수화 체계는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그리고 자기가 한 구성원인 집단에 대한 특수한 관계와 의무들을 다루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제한되어 있다고 인정하였다. 콜버그는 이후에 6단계의 원리를 “인간 존중”으로 다시 정의하고, 여기에서 정의의 원리와 함께 자비의 원리를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자신의 6단계에 의해 포괄되었던 도덕성의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약 반세기에 걸친 인지발달 이론의 역사에서 도덕적 사고에서의 정의 정향과 배려 정향이 이론적 차원에서 공히 확신을 갖게 된 것은 근래에 이르러서였다. 최근 들어 인지발달 이론은 길리건의 경험적 연구결과를 받아들여 기존의 정의 정향과 함께 배려 정향을 구조화된 전체들로서 정의하는 인식론적 가정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콜버그 이론체계에서 ‘정의 구조들’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한 대안이다. “정의”는 이제 더 이상 도덕철학의 유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글은 문학 공부에서 자주 접하는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김윤식 편 『문학비평용어사전』(일지사, 1976),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민음사, 1976), 이명섭 편 『세계 문학비평용어사전』(을유문화사, 1985), C. R Reaske 『How to Analyze Poetry』(Thor Publications, 1966), M. H. Abrahms 『A Glossary of Literary Terms』(Holt, Rinehart and Winston, 1971) 등의 책들을 참고하였으며 여기에 실린 내용을 종합하여 알기 쉬운 언어와 문장으로 정리하였다.
개념 표시와 함축(含蓄, implication): 한 낱말이 단일한 의미나 개념만을 나타내도록 쓰여졌을 때 그 낱말은 의미나 개념을 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그 낱말이 표시하고 있는 단일한 의미를 외연(外延, denotation)이라고 한다. 반면 한 낱말이 어떤 단일한 의미를 표시할 뿐만 아니라 문맥상으로 보아 다른 여러 뜻을 암시할 때, 이를 함축 혹은 내포(內包, connotation)라 한다. 외연적 의미(개념 표시)는 일반적으로 객관적 설명이나 논술에 쓰이고, 내포적 의미(함축)는 독자의 지적 이해 이외에 감각적 내지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글, 즉 문학이나 웅변 등에 쓰인다. 알레고리, 비유, 상징 등이 모두 함축적 사용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계몽주의(啓蒙主義, enlightenment): 봉건적 구습(舊習), 종교적 전통에 의존하는 무지(無知), 미신(迷信), 도그마 등에서 벗어나, 이성(理性)과 사실의 논리를 믿고 자유 사상, 과학적 지식, 비판 정신 등을 고취하려는 정신 운동이다. 그 바탕은 인간의 존엄을 자각하게 하려는 합리주의이다. 일반적으로 18세기를 <이성의 시대>, <계몽의 시대>라고 하거니와, 특히 18세기의 프랑스 및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반종교적(현세적), 반형이상학적(과학적) 사상을 자연의 인식뿐만 아니라 사회 인식에까지 넓혀, 넓은 의미의 계몽, 즉 교육의 보급으로 사회적 부자유와 불평을 제거하려는 합리주의 사상 운동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상은 일찍이 영국에서부터 싹이 텄는데, 그 대표자는 로크이다. 프랑스에서는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절대주의가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로크의 사상이 볼테르와 몽테스키외에 의하여 도입되자, 계몽사조라는 형태를 이루어 급진적 경향을 띠게 되고 디드로, 튀르고 등에 의해 더욱 철저화되었다. 독일은 통일된 근세 국가를 이루지 못한 상태여서 이 사상이 프랑스만큼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구어체(口語體, the colloquial style): 현대의 음성 언어를 바탕으로 그와 가까운 어투의 문장으로 쓰려는 문자 언어의 한 문체로 문어체에 대립된다. 즉, 일상 회화에서 접할 수 있는 말투를 글로 옮긴 경우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으며, 소설이나 신문 기사의 문장에 이런 문체가 많다. 물론, 희곡에서는 지문(地文)을 제외하면 대부분 구어체로 구성되어 있다. 연설에서도 보통 경어라든지 완곡한 표현법을 쓰는 구어체가 나타난다. 해라, 하게, 하오, 합쇼 등의 공손법 어투는 모두 구어체로 사용되는데, 그 가운데 <해라체>만은 특별히 문어체의 종결 어미로도 통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문장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의도가 따르기 때문에 현대의 모든 문장이 구어체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기교주의(技巧主義, technicalism): 1930년대 순수 문학 또는 순문학이란 개념의 출현과 함께 문학에서 형식이나 기교를 중시한 기교파들의 특징을 일컫는 말이다. 박용철(朴龍喆), 김영랑(金永郞) 등이 창간한 시동인지인 <시문학>과 <9인회> 및 그 기관지 <시와 소설>, <해외 문학>, <시원(詩苑)>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들은 1920년대에 전개된 프로 문학 이론의 사회성․정치성․철학성에서 독립된 순수한 예술 영역의 문학을 수립하려 하였다. 즉 작가의 방법적 태도, 창작상의 기술적 가치의 재인식을 강조했다. 그들은 결국 언어 예술가로서의 시인의 직능, 다른 사회적 영역으로부터 구별되는 문학의 독자적 영역,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구별 등을 중시하여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로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기교주의는 음(音)이나 형(型)의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경향을 보이며, 시대 정신과 비평 정신을 무시한다. 현실적 발언의 거부와 민중으로부터의 도피는 그 후 후반기(後半期) 동인들의 반발을 겪기도 했으나 해방 직후 <청록파> 등에 연결되면서 1950년대, 60년대 한국시의 한 주류를 형성한다.
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엽까지 독일,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걸쳐 전개된 문학과 기타 예술상의 근대 문예사조와 그 운동을 뜻한다. 이성과 지성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neo-classicism)에 반대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사상(想像)과 정서를 강조하는 데 그 기본 특징이 있다. 이 낭만주의는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등으로 문명 개화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신이 고양되고 <질풍노도(疾風怒濤, Strum und Drang)>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낭만주의는 매우 다양한 위상(位相)과 국면(局面)으로 전개되어 일률적으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조는 대체로 개인주의, 자연숭배, 원시주의, 중세와 동방에 대한 관심, 철학적 이상주의, 자유사상과 종교적 신비주의, 정치적 권위와 사회 관습에 대한 반항, 육체적 정열의 고양, 정서와 감정의 순화(醇化), 병적 우울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백조(1922)>를 중심으로 얼마간 퇴폐와 우울을 주제로 하는 병적 낭만주의 경향이 전개되었으나, 혁신적인 운동이 되지는 못하였다.
로망스(romance): 이 말은 본래 로마의 직접적인 영향권 속에 있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사용되던 로마 말(즉 라틴어)의 방언을 뜻하였다. 언어학에서는 그들의 말을 로망스어라 부른다. 그들은 중요한 문서나 저술은 이미 죽은 말이 되어버린 라틴어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의 오락을 위한 시와 이야기는 구어체의 방언으로 기록하였다. 그렇게 기록된 이야기를 로망스, 로만즈, 로만조라 불렀는데, 이는 로망스 방언으로 쓴 하찮은 글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특히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쓰인 로망스는 환상적으로 이상화된 기사의 무용담과 연애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그 후 로망스 하면 환상적 무용담, 연애담을 뜻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로망>이라는 말이 유럽 대륙에서 <소설>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그에서 연유한다. 12세기에서 15세기까지 크게 번성한 로망스 문학의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었던 것은 옛날 영국의 전설적 왕이었던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 프랑크족의 왕이었던 샤를르마뉴 대왕과 그의 기사들 및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에 관한 전설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합리주의의 발흥으로 로망스 문학은 조소거리가 되었다. <돈키호테>는 로망스 문학에 대한 조소로 일관한다. 합리주의에 기초한 사실주의는 로망스의 주관적인 열망, 현실을 초월하는 이상화의 경향과 반대된다. 로만티시즘은 그 명칭이 암시하듯이 로망스 정신의 근대적 부활이었다. 18세기 중엽, 막연한 공포와 신비를 추구한 이른바 <고딕(Gothic) 문학>,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 셸리 부인의 「프랑켄슈타인」 같은 모험 소설, 「폭풍의 언덕」 같은 거의 초인간적인 사랑 이야기 등은 로망스 문학의 후예들이고, 이 가닥은 「데카메론」, 「돈키호테」 등의 사실적 이야기의 전통과 대치되어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반사실적인 기괴한 문학 즉 카프카나 일부 실존주의 문학에도 로망스의 요소가 들어 있다.
모더니즘(modernism): 현대주의 또는 근대주의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기성 도덕과 전통적 권위를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 도시의 시민 생활과 기계문명을 구가(謳歌)하는 사상적, 예술적 사조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 문학이 퇴조하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노골적으로 대두하는 1930년대에 영미 주지주의(主知主義)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문학 사조를 가리킨다. 이 경우의 모더니즘은 주지주의와 동의어이다. 반낭만주의적(反浪漫主義的) 태도, 지성(知性)과 시각 이미지의 중시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한국 문단에 주지주의 이론을 도입한 이는 김기림, 이양하, 최재서 등이며, 주지주의의 영향을 받고 시를 쓴 시인은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장서언 등이다.
묘사(描寫, description): 근본적으로 말에 의한 사물의 전달은 모두 묘사에 의한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기차가 막 달린다>라는 말도 어떤 물체의 특수한 행위를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의 묘사는 기술적이고 의도적인 것이다. 근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묘사는 배경 묘사일 것이다. 예전에는 주인공의 행위가 벌어지는 장소로서의 배경을 막연히 제시했을 뿐인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배경을 인물의 행위와 직결시킴으로써 배경 묘사는 결국 인간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 대조 또는 비판이 된다고 본다. 다음으로 중요한 묘사는 인물 묘사이다. 인물의 외모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근대 사실주의 문학에서 비롯되어 그 방법도 무척이나 세련되었다. 심리학의 영향으로 심리 묘사가 세련된 모습을 갖게 된 것도 현대 문학의 특징이다.
문체(文體, style): 문체란 원래 라틴어 stilus에서 유래한 말로서 글씨를 쓰는 도구를 뜻하는 말이었다. 문체라는 말뜻은 수사학과 결부되면서 문장 형태의 유형과 혼동된 일이 많았다. 즉, 문장체로서 흔히 구분하고 있는 몇 개의 유형들 즉 우유체․강건체․간결체․화려체 등등의 이름으로 문장 유형을 구분하는 데 문체라는 이름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문체란 문법학이나 수사학처럼 어떤 유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문체란 개인의 사고하는 방법, 감정이나 감각의 차이 같은 특유한 것, 그러한 개별적인 특수성을 문자로 표현해 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국문을 사용하느냐 한문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문체를 국문체와 한문체로 구별하는 경우가 있다. 국문과 한문을 섞어 쓴 문체는 국한문혼용체라 부른다. 또한 현대의 음성 언어를 바탕으로 그와 가까운 어투의 문장으로 쓰려는 문자 언어의 문체를 구어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문어체라 한다.
문학의 교시적 기능(敎示的 機能): 문학 작품은 독자를 가르치는 기능을 갖는다는 말이다. 물론 교시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직접적인 진술로 무엇을 가르치는 일은 드물다. 문학 작품에서 가르친다는 뜻은 강제적이며 규범적인 것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의 작품으로 계몽주의적 작품을 들 수 있는데, 이 광수의 「무정」, 입센의 「인형의 집」 등이 대표적이다.
문학의 쾌락적 기능(快樂的 機能): 독자를 가르치는 교시적 기능과 함께 또 다른 문학의 기능은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즉 문학에는 재미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 「무정」의 경우 분명히 이 작품에서 우리는 사회 개혁의 의욕이나 민족주의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재미를 맛보고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재미와 즐거움이 없다면 차라리 「무정」보다 춘원의 「민족 개조론」 같은 논설을 택할지 모른다.
문학의 현대성(現代性, modernity): 이 말은 시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용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전대의 문학에 비해서 다르면서 현대적인 삶과 관련된 문학으로서 지니고 있는 어떤 특성인 것이다. 이런 문학의 현대성이라는 것이 우리 문학의 경우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은 그다지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역사적인 감각으로 보아 전대의 문학적 특성과는 다른 새로운 현대적인 관심과 성격을 지칭할 수 있는 것으로, 개화 사상의 수용, 낭만주의적인 감정의 해방, 사실적인 인식 태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인생관과 사회관의 반영을 비롯해서 심리적인 내면의 추구, 지성적인 경향 등을 그 윤곽으로 들 수 있다. 따라서, 현대 문학의 기점이란 바로 이러한 현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이다.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 문예사조상의 사실주의는 넓은 의미에서는 공상적이고도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와 대립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경향 또는 양식이다. 사실주의 작가는 낭만주의의 방종한 상상력을 통제하고 동시에 사람의 생활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를 정밀히 관찰하여, 현실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과 그 본질을 파악하고 묘사한다. 대표적 작가로는 플로베르, 공꾸르 형제, 뒤랑뛰 등이다.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 생산 수단이 일부 계층의 사유(私有)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유인 사회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설을 말한다. 이 학설에 따르면 원시 공산주의 사회 이래 생산 수단이 사유화되면서 인류는 계급사회에서 살아왔고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사회로서의 마지막 단계이며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에 의해 타도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주의 사상은 19세기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이론의 기초가 마련되었으며 1917년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함에 따라 전 세계에 혁명이론으로서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사회주의 사상이 도입되어 사회 운동에서 뿐 아니라 문학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문학은 계급 운동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며,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고, 국내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혁명 운동에 참가시키도록 선동해야 한다는 소위 계급 문학 혹은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1920년~30년대의 우리 문단을 주도하였다.
상징(象徵, symbol): 그 자체로서 다른 것을 내포하고 있는 사물 일체를 우선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라비아 숫자는 어떤 수량을, 한글 24자는 각각 어떤 소리를 대표한다. 낱말들은 뜻을 대표한다. 화학의 분자식이나, 기호학의 도표나 도형 등도 모두 어떤 관념, 생각, 형상 등을 대표한다. 이러한 종류의 상징은 <기호>라고도 한다. 국기, 상표, 학교나 단체의 로고, 십자가 같은 종교의 표식 등은 일반적 기호와 구별해 제도적 상징이라고 부른다. 어떤 제도적 집단에 소속한 사람에게 제도적 상징은 큰 의의가 있으나(국기는 그 나라의 국민에게 있어서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상징이다.) 그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의 무의미하다. 문인은 언어와 문자를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만큼 기호적 상징을 주로 사용하여 특히 문학적이랄 수 있는 상징을 찾는 일에 정성을 기울인다. 문학적 상징은 심상의 일종이다. 그러나 일반적 심상이 구체적, 감각적 사물을 환기시키는 낱말이라면 상징은 그런 사물이 암시하는 또 다른 의미의 영역을 나타낸다. <장미꽃>이라는 낱말이 하나의 구체적, 감각적 인상을 되살리는 데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심상이고, 이 장미꽃이라는 심상이 정열, 또는 쉽게 사라지는 사랑의 아름다움 등의 뜻을 가리키든가 암시하면 상징이 된다. 상징은 다른 뜻을 함축하고 있는 심상이라는 점에서 은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일반적인 은유는 두 사실 사이의 유사성, 상호 암시성을 근거로 한 1:1의 유추적 관계에 의존하므로 그러한 유추적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상징과는 다르다. 더욱이 일반적 심상이나 은유가 작품의 한 부분에서 맡은 일을 하는 데 비하여, 상징은 작품 전체(또는 한 작가, 시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의미 또는 암시성의 배경을 형성한다. 따라서, 어떤 심상이 상징인가 아닌가를 가려내는 일은 작품 전체의 의미 또는 암시성이 그 심상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는가의 여부를 가려내는 일이 된다. 해석상의 차이로 한 심상을 상징으로, 또는 한 상징을 심상으로 규정짓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상징주의(象徵主義, symbolism): 상징주의라는 용어는 과학, 철학, 신학 등에서도 쓰이나 예술 분야에 한정해서 보면, 특정 시대와는 관계없이 일반적, 범시대적(汎時代的) 개념과 특정 시대 사조(時代思潮)에 따른 개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범시대적 개념으로서의 상징주의는 예술상의 표현 방법으로 상징을 사용하여 사물, 정서, 사상 등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태도이다. 대상이 초감각적, 형이상학적 실재(實在)이거나, 추상적, 내면적인 것이어서 보통의 수단으로는 표현할 수 없으므로 상징을 사용한다. 시대 사조로서의 개념은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상징파의 예술 운동을 뜻한다. 사실주의, 자연주의, 고답파 등의 외면적․객관적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으로 상징적 방법에 의하여 형이상적 또는 신비적 내용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보들레르를 선구자로 하고 베를렌, 말라르메 등을 지도자로 한 프랑스 상징파의 예술 운동의 노선은 예술지상주의(art for arts sake)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억, 백대진 등이 <태서문예신보>를 통하여 처음으로 이 이론을 소개하면서 프랑스 상징파의 작품도 번역하였다. 이어 <창조> 제 2호를 통해서 일본의 상징파 시인들의 작품이 번역, 소개되었다. <폐허>, <백조>에 이르러 상징적 경향의 작품이 창작, 발표되었다.
서사시(敍事詩, epic): 서사시를 뜻하는 epic(英)은 라틴어의 epicos에서 온 말로 <말>, <이야기>, <노래>를 뜻하였다. 그러므로 서사시란 어떠한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한 또는 음송(吟誦)한 시를 말하는데, 보통 <운문(韻文)으로 된 장편 서사 문예의 일종으로, 신이나 영웅의 행위를 중심으로 민족 집단의 운명적 사건을 장중 웅대(莊重雄大)하게 읊은 객관적 장시(長詩)>를 말한다. 본래 서사시는 어떤 개인적인 작자의 창작으로 생긴 것보다는 민간(民間)에 유전(流轉)하던 신화(神話)나 전설(傳說), 민요(民謠)가 모여서 된 것이다. 우리가 다 아는 서사시는 그리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 등인데, 이 서사시들은 보통 호메로스라는 사람이 쓴 것이라 하지만 사실은 작자가 분명하지 않다. 호메로스가 그 서사시의 작자라 하더라도, 여기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을 호메로스가 창작해 낸 것이라기보다는 그 때 민간에 떠돌아다니고 있는 신화나 전설 같은 재료들을 모아서 편집(編輯)해 놓은 것이라고 하겠다. 서사시는 고대(古代)에 성했던 문학 양식이며, 그 뒤에 오는 시인들에 의하여 그 내용이나 형식이 차차 세련되어 갔다. 소설(小說)이 나타나기 전에는 서사시의 문학적 위치(位置)는 매우 중요시되었으며, 중세기까지만 해도 시라면 당연히 서사시를 가리킬 만큼 그것은 시의 대표적인 양식이었다.
서정시(抒情詩, lyric): 외적 사건보다는 시인 자신의 정서와 사상을 노래한 시이다. <리릭(lyric)>이란 술어는 고대 그리스의 7현금(七絃琴)인 <리라(lyra)에 맞추어 노래부른다>는 데서 나왔다. 서정시는 주관적이고 내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이고 외적 표현인 서사시(敍事詩: epic)와 구별된다. 서정시의 특징은 먼저 이것이 본질적으로 음악과 의미의 융합이며 짧은 것이라는 점에 있다. 또한 이것은 주관적인 개인 의식의 반영인 동시에 구체적인 현실성의 구현이다. 서정시의 종류로는 오우드(ode), 소네트(sonnet), 발라드(ballad) 및 죽음에 대한 비탄의 감정을 표현하는 추도시(追悼詩)인 엘리지(elegy)가 있다. 한국 현대시는 대부분이 서정시에 속하며, 고전 시조 및 일본 시가의 하이쿠(俳句), 와카(和歌) 등은 전통적인 형식의 서정시이다.
소설의 사실성(事實性, reality): 소설은 리얼리티를 지닌 인생의 표현이어야 한다. 소설은 구체적으로 인간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문학이고 작가의 주관에 의하여 꾸며진 픽션이지만, 그것은 곧 리얼리티가 있어야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되고 진실해진다. 거짓말인 소설을 참말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곧 리얼리티이고, 작품 속에 등장된 인물들이 살아서 숨을 쉬고 앞뒤가 잘 맞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리얼리티이다. 그런데, 소설의 리얼리티는 결코 현실 사회에서 보는 사실 자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필연성과 개연성, 다시 말하면 작품 안의 진실성이 곧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작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똑같을 필요가 없다. 본격 소설․예술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리얼리티가 갖추어져 작품에 통일의 효과를 주어야 한다.
소설의 역사성(歷史性, historicity): 단편소설이 인생의 단면을 표현하는 고도로 의장적인 양식이라면 장편 소설은 인간의 개인적인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소설의 역사성을 획득한다. 근대의 복잡한 사회 구조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데 장편 소설의 역사성이야말로 필요 불가결하다. 여기서 복잡한 사회 구조의 반영과 개인적 역사의 서술은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니다. 근대 사회는 그 핵심이 어디까지나 개인이며, 개인주의를 그 시대 원리로 하는 사회이므로 근대 소설에 있어서도 개인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고대 서사시의 경우에는 한 집단과 동격에 놓이는 영웅의 일대기(역사)가 서술되지만, 근대 사회에 있어서의 집단과 동격이 될 만한 개인은 있을 수 없으므로 근대 소설은 한 집단 내에서 가장 문제성이 있는 인물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그 인물이 속한 집단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반영한다. 헤겔이 장편 소설을 가리켜 <부르주아의 서사시>라 부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소설의 주제(主題, theme): P. 라보크는 <소설에서 최초로 존재하는 것은 주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주제를 발견하는 능력이란 그 작가의 기초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제가 제출되기 전까지는, 작가는 어느 것에도 손을 댈 수가 없다. 주제는 소설의 시초요, 전체이다. 주제에 의지하지 않고는 소설은 그 형태를 이룰 수 없다.>라고 하면서 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 마디로 주제야말로 창작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뜻이다. 주제란 작가가 나타내려는 중심 사상으로 작품 전체에 통일적인 맥락을 부여하는 것이다. 안수길(安壽吉)은 <주제의 선명한 파악은 소설 제작의 출발점이며, 종착역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주제는 작품 속에 표현하려는 그 무엇이므로, 그것은 작품의 내용이 되는 것이요, 내용인 까닭에 작가의 사상인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소설의 허구성(虛構性): <fiction>은 라틴어 <fingo>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의미는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상력의 작용을 통하여 만들어진 작품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fiction>이 쓰인 것이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허구성을 지닌다. 소설은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가 현실의 그것과 그대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현실을 취재하되, 개인적 안목과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소설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꾸며 낸 이야기라고 함은 소설이 지니는 이러한 허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꾸며 낸 이야기라는 말은 여러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꾸며낸 이야기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제시 또는 전개되어서는 안 되고, 독자로 하여금 그럴싸하다는 느낌을 자아내야 하는데, 이렇듯 그럴싸하다는 느낌을 자아내는 요소나 성질을 리얼리티라고 한다면, 소설의 생명은 리얼리티의 구현에 있다고 하겠다. 둘째, 그럴싸하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사진과 같이 인생을 재현시킨다는 뜻이 아니고, 소재를 적절히 선택, 배열하여 재구성한다는 뜻이다.
순수시(純粹詩, pure poetry): 1850년에 미국 시인 에드거 앨런 포가 발표한 평론 「시의 원리」에 자극받아 프랑스의 보들레르가 발전시킨 시의 이론이다. 그로부터 말라르메를 거쳐 발레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상징주의의 기본 이념이 되었다. 순수시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시에서 웅변, 교훈, 관념 등 산문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체의 요소를 제거하고, 음악처럼 언어적 의미와 관계없는 효과를 내어야만 진정한 시, 즉 순수한 시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의 의미 요소를 최소 한도로 축소시키고 교란시킴으로써 시의 자율성을 기하려 했다고 보인다. 순수한 시가 암시하는 세계는 말의 의미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음악의 여운처럼 직접적이면서도 형언할 수 없는 세계이다. 20세기의 순수시 이론가였던 브레몽은 시의 음악성보다는 신비경에 파묻힌 자의 기도처럼 최면적이고 주문 같은 효과를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순수시는 산문적인 사고를 유발할 개념이나 낱말을 제외하고 청각적 자극(음악성) 또는 시각적 자극(회화성, 즉 심상)에 주력하는 시라고도 하겠다. 자연히 듣기 좋은 소리, 보기 아름다운 심상만을 골라 쓰므로, 인위적이라는 인상을 짙게 풍기며, 지속적인 긴 작품이 될 수도 없다. 상징주의자들의 좋은 작품들은 실상 그들의 이론에 부합하는 무의미한 음악 같은 순수시라기보다는 오히려 복잡다단한 토론을 불러일으키는 불순한 작품들이다.
시의 리듬: 시가 다른 장르의 문학과 구분되는 가장 특징적인 점은 우선 그것이 운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의 운율은 외형적(外形的)인 것과 내재적(內在的)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외형적인 것, 즉 외형적 운율(external rhythm)을 일으키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같은 말이나 구, 절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운각(韻脚: foot), 음보(音譜: metre), 압운(押韻: rhyme) 등을 따져서 외형률(外形律)을 확보하는 길이 있다. 우리 시조(時調)는 원칙적으로 초장 3,4,3,4, 중장 3,4,3,4, 종장 3,5,4,3과 같은 자수율(字數律)에 의거한다. 이것은 일정한 음보를 사용해서 운율을 확보하고자 한 경우이다. 운각이란, 소리의 강약이라든지 고저․장단을 이용하여 그것을 일정하게 배열함으로써 운율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 시가에서 이런 기법(技法)에 의한 외형률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압운도 우리 시가에서는 실험적으로 쓰인 데 그친다. 음절률(음수율, 자수율)─ 음절의 수를 한 단위로 하여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4,4조 혹은 7,5조 등과 같이 자수율을 말한다. 음절 수의 단위는 언어의 특징과 시의 호흡군에 의하여 결정된다. 음성률─ 음성의 강약, 장단, 고저 등의 속성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경우이다. 영시(英詩)를 비롯한 서구시에서 미터(metre)란 특히 이것을 의미한다. 음성률은 보통 음보에 기준을 두는데, 한 음보는 한 개의 악센트가 주어지는 실러블(syllable)과 그렇지 않은 두 실러블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이다. 영시에서 음보는 약강격, 강약격, 약약강격 및 강약약격의 네 종류로 구분되며, 각 시행(詩行)은 1음보, 2음보, 3음보, 4음보, 5음보, 6음보, 7음보 등 여러 음보로 이루어진다. 또한 이 시행을 중심으로 한 시형으로는 트리올레트, 론도, 마드리갈, 소네트, 오우드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언어에서도 음성의 특징은 있으나, 시에서 그것이 음성률로는 부각되지 못하므로 우리 시에서 음성률은 없다고 본다. 음위율─ 압운을 말한다. 두운(頭韻), 요운(腰韻), 각운(脚韻) 등이 있다. 서구의 경우 라임(rhyme)은 남성운, 여성운 및 각운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한시에서도 압운법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 시에는 실험적인 것이 보일 뿐이다.
시의 어조(語調, tone): 어조란 말하는 사람이 상대편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가 나타난 것으로, 말의 몸짓이다. 이 역시 시의 요소이기 이전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한 요소이다.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고 할지라도, 어조가 다름에 따라 듣는 사람의 느낌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일상 생활에서도 어조가 중요함을 알게 한다. 시는 말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지는 예술인 만큼 이러한 특질을 더욱 섬세하게 활용한다.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 어조에 대하여 특별히 주의하지 않아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담겨진 말투(어조)에서 어떤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에는 각각 그 나름의 어조가 있다. 다만, 그 시가 담고 있는 내용이나 사상, 감정과 얼마나 걸맞는 어조로서 씌어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실증주의(實證主義, positivism): 신과 같은 초경험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경험적․현실적으로 주어진 것만을 지식의 대상으로 하는 근대 철학의 사조이다. 자연주의 문학과 테느의 과학적 비평 등의 기초 이론이 되었다. 이 사조는 자연 과학의 방법과 성과를 토대로 물리적, 정신적 현상 세계의 통일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경험 과학의 방법을 중시하고 사변적 형이상학을 물리치는 것으로 넓게 해석한다면, 그 원류는 로크, 흄 등의 경험론이나 프랑스의 계몽 사상에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콩트의 「실증철학강의」에서 말한 지식의 3단계론을 소개하면, 제 1의 신학적 단계, 제 2의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제 3의 실증적 단계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3단계는 현상을 그 자체로 설명하여 현상 상호간의 법칙을 파악한다.
유머(humour)와 위트(wit): 유머는 성격적, 기질적인 것이고, 반면 위트는 지적인 것이다. 따라서 유머는 태도, 동작, 표정, 말씨 등에 광범위하게 나타나지만, 위트는 언어적 표현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머는 상대방에 대하여 선의를 가지고 그 실수․약점․부족을 같이 즐겁게 시인하는 공감적인 태도이며, 위트는 서로 다른 사물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유사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경구나 격언 같은 압축된 말로 능숙히 표현하는 지적 능력이다. 한편, 유머는 유희 본능과 관계 있어 청중이나 독자의 습관적인 기대를 유희적으로 깨뜨릴 때 성립하며,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흥미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위트 역시 그러한 일을 어느 정도는 하지만 즉각적인 웃음보다는 재빠른 판단력․기발함에 대한 경이감을 자아낸다.
이미지(image): 문학에서 말하는 이미지는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정신 속에 재생시키도록 자극하는 말을 뜻한다. 따라서, 감각적 체험과 관계되는 일체의 낱말은 모두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추상 명사보다 보통 명사, 감각적 지각을 암시하는 형용사, 또는 부사로 수식된 명사와 동사는 이미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학에서 이미지(心像)란 용어는 무척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쓰는데,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논의하는 것이 보통이다. ㉠글을 읽고(또는 말을 듣고) 독자(청자)의 마음에 생긴 감각적 재생, ㉡그런 이미지가 생기도록 자극하는 비유적인 또는 묘사적인 말, ㉢그런 말들이 한 작품 또는 한 작가의 전체 작품, 또는 문학 전통이나 경향에서 특수한 배합 양식을 갖거나 어떤 세계관 또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 위의 구분에서 ㉠이 통용되는 <이미지>의 개념이다. ㉢은 이미지라기보다 <심상의 조직 양식>이란 뜻의 <이미저리(imagery)>라고 보는 것이 옳다. 즉, ㉠은 독자의 심리와 관계되는 것 곧 심상의 효과이고, ㉡과 ㉢은 심상의 원인이 되는 특수한 언어이다.
이상주의(理想主義, idealism): 철학에서의 이상주의란 세계관, 인생관이 현실보다 이상(理想), 이념(理念)에 중심을 두는 사상을 말한다. 즉, 현실주의와 실재론(實在論)의 반대 개념이다. 한편, 예술에서의 이상주의는 이상에 따라 현실을 순화하고 고양하려고 하는 경향 또는 태도를 가리킨다. 물론 모든 예술은 많건 적건 이상적 경향을 가지나, 현실주의(現實主義, realism)와 대립적인 이상주의는 특히 이상화(理想化)를 의식적으로 강조한다. 이상주의도 여러 양상으로 구별되는데, ①대상, 내용면에서 일체의 개별적, 우연적 요소를 제거하고 대상의 유형적 본질을 표현하는 경우와, 인간적 의의와 가치가 풍부한 것을 선택해서 표현하는 경우 ②표현 방법, 형식면에서는 순수한 미적 특성을 위하여 대상을 변형하는 경우와 주체의 개성적 양식 원리 또는 내면 형식에 의거하여 소재의 형성에 강력한 창조적 자유를 발휘하는 경우 등으로 대별된다. 낭만주의, 상징주의, 신비주의 등은 이상주의에 속한다.
이야기(story): 소설이나 서사시, 희곡이 지니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소설을 가리켜 편의상 <적당한 길이의 산문으로 꾸민 이야기>라고 정리하기도 한다. 이 때 이야기는 영어의 <스토리>에 해당하며, 때로는 꾸민 이야기라는 점에서 픽션(fiction)에 해당하기도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하여 제 3자에게 보고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가 된다. 듣는 사람이 현실적 이해 관계 없이 그 보고에 흥미를 느끼면 그 이야기는 재미있는 것이 된다. 그러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발전시키거나 왜곡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꾸민 이야기가 허구(虛構)이다. 이렇게 꾸며진 이야기는 운문으로 들려지다가, 근대에 와서 산문으로 씌어져 읽혀지기도 하고 때로는 연희(演戱)로 제시될 수도 있다. 운문으로 들려진 것은 서사시요, 산문으로 읽혀지는 것이 소설이며, 연희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연극이다.
인물(人物, character): 성격이라 칭할 때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물은 외부에서의 관찰 대상이고, 성격은 인물의 내적 속성이다. 인물은 주로 소설이나 희곡 같은 이야기 문학의 요소로 생각되지만, 모든 문학 작품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서정시나 수필에서도 작가가 창조한 주인공의 성격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성격이 구현되는 것은 소설이나 희곡 등 이야기 문학에서이다. 성격을 구현한다는 것은 곧 인물의 창조를 뜻한다. 특히 소설에서는 인물의 창조라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배경이나 사건은 인물을 있게 하는 바탕이 된다.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 문예상의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뒤를 이어 소설과 연극에서 일대세력을 차지했다. 사실주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려고 하지만, 자연주의는 그 관찰에다 실험을 덧붙이려고 한다. 인간의 윤리를 무시하고 인간의 추악한 면과 야수성을 기탄없이 폭로하여 인간 멸시 사상과 염세 사상을 조장하였다. 자연주의 작가들은 다아윈(C. Darwin)의 생물학 이론과 테에느(H.A.Taine)의 사회 환경 결정론(social determinism)의 영향을 받았다. 이 운동은 인간 사회와 그에 속한 인간들을 마치 자연 과학의 주제를 구명하듯이 객관적이고 진실하게 묘사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았다. 철학에서는 물질을 유일한 실존으로 보는 실재론(實在論, realism)을 말하며, 반자연주의적인 관념론에 대립된다. 일반적으로 문예사조상 자연주의는 넓은 뜻의 리얼리즘의 한 분파로서 생리학․생물학이 인간의 모든 조건을 결정짓는다고 하는 졸라(E.Zola)의 소설들로부터 비롯되는 사조를 의미한다. 그런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차이점은 우선 사실주의가 현실의 총체적이고, 충실한 재현(再現, reproduction)만을 의도하는 예술로서 기록적 소설(記錄的小說)로 만족하는 반면에, 자연주의는 과학적 방법에 의거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려는 의도로 실험적 소설(實驗的小說)을 창조하려는 데 있다. 또 사실주의 소설은 현실 생활뿐만 아니라 과거나 혹은 다른 지역의 생활 모습까지도 묘사할 수 있지만 자연주의 소설은 전적으로 현재의 사실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문장에서도 사실주의는 모든 사람의 이해를 위하여 가능한 한 단순하고 적확한 재현으로 구성의 정연함과 표현의 정확성에 부심(腐心)하는 데 비해 자연주의는 문장의 세련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개성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의식적으로 구성과 표현을 확대하고 있다.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surrealism): 2차대전 후에 처음 다다이즘에 동조했던 시인, 예술가들이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일으킨 문학 운동이다. 공식적인 발족은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 파리에서 「선언문」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비이성적, 비논리적 성질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던 오랜 역사를 가진 문학의 한 가닥이 낭만주의와 더불어 표면화되고 그 후예인 상징주의자들에 의하여 심화되고 다다이즘(Dadaism)에 이르러 잠시 철저한 허무주의로 전락하였다가 사람에 대한 새로운 긍정적인 비전(vision)을 주장하게 된 것이 초현실주의였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 등이 밝혀 낸 무의식의 세계가 새로운 문학의 재료와 방법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무의식은 합리성이나 논리에 의하여 전개되지 않고 비논리적이며 자동적이고 자유로운 연상작용으로 전개된다. 무의식은 욕구와 공포가 논리적 조직을 받기 이전의 상태에서 큰 힘을 가지고 꿈틀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적인 조작을 받지 않고 그대로 표출되기 위해서는 꿈꾸는 듯한 상태에 있어야 하며 그 순간에 의지를 발동시키지 않고 손이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자동기술(automatic writing)>의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초현실주의자는 정신 수련을 하거나, 특수한 환경을 조성하거나, 또는 환상을 일으키는 약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를 비판한다. 의식 세계의 사실은 인위적인 조직과 합리화의 과정을 통하여 꾸며낸 것이므로 그만큼 인간의 진정한 의식에서 멀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볼 때 표면적 사실은 거짓인 셈이다. 초현실이야말로 진실이며, 초현실을 파악하고 전달하는 것은 인간을 조작된 일상의 사실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현실, 아니 진실을 덮어버리는 일체의 도덕, 철학, 미학은 부정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사람은 우주와 진실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한 진실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인간 해방을 강조하는 혁신적 태도가 그 전 시대의 다다이즘과 크게 다른 점이며, 또한 1930년대의 다수 초현실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를 겸한 배경도 된다. 물론 공산주의와 자리를 오래 할 수는 없었다. 초현실주의는 일종의 인식론이기도 하다. 그 성질상 조직적 체계는 이루지 못하지만, 초현실주의자는 감각으로 파악한 세계가 진실된 세계임을 믿는다. 그들은 전 시대의 낭만주의자들처럼 감각적 인상을 시적 비유에 의하여 표현하려 하지 않고, 감각적 체험에 대하여 무의식이 보내는 반향을 그대로 쏟아놓으려고 한다. 이 때 무의식은 일련의 낱말을 흘려 보내는데, 그 낱말들은 모두 심상의 꼴을 하고 있다. 그 심상들은 각자 그 나름대로의 생명을 갖고 있어서, 심상과 심상의 연결은 논리적 서술에서처럼 주종 관계에 있지 않고 서로 대등적이다. 초현실주의 문장은 동등한 힘을 가진 심상들의 계속적 병치 및 공존이다. 세상의 진실은 모든 사물이 독자적인 생명을 가지고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초현실주의의 주제는 사랑, 특히 본능적인 성욕, 온갖 본능적 욕망의 예찬, 현실의 도덕적 의미와 관계없는 자유 분방, 현실에 대한 반항, 요즈음 문제가 되는 이른바 <검은 해학(black humor: 터무니없으나 강력한 아이러니)> 등이다. 초현실주의는 미학과 도덕이 발전하기 이전의 원시 미술에 매혹을 느끼며, 도착 심리에도 흥미를 느끼며, 장르의 구별은 물론 반대하며, 문학과 기타 예술의 구별도 되도록 없게 하려고 한다.
카타르시스(katharsis 또는 catharsis): 이는 비극의 효과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 설의 중심 관념을 이룬 것이다. 비극을 보거나 자기 고뇌를 하소연함으로써 억압된 애상과 공포를 해소하여 일종의 정화된 쾌감을 얻는 것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 제 6장의 <비극은 엄숙할 뿐만 아니라 어떤 크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이 완결된 한 행위의 모방이다. 그것은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을 포함하며 그럼으로써 그와 같은 정서의 카타르시스를 달성한다.> 라는 말의 해석에 관해서 르네상스 이후 많은 이견(異見)이 있었다.
유미주의(唯美主義, aestheticism): 탐미주의(眈美主義), 심미주의(審美主義),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라고도 한다. 이 주의는 예술이란 그 자체로서 자족(自足)한 것이며, 어떠한 이면적 목적이 그 속에 내포되어서는 안 되고, 윤리적이라든지 정치적 또는 다른 비심미적(非審美的) 기준에 의하여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유미주의 지지자들은 계몽주의에 의식적(意識的)으로 반기를 들어왔다. 그들은 이해 관계, 실용성, 의지의 속박은 인간의 현실 생활에 속한 것이므로 정신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비약을 저해하는 요소들로서 예술 자체의 순수함과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보들레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유미주의의 구호를 실제 인생에 적용시켜 예술을 위해서 현실 생활 전부를 바쳐야 한다는 예술 지상주의를 주장하였다. 플로베르, 말라르메 등도 그와 같이 예술의 절대적 존엄성을 신봉한 문인들이었다.
풍자 문학(諷刺文學): 풍자(Satire)란 대상을 왜소화시키는 방법을 통해 조롱․멸시․농락한다. 비판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나타나서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통쾌미는 없으나, 찌르고 질식시킬 만한 신랄미(辛辣味)와 심각미(深刻味)가 있다. 이와 같이 인물과 사회 현실의 모순, 불합리, 결점 등을 재치 있게 파헤친 작품을 풍자 문학이라고 하고, 그러한 시를 풍자시라 한다. 대상에 따라 첫째, 개인 공격의 저급한 풍자, 둘째,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정치적 풍자, 셋째, 인류의 전체를 조소하는 고급 풍자, 넷째, 자기가 자기를 해부하고 비판하고 욕하는 자아 풍자가 있다.
한국 현대시의 기점(起點) 문제: 현대시란 현대적 특성을 나타낸 시를 말하는데, 현대적 특성, 즉 현대성(現代性: modernity)이 무엇이냐에 따라 현대시의 기점을 각각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현대성을 19세기 부르주아 근대문학에 반대하고 일어난 20세기의 계급주의 문학에서 찾는다면, 1923년부터 일어난 신경향파와 프로 문학이 현대시의 기점이 된다. 개인적, 낭만적 의식을 극복한 주지성과,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 등을 현대성으로 본다면, 주지주의 문학과 시문학파 이후가 된다. 민족 주체성과 자아의 확립 등을 현대성으로 보면, 제 2차 대전이 끝나고 해방이 된 1945년이 현대시의 기점이 된다.
행동주의(行動主義, behaviourism):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학 운동이다. 1929년 전 세계에 걸친 경제 공항, 히틀러의 집권, 파리 폭동과 좌우 정치 세력의 충돌 등으로 조성된 혼란과 허무 속에서 자의식(自意識)으로의 침잠에 반발하여 작품을 통한 영웅적 행동을 중요시한다. 앙드레 말로와 생텍쥐페리가 그 대표자이다. 말로는 『왕도』, 『인간의 조건』등에서 행동을 실험하고, 생텍쥐페리는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등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묘사하여 독특한 휴머니즘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였다.
허무주의(虛無主義, nihilism): 인간 생존의 무의미성, 허무성을 주장하는 사상이다. 실재(實在) 및 진리를 부정하고, 진리 인식의 가능성조차도 부정한다. 윤리적으로 보편적 도덕 가치를 부정하며, 종교적으로는 신(神)을 상실한 인간 존재의 허무성을 주장하며, 정치적으로는 사회, 국가의 질서를 부정하여 무정부주의(anarchism)로 발전한다.
현대소설의 특징: 20세기에 와서는 18, 19세기의 주요한 경향을 그대로 계승한 전통주의적인 소설도 많이 쓰여지고 있으나, 조이스(Joyce; 1882~1941), 프루스트(Proust; 1871~1922), 울프(Woolf; 1882~1941) 등에 의해서 이른바 <의식(意識)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경향이 하나의 주류가 되었다. 문학사의 일대 변혁을 이룬 이 경향은 인간의 심층(深層) 의식, 곧 잠재 의식을 추구하고, 외부 묘사나 연대기적(年代記的) 서술 방법을 파기하였다. 이에 따라, 1인칭의 주관적 표현이 많아지고, 또한 현재형(現在形)인 것이 많아졌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프랑스에서 나타난 신소설(新小說: nouveau roman)은 심리주의 소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작가가 정리하기 이전의 자연 발생적인 지각(知覺)이나 충동 또는 기억을 재현한다. 이밖에도, 서구에서는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이 여러 방향으로 시도되고 있다. 한국의 소설은 대체로 이광수의 『무정(無情)』(1917)에서부터 근대 소설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여 대개는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의 경향을 보이면서 전통적 소설 작법에 의존한 예가 많았다.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 이 말의 어원은 편집자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고를 편집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제 1철학(존재의 제일 원리 및 그 원인을 취급하는 부분)을 물리학 다음에 편집하면서 「ta metata physics(물리학 이후의 책)」이라 이름 붙인 데 있다. 그리하여 그 후 물리학상의 순리학(純理學), 혹은 우주의 본체․실체․실재에 대한 추상학(抽象學)을 metaphysics란 말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 말이 동양에서의 역경(易經) 계사편(繫辭篇)에 나오는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형이상학으로 번역된 것이다. 형이상학은 초감각적인 세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순수한 사고에 의해 인식하려는 학문이다. 이러한 생각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은 경험을 인식의 원천으로 삼는 경험론, 더 나아가 유물론이다. 그런데 칸트가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물 자체(物自體)의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한 이후, 불가지론(不可知論)이나 실증주의(實證主義)는, 객관적 실재(實在)를 인정하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을 일률적으로 형이상학이라 불렀다. 이런 입장에서는 유물론도 형이상학이라 규정된다. 그러나, 그 후 칸트가 해결하지 못한 존재 자체의 문제를 계기로 해서 피히테, 셀링, 헤겔의 형이상학이 새롭게 전개되었다. 이들의 철학은 주관과 객관의 대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그들 양자의 변증법적 발전을 주안(主眼)으로 하는 형이상학이었다. 이런 입장은 칸트 이전의 형이상학은 반(反)변증법적인 낡은 형이상학이라고 비판하였다.
휴머니즘 문학: 자아(自我)의 각성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본성에 눈뜨고 인간을 존중하며 인간의 자유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그 정신적 기반으로 삼는 문학이다. 본래 휴머니즘은 문예 부흥과 함께 발전한 사조인데, 문예부흥은 신만능(神萬能)의 중세 체제(中世體制)에서 인간의 자유,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는 일종의 반체제(反體制) 운동이었다. 인간 존엄성이 말살당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대에 들어오면서 휴머니즘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즉, 기계 문명의 여파, 인간들의 소외감(疎外感)으로 현대인들은 과연 미래에도 인간성의 옹호가 가능할 것인가의 회의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휴머니즘이 부각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휴머니스트 작가는 토마스 만, A. 지드 등이다. 한국 문단에서 휴머니즘 문학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편집성 성격장애는 일반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계획된 요구나 위협으로 보고 지속적인 의심과 불신을 갖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음의 양상들을 갖습니다. 충분한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관찰하고 해를 끼치고 기만한다고 의심합니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충정이나 신뢰에 대한 근거없는 의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어떠한 정보가 자신에게 나쁘게 이용될 것이라는 잘못된 두려움 대문에 다른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기를 꺼립니다.보통 악의 없는 언급이 사건에 대해 품위를 손상하는 또는 위협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지속적으로 원한을 품습니다. 즉, 모욕이나 상처줌 혹은 경멸을 용서하지 못합니다.다른 사람에겐 분명하지 않은 말을 자신의 성격이나 평판에 대한 공격으로 지각하고 곧 화를 내고 반격합니다.정당한 이유없이 애인이나 배우자의 정절에 대해 반복적으로 의심합니다.
분열성 성격장애
분열성 성격장애는 일생동안 사회로부터 철퇴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형성 능력과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고 지나치게 내향적이며 온순하고 빈약한 정서가 특징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괴벽스럽고 외톨이처럼 보입니다. 가족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친밀한 관계를 바라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습니다. 항상 혼자서 하는 행위를 선택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성적 경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즐거움을 취하려 하지 않습니다. 일차 가족 이외의 친한 친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에 무관심합니다. 감정적 냉담, 유리 혹은 단조로운 정동의 표현을 보여줍니다.
분열형 성격장애
분열형 성격장애 환자의 행동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도 괴이하거나 이상하게 보입니다. 사회적 고립, 텔레파시 같은 마술적 사고, 관계망상, 피해의식, 착가, 이인증 등이 특징입니다. 관계망상이 있을 수 있으며, 행동에 영향을 주며 소문화권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이상한 믿음이나 마술적인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 신체적 착각을 포함한 이상한 지각경험을 하기도합니다. 이상한 생각이나 말을 하며, 의심하거나 편집증적 사고도 있습니다. 부적절하고 제한된 정동과 기이하거나 편향되거나 괴이한 행동이나 외모가 있으며 일차가족 이외에 친구나 심복이 없습니다. 친하다고 해서 불안이 감소하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보다도 편집증적인 공포와 관계되어 있는 과도한 사회적 불안이 있습니다.
히스테리성 성격장애
히스테리성 성격장애 환자들은 흥분을 잘하고 감정적인 사람들로서, 다양하고 극적이며 외향적이고 자기 주장적, 자기 과시적이며 허영심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끌기 위해 과장된 표현을 하지만 실제로는 의존적이며 무능하고 지속적으로 깊은 인간 관계를 갖지 못합니다. 자신이 관심의 중심에 있지 않는 상황에 있는 것을 불편해 합니다.다른 사람과의 관계행동이 자주 외모나 행동에서 부적절하게 성적, 유혹적 내지 자극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집니다. 감정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피상적으로 표현됩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외모를 사용합니다. 지나치게 인상적이고 세밀함이 경여된 형태의 언어를 사용하며, 자기극화, 연극성 그리고 과장된 감정의 표현을 보입니다. 피암시적이서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실제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로 생각합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에서는 자신의 재능, 성취도, 중요성 또는 특출성에 대한 과대적 느낌이 있습니다. 타인의 비판에 매우 예민하나 감정이입은 결핍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대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한한 성공, 권력, 명석함,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과 같은 공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는 특별하고 특이해서 다른 특별한 높은 지위의 사람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고 또는 관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과도한 숭배를 요구하며, 특별한 자격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대인관계에서 착취적이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합니다. 타인의 느낌이나 요구를 인식하거나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자주 부러워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기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만한, 건방진 행동이나 태도를 보입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
반사회적 성격장애란, 사회적응의 여러 면에 걸쳐서 지속적이고 만성적으로, 비이성적, 비도덕적, 충동적, 반사회적 또는 범죄적 행도, 죄의식 없는 행동 또는 남을 해치는 행등을 나타내는 이상성격입니다. 즉 사회의 정상적 규범에 맞추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체포의 이유가 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법적 행동에 관련된 사회적 규범에 맞추지 못합니다.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가짜 이름을 사용하며,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타인을 사기 치기도 합니다. 충동적이거나,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신체적 싸움이나 폭력 등이 반복됨으로써 나타나는 불안정성 및 공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에 대한 부주의와 무시가 있기도 합니다. 일정한 직업행동 또는 재정적 의무의 지속에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지속적인 무책임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학대하거나 다른 사람 것을 훔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양심의 가책의 결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경계성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는 정서, 행동 및 대인관계의 불안정과 주체성의 혼란으로 모든 면에서 변동이 심한 이상 성격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항상 위기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어떤 위기상태에 놓일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감을 나타내고 논쟁적이고 요구적이며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시키려 합니다. 평상시에도 기분은 변동이 심하며 만성적인 공허감과 권태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대인관계가 불안정하고 강렬하며, 의존과 증오심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불안정하고 강렬한, 자제가 곤란한 분노반응을 보입니다. 실제적 또는 상상된, 버림받을까 하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 미친 듯한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행동면에서는 매우 돌발적이고 통제력이 상실되어 있어서 예측할 수 없으며, 낭비, 성적 문란, 도박, 약물남용, 좀도둑질, 과식 등의 행동을 보입니다. 때로는 자해행위, 자살위협을 하기도 하는데 남들로부터 동정을 받기 위해서 라든지, 분노를 표시하기 위하여, 또는 자신의 불안정한 정서를 가라앉히기 위해서입니다.
회피성 성격장애
회피성 성격장애는 거절과 배척에 대한 극도의 예민성이 특징이며 이 때문에 환자는 사회적으로 위축됩니다. 그들은 내심 친밀함을 강하게 원하고 있으나 부끄러워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은둔적인 생활을 하지만 실제로는 남들과 안정된 친분관계를 갖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으로부터의 거절에 대하여 지나치게 민감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조건없이 화고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대인관계만을 갖고자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존심이 낮으며 거절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 때문에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은둔적인 생활을 해 버립니다. 직업적인 영역에서는 수동적인 분야에서 일합니다. 공포성 회피가 흔합니다.
의존성 성격장애
의존성 성격장애는 자신의 욕구를 타인의 욕구에 종속시키고 자신의 삶의 중요부분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지우며, 자신감이 결여되고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심하게 괴로움을 느끼는 성격장애입니다. 프로이드가 구강적 성격이라고 묘사한, 의존성, 비관적 사고, 성에 대한 공포, 자기의심, 수동성, 피암시성, 인내심 결여 등의 특징을 다 보이고 있습니다. 의존과 복종이 특징적입니다. 환자들은 자기 확신이 결여되어 있어 타인의 도움과 보살핌을 항상 필요로 하며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책임을 타인에게 맡깁니다. 염세적이고 수동적이며 성적 또는 공격적 느낌을 표현하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입장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할 때에는 불안해 합니다. 또한 사소한 일도 자신이 결정하기 못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따르기만 하고, 자기의 욕구를 억제합니다. 이는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과의 밀착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학대하는 남편에 대해 참고 견디는 부인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강박성 성격장애
강박성 성격장애는 감정적 억제, 규칙성, 고집, 완고함, 우유부단, 완벽주의, 융통성 없음 등이 특징입니다. 기본적인 특징은 정돈성, 인내심, 완고함, 우유부단 그리고 감정표현의 인색함 입니다. 대인관계에서는 따뜻함이나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에 합리적이고 형식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주게 된다. 이들은 서로 주고받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모든 일이 또는 자신의 사생활이 올바르게 일정한 틀에 맞게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지나치게 신경을 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냉담하며 지나치게 통제된 생활을 하므로 옹졸한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주로 수직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자신도 윗사람에게 철저히 복종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자기에게 복종하기를 원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완벽하지 못할 때는 경멸하고 분노를 느끼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혹시나 실수를 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모든 일에 우유부단한 자세를 취합니다. 사회생활에서는 이들의 정돈성과 완벽성 때문에 융통성이 요구되는 직업에서는 실패하나, 정확성이 요구되는 직업에서는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즉 감정 표현의 제한, 정돈성, 인색함, 경직성, 엄격한 초자아, 인내성, 옹고집, 우유부단 그리고 성적 자발성 결여입니다.
본명 : Jean-Baptiste Poquelin. 1622. 1. 15 프랑스 파리에서 세례받음~1673. 2. 17 파리. 프랑스의 위대한 희극작가·배우
[ Moliere, 포클랭 ]
초기의 연극 활동
몰리에르는 파리 중심부에서 태어났으며(또한 그곳에서 죽었음) 등기부 기록에 의하면 1622년 1월 15일에 장 바티스트 포클랭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는 그가 10세 때 죽었고, 아버지는 왕실지정 가구상으로, 그에게 콜레주 드 클레르몽(이 학교는 훗날 볼테르를 비롯해 숱한 프랑스의 재사들을 키워낸 리세 루이 르 그랑의 전신임)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실의 직책을 맡게 되기를 희망했으나 1643년 그 자리를 사임한 것으로 보아 그는 전통과 결별하고 무대 위에서 살아갈 방도를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해에 몰리에르는 다른 9명과 함께 일뤼스트르 테아트르(Illustre-Théâtre)라는 이름으로 극단을 조직하여 희극을 창작하고 공연했다. 몰리에르라는 그의 예명은 1644년 6월 28일자로 된 문서에서 처음 발견된다. 그는 이후 30년 동안 연극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고 51세의 나이로 기진하여 죽었다.
재능있는 여배우 마들렌 베자르는 몰리에르를 설득해 극장을 세우게 했으나, 새로 생긴 극단을 유지시키지는 못했다. 1645년 몰리에르는 건물과 집기 때문에 빚을 져 2번이나 투옥되었다. 17세기의 파리는 연극 관람객의 수가 매우 적었고, 시에는 이미 2개의 극장이 있었으므로 새로운 극단이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했으리라고 보인다. 1645년말부터 13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극단은 지방순회공연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다. 이 기간에 대해서는 지방의 행정기록과 교회 기록들을 통해 극단이 여러 곳에서 공연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1648년에는 낭트에, 1649년에는 툴루즈에, 1652년말부터 1655년 여름까지 그리고 1657년에는 가끔씩 리옹에 있었고, 1654년과 1655년에는 몽펠리에에, 1656년에는 베지에에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극단은 분명 부침을 겪었을 것이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이 기간은 몰리에르의 경력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시기로, 이 시절에 그는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엄격한 훈련을 쌓는 동시에 작가들, 동료들, 관중 및 당국을 상대하는 법도 배웠을 것이다. 마침내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가 거둔 급속한 성공이나 반대에 부딪쳤을 때의 강인함은 이 시절의 훈련에서 비롯된 듯하다. 1655년 리옹에서 공연된 〈실수쟁이 L'Étourdi ou les contretemps〉와 1656년 베지에에서 공연된 〈사랑 싸움 Le Dépit amoureux〉은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최초의 작품들이다.
몰리에르에게 명성의 길이 열린 것은 그의 극단이 1658년 10월 24일 루브르 궁의 위병소에 차려진 가설무대에서 루이 14세를 위해 공연했던 코르네유의 〈니코메드 Nicomède〉와, 뒤이어 시골 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었던 작은 여흥들 가운데 하나를 공연했을 때였다. 그 작품이 〈사랑에 빠진 의사 Le Docteur amoureux〉인데, 현재 남아 있는 것과 같은 형태였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은 성공적이었고 왕제(王弟) 오를레앙 공(公) 필리프의 호의를 얻게 해주었다. 공의 후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7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후에는 왕 자신이 극단을 인수하여 '왕실 극단'(Troupe du roi)으로 만들었다. 극단이 다소간의 명성과 권위, 권문세가들로부터의 초대, 배우들의 후원금(종종 지불되지 않기도 했음) 등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이상의 소득은 별로 없었다.
1658년 파리에 돌아온 이후 몰리에르의 생애와 관련된 믿을 만한 사실들은 모두 작가·배우·감독으로서의 활동에 관한 것이다. 몇몇 프랑스 전기작가들이 그의 작품에서 개인사를 읽어내려 했으나, 그러한 시도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을 실제 있었던 일로 오도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 전설 같은 이야기와 풍자를 제외하면 정보란 거의 없다. 몽테뉴, 플루타르크, 율리우스 카이사르, 세네카 등의 저서가 그의 서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의 희곡을 읽을 때 그런 작가들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분명 위대한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몰리에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작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문학이라 불릴 만한 것, 출판하기 위한 것은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희곡 외에 쓴 것이라고는 몇 편의 시와 고대 작가 루크레티우스의 미완성 번역이 전부임). 그의 희곡들은 모두 공연용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는 초기작 서문에서 표절을 피하기 위해 출판이라도 해야겠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그의 작품 2편은 실제로 표절되었음). 그는 7편의 작품을 미간(未刊)으로 남겼고, 전집이라고는 낸 적이 없으며(적어도 알려진 바로는) 작품의 출판을 위해 교정쇄를 읽은 적조차도 없다. 그에게 희극이란 공연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었다. 19세기는 이러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의 극적인 천재성을 제대로 발견한 것은 루이 주베, 샤를 뒬랭, 장 루이 바로, 장 빌라르 등 20세기의 배우들이었다.
그는 고전작가도, 자기 뜻대로 계획하고 글을 쓸 여가를 가진 작가도 아니었다. 경쟁·생존을 위한 투쟁이야말로 몰리에르의 전 생애에서 주조(主調)였으며, 자신의 배우와 관객을 유지한다는 것은 다른 극단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의미했다. 그는 이런 싸움을 거의 혼자 힘으로 해냈다. 그의 극단이 유지된 것은 그의 기술적 역량과 인품 덕택이었다.
몰리에르가 파리에서 공연한 첫 희곡 〈재치를 뽐내는 여인들 Les Précieuses ridicules〉은 그의 이후 작품들을 예고해준다. 그것은 2명의 시골 아가씨가 주인 행세를 하는 2명의 하인에 의해 웃음거리가 된다는 이야기로, 한편으로는 아가씨들의 고상함에 대한 열망과 상식의 결여를, 다른 한편으로는 하인들의 평이한 언어와 아가씨들의 교양적 상투어를 대비시키고 있다. 아가씨들이 고도의 재치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언동들은 물질적인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뒤틀린 교양관을 반영한다. 이 잰 체하는 인물들이 제공하는 웃음거리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신선한 감동을 주며 당시의 관객들에게는 한층 더 그러했을 것이다. 아마도 〈재치를 뽐내는 여인들〉은 〈스가나렐 Sganarelle〉과 마찬가지로 루브르에 인접한 프티 부르봉(Petit Bourbon)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것이다. 프티 부르봉은(아무런 통지없이) 헐렸고, 극단은 1661년초 리슐리외가 팔레루아얄(Palais-Royal)에 세운 극장으로 이전했다. 몰리에르의 '파리'극들은 모두 이곳에서 공연되었다. 그 첫작품이 1661년 2월에 공연된 〈나바르의 돔 가르시 Dom Garcie de Navarre, ou le prince jaloux〉인데, 허점투성이인 이 영웅 희극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 단지의의가 있다면 몰리에르를 분발시켜 〈인간혐오자〉를 쓰게 했다는 점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실패는 드물었고 파리 극장에서의 유례없는 대성공들에 의해 가려졌다.
추문과 성공
몰리에르 석고상
1662년 12월 26일 초연된 〈아내들의 학교〉는, 마치 사람들이 그 무엇도 신성불가침으로 생각지 않는 희극의 천재가 나타났음을 알아차리기도 한듯 추문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훌륭한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몰리에르의 걸작이요, 가장 순수한 희극이라고 평했다. 폴 스카롱이 옮긴 스페인 이야기 〈무익한 경계 La Précaution inutile〉(1655)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현학자 아르놀프가 주인공인데, 그는 여성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세간의 풍습을 전혀 알지 못하는 소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이 소녀의 깨어나기 시작하는 감수성, 관습의 속박이 없기 때문에 한층 강한 감수성의 섬세한 묘사는 이 희극의 경이로운 점이다. 극은 현학자가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대목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소녀의 말을 더듬어 이해해야 하는 수고는 그가 받는 벌인 동시에 관중에게는 즐거움이었다. 1662년 이후로 그의 극단은 팔레루아얄의 극장을 이탈리아 배우들과 함께 사용했으며, 각 극단이 매주 3번씩 공연했다. 한편 몰리에르는 개인적으로 주문을 받은 희곡들도 썼는데, 이 작품들은 다른 곳에서 초연되었다. 1661년 8월 보에서 공연된 〈불쾌한 사람들 Les Fcheux〉, 1664년 베르사유에서 공연된 첫번째 〈타르튀프〉, 1670년 샹보르에서 공연된 〈부르주아 장티욤 Bourgeois Gentilhomme〉, 1671년 튈르리 궁에서 공연된 〈프시케 Psyché〉 등이 그것이다.
1662년 2월 몰리에르는 아르망드 베자르와 결혼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대로 그녀가 마들렌의 누이였는지, 아니면 몇몇 동시대인들이 시사하듯 그녀의 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 결혼에서 세 자녀가 태어났는데, 딸 하나만이 살아 남았다. 믿을 만한 정보는 못 되나 몰리에르에 대해 적대적인 팜플렛에 아르망드의 연애사건이 실리기도 하는 등 그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몰리에르는 무대를 통해 비평가들에게 답변함으로써 〈아내들의 학교〉가 일으킨 반대를 오히려 극단의 신용을 얻는 방향으로 돌렸다. 1663년 6월에 공연된 〈아내들의 학교에 대한 비판 La Critique de L'Ecole des femmes〉과 10월에 공연된 〈베르사유 즉흥극 L'Impromptu de Versailles〉은 모두 단막 토론극이다. 〈아내들의 학교에 대한 비판〉에서는 자신의 희극이 지닌 새로운 스타일의 몇 가지 원칙을 표명했고, 〈베르사유 즉흥곡〉에서는 극단의 배우분장실과 연습에 포함된 뒷얘기들을 놀랄 만큼 사실적으로 그린 연극사를 제시하고 있다. 1664년 5월 첫번째 〈타르튀프〉의 공연이 일으킨 격랑과 추문은 〈아내들의 학교〉가 일으킨 분쟁보다 휠씬 심한 것이었다. 이 위대한 작품의 역사는 몰리에르가 활동하던 당시의 여건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인내와 투지력을 입증해준다. 그는 보상을 받기까지 5년이나 기다려야 했고 극단 배우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겼고, 그것은 그의 생애 최대의 성공이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진작에 싸움을 포기했을 것이었다. 오늘날 알려진 〈타르튀프〉의 처음 3막에 해당했을 〈타르튀프〉가 초연되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연 금지령을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몰리에르는 〈동 쥐앙 Don Juan, ou le festin de Pierre〉을 무대에 올려 사태를 한층 악화시켰다. 그 볼만한 결말에서 무신론자는 지옥에 떨어지지만, 그것은 그가 실컷 즐기고 관중을 분개시킨 다음이었다. 〈동 쥐앙〉은 급한 재정적 필요에서 만들어졌으나, 값비싼 실패로 끝났다. 15회 공연된 뒤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단되었지만 몰리에르는 그것을 공연하거나 출판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 쥐앙〉은 그의 예술의 둘도 없는 본보기였다. 주인공 동 쥐앙은 극단적 귀족주의 원칙을 고수하여 부모나 의사, 상인이나 신에 대한 온갖 종류의 의무들을 거부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에 대한 의무들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순박하고 겁많고 미신적인 하인 스가나렐은 모든 면에서 그와는 반대이다. 이 두 인물은 돈 키호테와 산초에 대응하는 프랑스적 전형들이다.
당국과의 싸움에 휘말린 와중에서도 몰리에르는 극단을 혼자 힘으로 이끌어나갔다. 배우도 작가도 확보할 수 없었던 그는 더 많은 작품을 씀으로써 작가의 부족을 메워나갔다. 1664년 그는 장 라신의 첫 희곡 〈라 테바이드 La Thébaïde〉를 무대에 올렸으나, 다음해에 라신은 자신의 2번째 희곡 〈알렉산더 대왕 Alexandre le Grand〉을 몰리에르의 배우들이 공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오랜 전통을 지닌 다른 극장에 넘겼다. 몰리에르는 당국으로부터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했다. 이러한 장애들은 몰리에르에 대한 왕의 호의로 인해 어느 정도 완화되었을지 모르나, 왕의 호의란 변덕스러운 것이었다. 약속된 연금은 지불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궁정에서는 위대한 작품보다도 경쾌한 극을 원했다. 그의 극단의 수입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었다. 파리에서 보낸 14년 동안 몰리에르는 무대에 올린 95편의 희곡 중 31편을 썼다. 자신의 질병, 대왕대비의 승하에 따른 7주간의 극장 폐쇄, 〈타르튀프〉 및 〈동 쥐앙〉의 공연금지 등 잇단 불운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한 시즌(1666~67)에 5편의 희곡을 쓰기도 했다. 이 5편 중에서 〈억지 의사 Le Médecin malgré lui〉만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인간혐오자〉가 거의 처음부터 식견있는 관객들로부터 걸작으로 평가되었다. 이 작품은 별다른 출전없이 몰리에르 극단의 자체적 요소들로부터 만들어진 응접실 희극이다. 몰리에르는 몸소 알세스트 역을 맡았는데, 이 인물은 새로운 종류의 바보로서 고매한 원칙들과 엄격한 표준을 지녔으나 천성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자이다. 알세스트는 클리멘(몰리에르의 아내 아르망드가 연기했음)과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는 탁월한 희극적 인물로서 어떤 경우에도 막힘이 없는 사교계의 총아이다. 극의 구조는 시적이리만큼 단순하다. 알세스트는 우울한 얼굴로 극 전체를 휩쓸고 다니며, 어떤 '정직한' 사람도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 또한 타르튀프만큼이나 자신의 본성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에서 티끌을 찾기에만 열심이다.
교회는 몰리에르에 대한 싸움에서 거의 승리함으로써, 〈타르튀프〉를 5년간, 〈동 쥐앙〉을 평생동안 공연금지시켰다. 5막짜리 〈타르튀프〉는 1667년에 단 1번 공연되었으나 경찰총장에 의해 금지되었고, 대주교는 그것을 다시 공연하면 파문하겠다고까지 위협했다. 이에 대해 몰리에르는 다시금 왕을(심지어 전쟁터에서도) 설득하는 한편, 〈사기꾼의 희극에 대한 서한 Lettre sur la comédie de l'Imposteur〉을 발표해 자신의 극을 옹호했다. 1668년 한 해 동안 그는 〈앙피트리옹 Amphitryon〉(1. 13)·〈조르주 당댕 George Dandin〉(7. 18 베르사유)·〈수전노 L'Avare〉(9. 9) 등을 공연해 극단을 결속시켰다. 몰리에르처럼 독창적인 희극작가는 어느덧 고대의 희극적 인물인 구두쇠의 근대적 묘사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의 1668년 희극들 중 마지막 작품인 〈수전노〉는 운문처럼 읽히는 산문인데, 상투적인 상황들이 모두 재연되나, 그 정신은 몰리에르의 다른 희극들과 달랐으며 모든 사람의 기호에 맞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창조한 구두쇠는 살아 있는 역설로서, 돈에 대한 숭배에서는 비인간적이지만 존경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극히 인간적이다. 그의 광기는 잔인성과 병적인 고독, 심지어는 정신이상까지 시사하는 것으로, 이 희극은 희극에서 웃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삭막하다. 그래서 괴테는 그것을 차라리 비극적이라고도 했으나, 이전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의지의 힘은 비인간적인 목표들에 봉사하며 본능 및 극히 '인간적인' 본성에 반대된다.
희극적 요소의 기초가 되는 것은 명랑함보다는 이러한 부조리와 부조화이다. 흔히 소극(笑劇)으로 불리는 1668년의 2번째 희극 〈조르주 당댕〉은 몰리에르가 만든 가장 위대한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그 주인공인 바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면서도 지혜가 그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만일 사태가 정말로 나쁘게만 돌아간다면 현명해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자신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그는 결코 증명할 수 없다. 이 희극의 주제는 사소한 듯하나 무한한 암시력을 갖는 것으로, 전혀 새로운 범주의 희극을 제시한다.
1669년에는 웬일인지 공연허가가 얻어졌고 〈타르튀프〉의 장기공연이 시작되어 그해에만도 60회 이상 공연되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몰리에르를 곤경에 빠뜨렸던 이 희곡의 주제는 한 지방의 위선자가 그의 여주인을 유혹하는 것을 보고 얻은 듯하다. 작품의 3가지 형태 중에 마지막 것만이 전해진다. 1664년 왕 앞에서 공연되었던 첫번째 〈타르튀프〉는 3막으로 구성되었는데, 부르주아 가정에 들어간 철저한 사기꾼에게 주인이 자기 딸을 주고 자신의 아들에게서 상속권을 빼앗는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세속의 신앙지도자들이 가정에 자리잡고 생활을 훈계 지도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이 '성스러운' 인물은 고용주의 아내와 정사를 벌이다가 발각되자, 거창한 자기비난으로 위신을 회복하고 주인을 설득해 자기를 용서하게 할 뿐 아니라 가능한 한 자주 아내를 돌볼 수 있게 만든다. 몰리에르는 이 주제에서 훨씬 더 큰 희극적 가능성들을 엿보았던 듯 5막으로 확대했는데, 오늘날 남아 있는 5막짜리 〈타르튀프〉는 2개의 유혹 장면을 포함하며 타르튀프 자신의 희극적 역설(비인간적이리만큼 금욕적인 체하면서 실제로는 극히 인간적인 난봉꾼이라는)로 흥미를 옮기고 있다. 신심 깊은 자들의 마음을 거스르기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주제도 없을 것이다. 〈아내들의 학교〉의 아르놀프처럼, 타르튀프도 재치만을 믿고 본능을 잊었기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후기 희곡들
몰리에르는 〈타르튀프〉 분쟁으로 지친 나머지 반복되는 질병을 이기고 새 희곡들을 써낼 힘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상 그는 이후 4년밖에 더 살지 못했다. 그러나 1669년에는 샹보르에서 왕을 위해 〈푸르소냐크 씨 Monsieur de Pourceaugnac〉를, 1670년에는 〈부르주아 장티욤〉을 공연했다. 〈부르주아 장티욤〉은 부르주아, 즉 중·상류층의 사회적 상승이라는 당대의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그의 모든 희극들 중 가장 근대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주르댕은 불유쾌한 아첨꾼이라기보다는 어리석지만 즐겁고 순진하며 성실한 인물이다. 그의 어리석음은 그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인정많은 기질 속에 들어 있다. 이것은 몰리에르의 가장 행복한 형태의 희극이다. 남자 주인의 어리석음은 아내와 하인의 상식으로 상쇄된다.
병석에서도 창작을 계속했던 몰리에르는 1671년 〈프시케〉와 〈스카팽의 간계 Les Fourberies de Scapin〉를 썼다. 뒤이어 1672년에는 〈유식한 여자들 Les Femmes savantes〉이 나왔는데, 이런 주제는 자칫 지적인 여성들에 대한 풍자가 되기 쉽지만(어떤 이들은 몰리에르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고 생각했음) 몰리에르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유식한 아내를 은근히 두려워하는, 분별있는 부르주아를 묘사한 것이다. 〈기분으로 앓는 사나이 Le Malade imaginaire〉는 죽음과 의사를 두려워하는 우울증 환자에 대한 것으로, 몰리에르의 마지막 희극이다. 그것은 의학적 전문용어들과 직업주의의 자세한 묘사, 지식은 있으되 양식(良識)은 전혀없는 사이비 의사의 우둔함, 그리고 다른 인물들의 미신과 탐욕과 야바위에 대항하는 젊고 분별있는 연인들의 온건함 등이 어우러져 강한 효과를 자아내는 희극이다. 1673년 2월 17일 이 희곡의 4번째 상연 도중에 몰리에르는 무대 위에서 쓰러졌고 리슐리외가에 있는 집으로 실려갔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성사를 통해 배우라는 직업을 형식적으로나마 포기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2월 21일 해가 진 뒤에 예식없이 매장되었다.
배우·극작가로서의 몰리에르
몰리에르의 연기는 실망과 동시에 영광의 원천이었다. 그는 비극 배우가 되기를 원했으나 당대의 취향은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 관중은 성내고 기뻐하는 위풍당당한 비극적 문체를 선호했다. 몰리에르는 체격과 유연성, 풍부한 얼굴 표정을 지닌 타고난 희극배우였다. 무대를 떠나서는 그리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명랑하지도 않았으나, 실생활 그대로의 말씨를 모방하고 구사할 줄 알았으며 배우의 지치지 않는 원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소한 사건으로도 희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줄 알았으며 자신을 무대에 올려놓을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한 인물에게는 자신의 기침을, 다른 인물에게는 자신의 기분을 부여했으며, 실제 연습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 그가 창조해낸 위대한 희곡 속의 인물은 실제 그의 극단 멤버들과도 같다. 그가 실제로 병들어 있었을 때 병자 역을 연기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그에게 걸맞은 일이었다.
그의 연기는 창작에도 영향을 미쳐, 그는 자신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것만을 썼다. 그는 성마른 역할, 하인 역할, 오쟁이진 남편 역할, 어리석은 부르주아 역할, '몰리에르 녀석'을 저주하는 미신적인 노인 역할(찰리 채플린과의 비교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 등을 맡았다. 그에게는 동물적인 에너지나 모방에 대한 재능 이상의 무엇, 극적 비전의 강렬함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자질이 있었다. 이 점에서도 배우들은 학자들이 간과했던 그의 천재적 양상, 즉 무대 위에서의 격렬함을 재발견했다. 그의 희곡들을 이성에 대한 옹호론으로 본다면 그 생생함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의 이성은 그로 하여금 부조리한 것에 생기를 부여했다. 그의 인물들은 쉽게 흥분할 뿐만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을 정도로 흥분한다. 그는 극의 생생함과 생명감을 위해 플롯을 희생하며, 고전 작가이기는 하지만 창작의 엄격한 규칙들을 쉽사리 저버린다.
몰리에르가 이성의 냉정한 수호자이며 자신의 극에 등장하는 보다 이성적인 인물들과 관점을 같이 한다는 주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으나,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환경을 감안한다면 믿기 어렵다. 당시만 해도 희극이란 설교가 아니며, 희극에서 어떤 교훈이 얻어질 수 있다 해도 부차적 효과일 뿐 교훈주의와는 정반대된다고 생각했다. 생각들이 표현되는 것은 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이지, 작가의 견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만일 그에게 위선이나 무신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런 질문에 놀라면서 극장은 '견해'를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고 답변을 회피했을 것이다. 몰리에르가 결혼이나 교회, 지옥, 계급 간의 격차 등에 대해 자기 의견을 표명하려 했다는 증거자료는 전혀 없으며, 엄격히 말해 이런 문제들에 대한 그의 견해는 알 수 없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가 극장 안에서 극을 위해 일했고 놀라운 극적 환기력으로 그 어떤 상상적 장면에도 생기를 부여했다는 사실뿐이다. 만일 그가 무신론자에 대해 동정적인 초상을 남겼다면 그것은 자유사상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촌스러운 하인도 생생하고 동정적으로 그렸다. 그의 희곡들이 사물을 증명하고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은 그의 작품을, 작품이 지닌 환상과 상상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몰리에르의 작품이 갖는 힘은 그 언어의 창조적 활기에 있으므로, 그의 작품들을 풍속희극·인물희극·소극으로 나누는 전통적 분류는 별 소용이 없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특정한 종류의 희곡을 쓰려는 의도를 가지고 출발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강제 결혼 Le Mariage forc〉에서는 라블레의 인물 파뉘르주가 표명하는 결혼에 대한 회의로부터, 그리고 〈억지 의사〉에서는 매를 맞지 않으려고 의사인 척하는 나무꾼에 대한 중세의 우화로부터 시작한다. 그러한 대강의 골격을 기초로 하여 생동하는 인물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그 인물이 전혀 다른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처음 표현된 역할들이 역전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 극의 매력은 실제 일어나는 일보다는 지적인 리듬에, 이야기보다는 토론에 있으므로, 플롯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본질을 전달하지 못한다.
독창적 희극관
몰리에르에 대한 공격들은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명백한 미학적 진실들을 표명할 기회를 그에게 제공했다. 가령 〈아내들의 학교에 대한 비판〉에서는 비극은 영웅적일 수도 있지만 희극은 자연에 거울을 들이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려진 인물들이 살아 있는 전형들로 보이지 않는다면 희극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점잖은 사람들을 웃긴다는 것은 이상한 노릇이다." 그리고 혹자들이 작가들에게 부과하려 애쓰는 규칙들에 대해서는 "나는 기쁨을 주는 것이야말로 황금률이며, 성공하는 극은 올바른 방식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술철학,유머).
〈아내들의 학교〉에 대한 공격들은 〈타르튀프〉나 〈동 쥐앙〉이 일으킨 폭풍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 대한 공격은 시인으로부터 예술적 원칙에 관한 값진 진술들을 끌어냈다. 〈동 쥐앙〉은 공식적으로 비난된 적이 없으므로 그것에 대한 공개 답변도 없다. 〈타르튀프〉를 옹호하는 자료들로는 왕에 대한 2편의 상소문, 1669년의 초판본에 실린 서문(이것들은 모두 몰리에르의 자비로 발간되었음)과 1667년의 〈사기꾼의 희극에 대한 서한〉이 있다. 상소문들과 서문이 미학적으로 실망스러운 것은 몰리에르가 그의 적대자들이 선택한 쟁점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희극도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기(몰리에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다른 증거는 없으므로, 그가 그런 식으로 논한 것은 강요되었을 때뿐이라고 할 수 있음) 때문이다. 〈사기꾼의 희곡에 대한 서한〉은 훨씬 더 중요한 자료로서, 의미심장한 몇 줄 속에 〈타르튀프〉뿐만 아니라 몰리에르의 새로운 희극 개념의 미학적 기초를 표명하고 있다.
"희극적인 것이란 자연의 혜택이, 우리가 그것을 보고 피할 수 있도록, 모든 비이성적인 것에 부여한 외적이고 가시적인 형태이다. 희극적인 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이성적인 것을 알아야 하는 바, 희극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의 부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부조화야말로 희극적인 것의 핵심이다. 따라서 모든 거짓말, 위장, 속임수, 가장, 사실이 아닌 모든 외적인 현시, 단일한 근원에서 나오는 행동들간의 모든 모순,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희극적이다."
여기에서 몰리에르는 희극적인 것에 대해 자신의 개념이 갖는 새로운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희극이란 현명한 것과 어리석은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 생겨나는 항구적인 이중성에 기초하며, 우스움이란 우발적 효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희극관이야말로 그의 창안이고 그의 영예이다.
몰리에르의 주요한 기술적 양태는 여러 층위 내지는 문맥을 뒤섞는 것이다. 인물들은 한 가지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잊어버린 듯 엉뚱한 때에 나서며 역할을 과장되게 연기한다. 그래서 이러한 부수적 전개에 주의하는 사람은 뒤섞인 층위들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된다. 〈억지 의사〉에서 사람을 두드려패 의사인 척하게 만든다는 발상은 그리 세련되지 못한 것이지만, 몰리에르는 이러한 발상을 가지고 놀듯 나무꾼으로 하여금 새로운 역할을 즐기고 전문용어들을 주워섬기다가 나중에는 그것을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든다. 그는 히포크라테스에 대해 공허한 말을 지껄이고, 라틴어를 모르는 환자를 만나자 말뜻에 신경쓸 필요가 없으므로 기뻐한다. 오른쪽에서 심장을 찾다가 실수를 들킨 그는 저 유명한 대사로 태연자약하게 대꾸한다. "우리가 그걸 다 바꿔놓았다오." 돈을 강탈당한 구두쇠는 비감하지만 그가 내뱉는 부조리한 언어는 비감하기는커녕 웃음을 자아낸다. "……다 끝났다……나는 죽는다……나는 죽었다 ……나는 묻혔다." 그는 그렇듯 불합리하고 과장된 어조로 정의를 요구하며 법정들을 고발하겠다고 위협한다. 몰리에르의 〈인간혐오자〉는 이상으로서의 정의와 사회제도로서의 정의가 어떻게 뒤섞이는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정의를 내 곁에 두었는데도 재판에서 졌다!" 자신에게는 세계질서의 수치라고 생각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의 머리가 돌았다는 증거일 뿐이다. 몰리에르의 극적 언어는 그러한 간결성을 얻고 있다.
프랑스적 천재
볼테르가 몰리에르를 "프랑스의 화가"라고 한 것은 그의 희극들이 그리고 있는 프랑스적 태도의 범위를 시사해준다. 그때문에 프랑스인들은 그를 특별한 의미에서 자신들의 작가라고 생각하며 그에 대해 각별한 흥미를 가져왔다. 그들은 외국인들이 간과하기 쉬운 몰리에르 작품의 양상들을 강조하는데, 그중에서 3가지가 주목할 만하다.
첫째, 그의 작품들은 고도의 형식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결코 사실주의(있는 그대로의 삶)만을 제시하지 않으며, 거기에 항상 빛과 운동, 음악과 춤과 언어를 융합하는 양태와 형식을 부여한다. 그의 극에서 막간극을 생략하는 현대 제작들은 본래의 효과를 상실한 것이다. 인물들의 이합집산, 장면과 대사들의 배열, 희극적인 대화들도 사실주의를 무시하고 이루어진다.
둘째, 외국인들이 심리학을 보는 곳에서 프랑스인들은 시를 본다. 그들은 그의 희곡들을 사회적 광기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사상들을 잠깐 스쳐 요점을 만들어내는 환상의 양태라고 본다. 〈인간혐오자〉는 사례연구나 프랑스적 '햄릿'이 아니라 교묘하게 어우러진 목소리들과 태도들의 합창으로서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을 싣는다. 그의 희곡은 그 중심주제를 끊임없이 환기함으로써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말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여서, 이상주의적이거나 중상모략적이거나 거칠거나 원한에 차 있거나 또는 단순히 어리석다.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몰리에르의 뛰어난 점은 사회 내에서 자기중심성이라는 신비를 희롱하는 이러한 환상에 있다.
셋째, 프랑스에서 높이 평가되는 몰리에르의 자질은 인간의 여러 측면을 보편적 인간으로부터 구별해내는 그의 지적인 예리함이다. 몰리에르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16세기의 수필가 몽테뉴는 지식이나 예의, 기술처럼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자질들과, 인간성·동물성처럼 다른 수식 없이 '인간 본성'이라 할 만한 것을 구별한 바 있다. 몰리에르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을 대비하기를 즐겼는데, 그의 극에서는 종종 사회적 표피가 벗겨져나가고 진짜 인간이 나타나며 극 중의 많은 대화들은 예의바르게 시작하여 공공연한 모욕으로 끝나기도 한다.
몰리에르는 여러 가지 형태로 자연과 재치를 대립시켰다. 그의 희극들은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그 너머의 것까지도 포함하며, "그건 상식에 어긋나는데요, 하지만 어떻든 사실은 사실이지요"라고 〈앙피트리온〉에서 매맞은 하인이 말하듯이 이성과 사실이 양립하는 적은 별로 없다.
W. G. Moore 글 엠파스백과사전 발췌
타르튀프 [Le Tartuffe]
타르튀프는 프랑스어에서 위선자라는 보통명사로 사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몰리에르의 전성기의 작품인데 희극으로 분류된다. 1664년, 베르사유 궁전의 축제에서 <사기꾼>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보수적-종교적 세력의 압력에 의해 루이 14세는 이 극을 금지시킨다. (당시 교회의 고위 교직자들의 부패 ·타락한 생활을 폭로한 대담한 희극이었기 때문) 1667년, 몰리에르는 이 극을 다른 이름으로 팔레-르와얄에서 공연하였지만, 첫 공연 이후 다시 금지되고 만다. 이제 파리의 대주교는 이 극을 읽기만 하는 자도 파문하겠다고 협박했다. 1669년의 개작본에서야 비로소 왕의 공연허가가 주어졌고, 그 후 커다란 성공을 하게 된다. 초판에서는 따르뛰프가 성직자였지만, 개작본에서는 몰락한 귀족으로 바뀌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양심의 감독자directeur de conscience“라는, 신앙과 생활방식에 대한 조언자들이 높은 존경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었는데, 몰리에르는 바로 이런 자들을 풍자하고 있다. 경건함의 명목 하에 일어나는 기만적인 행위들을 탄핵하고 있는 것이다. 따르뛰프는 예수회의 행동지침론Kauikstik이나 신비적 신학에 능통한 자로서,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좇아 충실한 가장이었던 오르공에게 영향을 미쳐 그의 재산을 빼앗고 그의 딸과 결혼하려 하고, 심지어 그의 아내에게 접근하기까지 한다. 오르공의 아내가 결국 계책을 써서 오르공이 숨어있는 장소에서 따르뛰프로 하여금 자신에게 육체적으로 접근하게 함으로써 오르공은 눈을 뜨게 되지만, 이미 그의 재산은 따르뛰프에게 넘어간 상태다. 거의 시민비극으로 끝날 뻔한 무대의 사건은 왕의 개입을 통해 따르뛰프의 정체가 폭로됨으로써 해피 엔드로 끝난다. 여기서 왕은 Deux ex machina의 기능을 하는 것인데, 이런 결말은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이 극에서 오르공의 처남인 끌레앙뜨는 이성종교의 이상을 체현하고 있다. 집중된 줄거리와 인물묘사, 운문의 기술 등의 면에서 이 작품은 몰리에르 예술의 정점을 이룬다고 평가되고 있다. 3막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따르뛰프의 성격은 등장하자마자 하는 몇마디의 말을 통해 이미 탁월하게 묘사된다. 다른 인물들의 묘사도 생동감이 넘친다. 이런 장점들은 이 극이 오늘날까지 자주 공연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타르튀프 [Le Tartuffe] 전문읽기
위선자 따르뛰프
/몰리에르 作, 정명호 譯
등장인물
빼르넬로 부인 오르공의 어머니
오르공 엘미르의 남편
엘미르 오르공의 아내
다미스 오르공의 아들
마리안느 오르공의 딸. 발레르의 애인
발레르 마리안느의 애인
끌레앙뜨 엘미르의 오빠
따르뛰프 거짓 신사
도린느 마리안느의 몸종
드와이얄 집달리
프리뽀트 빼르넬리 부인의 하녀
하사관
제 1막
제 1장
빼르넬르 부인, 하녀 프리뽀트, 엘미르, 마리안느, 도린느, 다미스, 끌레앙뜨
[빼르넬르 부인] 자, 프리뽀트, 가자. 이런 자들과 함께 있을 순 없다.
[엘미르] 너무 걸음이 빠르셔서 쫓아갈 수가 없어요.
[빼르넬르 부인] 괜찮다, 얘야. 더 따라오지 않아도 돼. 그런 겉치레는 차리지 않아도 되니까.
[엘미르]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죠. 그런데 어머님, 왜 그렇게 빨리 가세요?
[빼르넬르 부인] 이 집안 꼬락서니를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기분이 상해도 보통 상하는 게 아니야.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아 급히 가는 거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조심성이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아 볼 수 없고, 저마다 제멋대로 떠들어대니, 원. 저마다 잘났다고 날뛰는 요지경 속이야.
[도린느] 그래도.....
[빼르넬르 부인] 넌 계집애가 지나치게 말이 많고 너무 건방져. 모든 일에 끼여들어 주둥이를 놀리려 든다니까.
[다미스] 하지만……
[빼르넬르 부인] 넌 말 그대로 등신이야. 할머니인 내가 말하는 거니 틀림없지. 난 네 아버지, 그러니까 내 아들에게 백 번도 더 말했다. 네가 못된 녀석이 되어서 애비 속을 썩힐 거라고.
[마리안느] 제 생각으로는……
[빼르넬르 부인] 그래, 넌 조심성있고 쓸데없이 나서거나 하지 않지. 온순하기 이를 데 없이 보이거든. 하지만 흐르지 않는 물처럼 더러운 물은 없다고들 하지 않니. 숨어서 뭘 꾸미는 게지? 내가 염증을 느끼는 건 바로 그거야.
[엘미르] 하지만 어머님……
[빼르넬르 부인] 이렇게 말해서 안됐지만, 얘야, 네 몸가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틀렸어. 네가 자식들한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할텐데, 죽은 며느리가 훨씬 나았어. 넌 돈을 물쓰듯 하고 공주처럼 차려 입고 있지만, 난 그런 게 마음에 안 들어. 네 남편 마음에 들려고 하는 짓이라면, 뭐 그렇게 단장할 것 없지 않니?
[끌레앙뜨] 하지만 부인, 그래도……
[빼르넬르 부인] 며느리의 오라버님이신 당신이야 존경하고 친밀감을 느끼고 숭배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만약 내가 아들이라면, 그러니까 이 며느리의 남편이라면 이 집에는 절대로 출입하지 않도록 간절히 부탁했을 거라오. 당신은 언제나 처세훈(處世訓)을 늘어놓지만 정직한 사람들이 따를 만한 게 전혀 못 되거든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 같은데, 워낙 내 성미가 그래 놔서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는 털어놓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니까.
[다미스] 따르뛰프 선생께서는 아마 만족하실 거에요……
[빼르넬르 부인] 그 분은 훌륭한 분이지. 그 분 말이라면 따라야 해. 너 같은 미치광이가 그 분에게 시비를 거는 걸 보면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을 정도다.
[다미스] 뭐요! 그 트집쟁이 위선자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걸 참고 견디란 말입니까? 그 훌륭한 선생의 허가 없이는 기분을 풀거나 즐기지도 못한단 말입니까?
[도린느] 그 사람 교훈을 듣고 따르자면 죄를 범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 그 광적인 트집쟁이는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는 게 없으니까요.
[빼르넬르 부인] 그 분이 모든 것에 간섭하시는 건 잘하시는 처사야. 너희들을 천국의 길로 인도하려고 그러시는 거니까. 모두가 그 분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내 자식의 의무지.
[다미스] 아니요, 할머니. 아버지가 뭐라 하시든 또 누가 뭐라고 하든 저는 절대로 그런 작자를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제 마음을 거슬리는 게 됩니다. 그 자가 하는 수작은 번번이 제 비위를 거슬려요. 멀지 않아 한바탕 터지겠지만, 상대가 그 야비한 자이고 보면 크게 붙을걸요.
[도린느] 그렇구말구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 집에서 주인 행세를 하다니, 비난받아 마땅하죠. 처음에 굴러들었을 때는 구두도 신지 않고 서푼짜리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던 주제에 제 분수도 잊어버리고 번번이 기분을 상하게 할 줄이야.
[빼르넬르 부인] 허! 기가 막혀서! 만사가 그 분의 경건한 분부대로만 된다면 훨씬 나아질 텐데.
[도린느] 할머니께서는 그 자를 성인군자로 착각하고 계시지만, 사실 그는 온통 위선 덩어리에요.
[빼르넬르 부인] 얘야, 그렇게 함부로 혀를 놀리지 마라!
[도린느] 그 자나, 그를 따라온 로랑이나 모두 확실한 보증인이라도 있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요.
[빼르넬르 부인] 그 하인에 대해서야 내가 알 바 아니지만, 주인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건 내가 보증할 수 있다. 진실을 이야기하니까 너희들은 그 분을 원망하고 싫어하는 게야. 그 분이 화를 내는 것은 죄에 대해서야. 오로지 하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만 나서는 분이야.
[도린느] 네, 그렇지만 왜 이 집에 딴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싫어할까요? 얼마 전부터 더욱 심하더군요. 정직한 손님이 찾아온다고 해서 하나남의 기분이 상할 리도 없는데 뭐 그렇게 요란스럽게 수선을 떨 필요 있어요? 우리끼리니까 말씀이지만 그 까닭을 말해 볼까요? (엘미르를 가르키며) 아마도 부인에게 질투를 하는 것 같아요.
[빼르넬르 부인] 입 닥쳐.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야. 방문객에 대해서 짜증을 내는 것은 그 분 만이 아니다. 너희들이 사귀는 사람들의 법석대는 소리, 현관 앞에는 노상 마차들이 늘어서서 웅성대고 하인들이 떼를 지어 모여서 떠들어대니 이웃에 나쁜 평판이 도는 게 당연하지. 실제로 별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말이 나는 것은 좋지 않아.
[끌레앙뜨] 지껄이는 입을 굳이 틀어막을 필요가 있을까요? 쓸데없는 소문이 퍼진다고 해서 친한 친구와 사귈 수도 없다면 그게 말이나 됩니까? 또 가령 그렇게 결심을 한다 해도 온 세상 사람들의 입을 봉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악담을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쑥덕공론이야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보내는 수밖에…… 스스로 깨끗하고 맑게 살도록 노력하고 수다쟁이들에게는 제멋대로 지껄이도록 내버려 두어야죠.
[도린느] 우리들 흉을 보는 건 이웃 집 다프네하고 그 꼬마 남편 아니에요? 가장 웃음거리가 되는 행동을 하는 인간들이 언제나 남을 헐 뜯는 데는 앞장서니까요. 사랑의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밖으로 드러날치라면 재빠르게 그것을 눈치채서는 소문을 퍼뜨리는 데 기쁨을 느끼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 꾸며대거든요. 타인의 행동을 그들이 원하는 빛깔로 물들이면 그들 자신의 행동이 사회에서 용납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죠. 자신의 권모술수를 순진무구한 것으로 가장해서 자신들에게 퍼부어지는 비난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거에요.
[빼르넬르 부인] 억지 얘기 아무리 늘어놔 봐야 소용없어. 오랑트 씨는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데 마음을 쓰고 모범적인 생활을 한다는 건 누구나 알지 않니? 그 오랑트 부인이 이 집에 사람들이 줄지어 모여드는 걸 비난한다는 거야.
[도린느] 훌륭한 모범이군요. 그 여자는 선량한 부인이에요! 행실이 바르다는 건 사실이지만요, 그 열렬한 신앙도 나이를 먹은 덕택일 뿐이지 채신을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정숙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어요. 사내들의 인기를 끌던 시절에는 한껏 재미를 보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그녀의 두 눈에서 점차 광채가 사라져 가고 사내들의 마음이 뒤돌아서는 걸 알자 단념을 하고 덕 높은 현숙한 부인을 가장해서 그걸 내세워 자신의 약점을 속이려는 거죠. 그게 한 때 한때 이름을 날렸던 바람둥이 여자들의 잔꾀라구요. 멋쟁이 사내들의 버림을 받는다는 건 괴로운 거죠. 그렇게 버림을 받게 되면 그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정숙을 파는 수밖에 없는 거에요. 이런 현숙한 부인들은 준엄하기 이를 데 없어 모든 것에 까탈을 부리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용서하지 않으며 거만하게 개개인의 생활을 비난하기 바쁘죠. 그것도 자비심에서가 아니라 솟구치는 질투심에서 말이에요.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몸은 마음과 같지 않고, 그래서 남이 재미를 보고 즐기는 걸 참지 못하는 거라구요.
[빼르넬르 부인] (엘미르에게) 이런 얼토당토않은 넋두리가 네 마음에 든다는 거지. 얘야, 이 집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구나. 어부인이 상전이 되어서 온종일 수다를 떨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한마디쯤 해도 되겠지. 나는 내 아들이 그 믿음 깊은 분을 집에 모신 것은 퍽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의 비뚤어진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분을 보내신 거야. 그러니 너희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그 분의 말을 들어야 해. 그 분이 나무라시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그 많은 방문객, 무도회, 재잘거림은 모두가 악덕의 소치다. 그런 데에선 믿음있는 말이란 들을래야 들을 수 없지. 쓸데없는 잡담에 넋두리, 그리고 쑥덕공론, 얻어 맞는 것은 대개가 이웃 사람으로 누구나 할 것 없이 욕지거리 뿐이잖느냐. 그러니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도 이런 모임에 가면 어리 벙벙해지게 마련이지. 하고많은 뜬소문이 어처구니없이 만들어지니까. 요전에도 어떤 박사님께서 멋있는 말을 하셨지. 끝없이 저마다 지껄여대면 진짜 바빌론의 탑이 무색할 지경이라고. 박사님께서 왜 그런 말을 하셨느냐 하면…… (끌레앙뜨를 가르키며) 봐라, 이 사람은 벌써 싱글싱글 웃고 있질 않니! 당신을 실컷 웃겨 줄 어릿광대나 찾아가시지. (이번에는 엘미르에게) 잘 있거라. 이젠 한 마디도 더 하고 싶지 않다. 이 집에는 정말이지 정떨어졌다. 당분간 발길을 하지 않을 작정이다. (프리뽀트의 뺨을 갈기며) 요년, 넌 뭘 멍청하니 서 있는 게야? 입을 딱 벌리고서! 기가 차서! 혼구멍을 내줄 테다. 자, 가자, 어서.
제 2장
끌레앙뜨, 도린느
[끌레앙뜨] 더 멀리까지 쫓아 나가 전송하는 건 사양하겠어. 또 싸움질을 하자고 덤빌까 겁나거든. 저 할머니는 ……
[도린느] 아, 그럼요! 그 말을 마나님께서 듣지 못하신 것은 유감이군요. 아마 들으셨더라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닌데 심한 소리를 하는 작자라고……
[끌레앙뜨] 아무것도 아닌 일로 우리에게 역정이나 부리시고! 그놈의 따르뛰프에게 홀딱 빠져서!
[도린느] 하지만 주인 어른께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분이 보셨다면 "이건 최악이다!"라고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 내란이 있었을 땐 현명한 분으로 임금님을 모시고 그 용기를 괴시했는데, 그 따르뛰프라는 사람에게 빠진 뒤로는 얼빠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니까요. 따르뛰프를 형제라고 부르면서 어머니나 아들, 딸, 부인보다도 백배나 더 소중히 대하거든요.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하는 것도 그에게 뿐이며 뭘 하든 그의 지시를 받아요. 껴안고 애무하고, 사랑하는 여자에게도 그처럼 다정할 수 없을 거예요. 식탁에서도 가장 상좌에 그를 앉히고, 6인분씩이나 먹어 치우는 걸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뭐든 가장 맛있는 것은 그에게 바치라는 분부이고 트림이라도 할라치면 "신의 가호가 있으시길." 이렇게 말해요. 하여간 주인 어른은 정신이 나가신 것 같아요. 그 자는 주인 어른의 영웅, 그 모든 것이에요. 언제나 칭찬을 하고 말끝마다 그의 말뿐, 보잘것없는 행동도 기적으로 보이고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의 계시처럼 들리는 거죠. 그 자는 상대가 봉이라는 걸 아니까 실컷 빨아먹을 양으로 갖가지의 재주와 속임수로 주인 어른을 황홀케 하고 있고요. 그 위선에 가득 찬 신앙으로 끊임없이 돈을 거둬들이고 우리들 모두에게 뭔가 트집을 잡아 까탈을 부리려 든다니까요. 그리고 무서운 눈으로 설교를 하려고 와서는 리본이나 루즈 같은 애교점을 떼어 팽개칩니다. 요전에는 그 흉직한 자가 '성자의 꽃' 속에 꽂아 둔 네커치프를 발견하고는 찢어 버렸어요. 악마의 장식물을 신성한 것과 뒤섞어 놓는 것은 무서운 죄라나요.
제 3장
엘미르, 마리안느, 다미스, 끌레앙뜨, 도린느
[엘미르] (끌레앙뜨에게) 문까지 따라 나오지 않길 잘했어요. 거기서도 한바탕 설교를 늘어 놓으셨지 뭐에요…… 그리고 지금 그이가 오는 걸 봤는데, 나를 못 본 것 같으니까 이층에 올라가서 기다리겠어요.
[끌레앙뜨] 나는 여기서 잠깐 그를 만나서 그냥 인사라도 하고 가겠다.
[다미스] 여동생 결혼에 대해서 한마디 거들어 주세요. 따르뛰프가 이 일에 방해를 놓아서 아버지를 엉뚱한 데로 이끌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제가 이 혼담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아시죠? 여동생과 발레르가 서로 뜨거운 사랑을 주고받듯이 저도 발레르와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답니다. 만약……
[도린느] 주인 어른께서 들어오십니다.
제 4장
오르공, 끌레앙트, 도린느
[오르공] 아! 처남, 안녕하십니까.
[끌레앙뜨] 지금 막 가려던 참이었는데, 만나게 되니 반갑네. 시골은 아직 별로 꽃이 피지 않았겠지.
[오르공] 도린느 ……(끌레앙뜨에게) 저, 잠깐 실례. 집을 비워 둔 사이의 소식을 들어 두지 않으면 걱정이 돼서…… (도린느에게) 지난 이틀 동안 뭐 별다른 일 없었느냐? 다들 잘 있나? 모두 건강하고?
[도린느] 부인께서는 엊그저께 저녁때까지 일이 있으셨습니다. 알 수 없는 두통으로……
[오르공] 그래, 따르뛰프는?
[도린느] 따르뛰프? 그 분은 아주 잘 있어요. 통통하게 살이 찌고 얼굴 빛도 좋고 입술은 빨개요.
[오르공] 저런!
[도린느] 따르뛰프? 그 분은 아주 잘 있어요. 통통하게 살이 찌고 얼굴 빛도 좋고 입술은 빨개요.
[오르공] 저런!
[도린느] 부인께서는 저녁때는 몹시 기분이 언짢으셔서 저녁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만큼 두통이 심하셨어요.
[오르공] 그래, 따르뛰프는?
[도린느] 부인 앞에서 혼자 드셨어요. 아주 경건하게 자고새를 두 마리, 잘게 썬 염소 넓적다리를 절반 이상 먹어 치웠지요.
[도린느] 식사 후에 기분 좋은 졸음이 오는지 식탁을 떠나자 곧 방으로 가서 따뜻한 침대에 기어들어가 아침까지 푹 주무셨어요.
[오르공] 잘했군, 잘했어!
[도린느] 마침내 우리들 이야기를 받아들여 부인께서는 피를 뽑을 결심을 하셨습니다.
[오르공] 그래, 따르뛰프는?
[도린느] 언제나처럼 원기를 되찾으시고 어떤 약이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부인이 잃어버린 피를 보충한다고 아침 식사 때는 큰 컵으로 포도주를 넉 잔 마셨습니다.
[오르공] 잘했다, 잘했어!
[도린느] 결국 두 분 다 잘 계십니다. 저는 부인 방으로 가서 주인 어른께서 부인의 병후를 염려하고 계시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5장
오르공, 끌레앙뜨
[끌레앙뜨] 매부! 저 애는 매부를 맞대놓고 비웃는 군. 화를 내도록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럴 만도 하군. 이런 뚱딴지같은 이야기가 어디 있나? 그 사람한테 어떤 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즈음 세상에 한 사내를 위해 만사를 잊어버린다는 게 있을 수 있나? 찢어지게 가난한 자를 집에 받아들여 먹여주고 마침내는……
[오르공] 처남, 잠깐, 처남은 그 사람의 인품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끌레앙뜨] 그렇다고 말하니까 모르는 걸로 해두지. 하지만 어떤 자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오르공] 알게 되면 처남도 홀딱 빠질 거요. 한없이 매혹되고 말 거야. 그 사람은…… 뭐라고 해야 좋을까……한 인간…….그래 한 인물이지.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마음의 평화를 맛보게 되고 이 세상을 하찮은 것으로 보게 돼요. 암, 그렇고말고.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마치 딴 사람이 된 것 같아.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말라고 가르치고, 모든 집착에서 나의 영혼을 해방시켜 줘요. 부모, 형제, 자식과 아내의 죽음을 맞게 될지라도 요만큼도 걱정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끌레앙뜨] 그게 인정이라는 건가!
[오르공] 정말이야! 그 분을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을 보았다면 처남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 분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을 거라오. 그 분은 매일같이 교회에 나와서는 상냥한 모습으로 나의 바로 앞에 앉곤 했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그 열렬함, 신자들의 눈길은 일제히 그 분에게로 집중되었지. 커다란 믿음의 기쁨에 한숨을 쉬고 겸허하게 끊임없이 마루에 입을 맞추고,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먼저 뛰어 나와 문에서 성수를 뿌려 주었어요. 그 분을 따르는 소년은 모든 점에서 그 분을 닮았다고 할 수 있는데, 소년으로부터 그 분의 궁핍한 생활. 인감됨을 듣고 난 약간의 선물을 했다오. 그러면 언제나 겸손하게 그 일부를 돌려보내거든. "이건 너무 많습니다. 절반만 해도 많습니다. 저는 당신의 자비를 받을 만한 인간이 못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야. 내가 되돌려 받지 않겠다고 하면 내가 보는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뜻으로 그 분을 우리 집에 모시게 되었고, 그 후 만사가 순조로운 것 같아요. 모든 일을 보살피고, 내 체면을 생각해서 내 아내에게까지 몹시 신경을 쓰니까. 아내에게 유혹의 눈길을 던지는 자가 있으면 곧 알려 주고 나보다도 몇 배나 질투를 해주시거든. 그러나 그 분의 믿음이 얼마나 처남은 알 수 없을 거요. 그 분은 하찮은 일을 자기의 죄로 생각하시고 아무 일도 아닌 걸로 마음 아파하신다오. 저번에는 기도를 하던 중에 이를 잡아 홧김에 죽여 버렸다고 마음의 가책을 느끼실 정도였으니까.
[끌레앙뜨] 기가 막히는군! 매부님, 좀 도신 것 아니오. 그런 허튼 소리로 날 놀리는 건 아니겠지? 대체 그게 다 무슨 소리요? 그 헛소리 같은……
[오르공] 처남의 말에서는 무신앙이 느껴지는군요. 영혼이 약간 벌레 먹은 듯해요. 열 번도 더 말했지만, 뭔가 흉칙스러운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끌레앙뜨] 그건, 매부님, 그런 패거리들이 언제나 하는 소리요.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을 장님으로 만들고 싶은 거지. 확고한 눈을 가지고 있으면 신앙이 없는 자이고, 헛된 거짓 꾸밈새를 찬양하지 않으면 신성한 것에 대한 믿음도 존경도 없다고 하신다.? 하지만 그런 소릴 들어도 조금도 겁나지 않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하늘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당신들 점잔 빼는 자들의 뜻대로 될 수는 없지. 거짓 용자(勇者)가 있는 것처럼 거짓 신자(信者)도 있는 법, 명예를 위해 행동하는 참된 용자는 떠들지 않는 것처럼, 온 세상이 뒤따라야 할 참된 신자는 뭐 그렇게 얼굴을 찌푸리고 법석을 떨지 않는다네. 대체 처남은 위선과 신앙을 구별할 줄도 모르나? 그걸 같은 말의 뜻으로 생각하고, 가면을 참된 얼굴과 같이 존경하고, 잔꾀를 성실성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진실과 외양을 혼돈하고, 유령을 인간과 같이 평가하며, 가짜 돈을 진짜와 같이 취급하려는 건가? 인간이란 대체로 알 수 없는 것, 그 본연의 자연 그대로의 인간이란 결코 볼 수 없으니까. 이성이 미치는 범위가 너무 좁은 까닭에 누구나 그 한계를 넘어서 버리거든. 가장 고상한 것도 그걸 과장하고 지나치게 내세우려 함으로써 망치고 말지. 이건 말을 꺼낸 김에 하는 말이지만, 매부님!
[오르공] 그래요, 처남은 분명히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학자님이야. 세계의 모든 지식을 몸에 지니고, 혼자만이 유일한 현자요 식자(識者)요 신탁(信託)이자 현대의 카퉁이랄까. 처남 곁에서는 누구나 멍청하게 보이지.
[끌레앙뜨] 매부! 나는 존경받는 학자도 아니고, 세계의 온갖 학식을 몸에 지니지도 않았네. 하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가짜과 진짜를 구별할 정도의 학식은 가졌지. 나는 뛰어난 신자보다 존경받을 자 없고, 참된 신앙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열정보다 더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네. 반면에 짐짓 신앙을 내세우는 꾸민 겉치레, 사기꾼 같은 자들, 눈길을 모으려는 신자들보다 더 밉살스러운 것은 없지. 그들은 사람을 속이고 신을 모독하는 얼굴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신성한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악용하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거든. 이해 타산에 혈안이 된 마음으로 신앙을 장사로, 상품으로 생각하고 거짓 눈짓과 꾸민 믿음으로 신용과 위엄을 사려고 하는 자들, 이런 자들은 비상한 열성으로 하늘에의 길을 이용해서 재산을 불리고 있지. 열정적인 기도를 바치며 사람들의 호의를 구하고, 궁정(宮庭)의 한 복판에서 은거(隱居)를 하라고 설교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악덕과 신앙을 교묘하게 일치시키는 거지. 그들은 성질이 급하고 복수심이 강하며, 성실성이라고는 없는데다 약삭빠르며, 남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는 뻔뻔스럽게 하늘의 이해를 바라고 그들의 무서운 원한을 감추거든. 그들의 분노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무기를 우리에게 휘두르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우리를 신성한 칼로 죽이려 하느니만큼 더욱 위험해지지. 이런 가짜 신자가 너무 많아. 그러나 또한 진정한 신자를 구별해 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지. 지금 세상에도 빛을 발할 정도로 모범이 되는 사람이 없지 않거든. 아리스통을 보게, 빼리앙들을 보게, 오롱트, 알시다마스, 뽀리돌, 크리탕들을 보게나. 그들의 신앙은 실로 인간적이며 친근감을 가질 수 있지. 그들은 우리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네. 남을 나무란다는 건 지나친 교만이라고 생각하니까. 잘난 체 큰소리치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들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는 거지. 겉으로 봐서 나쁜 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남을 선의로 해석하도록 노력한다네. 그들 사이에 도당을 만들거나 음모를 꾸미는 일은 절대로 없어. 온 정성을 다해서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지. 오직 죄만을 미워하지 않으며 지나친 열성으로 신 스스로가 원하는 이상으로 하늘의 이해에 상관하려 하지 않는다네. 그야말로 우리 편의 사람이요, 우리들이 취해야 할 태도지. 요컨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모범이라네. 솔직히 말해서 매부가 존경하는 그 사람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 자의 신앙심을 진정으로 칭찬하고 있지만 혹시 도금한 금빛에 눈이 부신 건 아닌지.
[오르공] 친애하는 처남, 다 끝났나요?
[끌레앙뜨] 끝났네.
[오르공] 그럼 이만 실례. (나가려 한다)
[끌레앙뜨] 잠깐, 한마디만, 아까 이야기는 그만두기로 하고, 발레르는 매부의 사위가 되기로 약속되어 있지 않은가?
[오르공] 그렇소.
[끌레앙뜨] 혼사 날짜도 정했다던데?
[오르공] 사실이오.
[끌레앙뜨] 그런데 왜 혼사날을 연기하는 거지?
[오르공] 모르겠는데.
[끌레앙뜨] 뭐 다른 생각이라도?
[오르공] 그럴지도 모르지.
[끌레앙뜨] 약속을 깨뜨리려는 건가?
[오르공] 그렇진 않아요.
[끌레앙뜨] 약속을 지키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을 텐데.
[오르공] 경우에 따라서는.
[끌레앙뜨] 한마디면 끝날 걸 어째서 그렇게 빙빙 돌리나? 발레르는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 나더러 매부를 만나 달라고 했다네.
[오르공] 잘한 짓이군!
[끌레앙뜨]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오르공] 좋을 대로.
[끌레앙뜨] 하지만 매부의 생각을 알아야 대답을 할 게 아닌가. 대체 어떻게 할 작정인가?
[오르공] 하늘의 뜻에 따라야지.
[끌레앙뜨] 똑바로 말해 보세나. 매부는 발레르에게 약속을 했소. 그 약속을 지키는 건가, 안 지키는 건가?
[오르공] 안녕!
[끌레앙뜨] (혼자서) 발레르의 사랑에 장애가 없어야 할 텐데. 가서 모든 걸 이야기해 주어야겠군.
제 2막
제 1장
오르공, 마리안느
[오르공] 마리안느.
[마리안느] 아, 아버님.
[오르공] 이리 가까이 오너라. 은밀히 말해 둘 게 있으니까.
[마리안느] 뭘 찾으세요?
[오르공] (작은 방을 들여다보며) 누군가가 엿듣지는 않겠지…… 이곳은 남몰래 엿듣기에 딱 좋은 곳이거든. 음, 됐군. 마리안느, 나는 언제나 널 얌전하다고 생각하고 귀엽게 여겨 왔다.
[마리안느] 지금까지 아버님께서 주신 사랑에 진정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르공] 말 잘했다. 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만족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마리안느] 그 이상 기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르공] 그렇고말고.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 따르뛰프를 어떻게 생각하지?
[마리안느] 누가요, 저요?
[오르공] 너 말이다. 잘 생각해서 대답해라.
[마리안느] 어머나! 아버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대답하죠.
(그 때 도린느가 슬그머니 들어와서 오르공에게 들키지 않도록 뒤에 선다.)
[오르공] 아주 착한 대답이다. 그럼 이렇게 대답해다오. 그 분은 온몸이 높은 덕으로 빛나시며, 그 분이 네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그리고 아버지 마음에도 들어 남편으로 그가 선택되면 기쁘겠다고. 어떠냐?
(마리안느, 놀라서 뒷걸음친다.)
[마리안느] 네?
[오르공] 왜 그러느냐?
[마리안느] 뭐라고 하셨어요?
[오르공] 뭐?
[마리안느] 내가 잘못 들었나?
[오르공] 뭐라고?
[마리안느] 누구 말씀이신지? 제 마음을 사로잡았고, 아버님 마음에도 들어 남편으로 선택되었으면 기쁘겠다는 사람이?
[오르공] 따르뛰프.
[마리안느] 천만에요. 맹세코 아니에요. 아버님! 왜 그런 허튼 소리를 저더러 하라고 하시나요?
[오르공] 나는 그것이 진실이었으면 한다. 내가 그렇게 결정한 데 대해 별로 불만은 없겠지?
[마리안느] 아니! 저, 아버님께서는……
[오르공] 그렇다. 나는 두 사람을 결혼시켜서 따르뛰프를 이 집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그는 네 남편이 된다. 내가 그렇게 결정했다. 네 소원에 따라……
제 2장
도린느, 오르공, 마리안느
[오르공] (도린느를 발견하고) 거기서 뭘 하는 게냐? 그런 식으로 엿듣다니. 호기심이 지나치구나.
[도린느] 정말이지. 어떤 억측이나 우연의 장난으로 퍼진 헛소문으로 생각합니다만, 저도 이 혼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전 그 때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웃어 넘겼지요.
[오르공] 뭐라고! 그럼 그게 믿을 수 없다는 거냐?
[도린느] 주인 어른께서 말씀하셔도 믿을 수 없을 정도에요.
[오르공] 믿을 수없다면 믿게 하는 방법이 있지.
[도린느] 네, 네. 농담을 잘도 하시는군요.
[오르공] 멀지 않은 장래에 실현될 이야기를 나는 하고 있는 거다.
[도린느] 설마!
[오르공] 내가 말하는 것은 장난이 아니야.
[도린느] 아버님 말씀을 믿지 마세요, 아가씨. 놀리고 계시는 거니까요.
[오르공] 내가 말하면……
[도린느] 뭐라고 하신대도 소용없어요. 절대로 믿지 않을 테니까요.
[오르공] 정 그러면 화를 낼 테다.
[도린느] 네, 그럼 믿기로 하죠.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민망합니다. 아니 그래, 얼굴 한복판에 긴 수염을 기르시고 분별이 있으실 듯한 어른이 정신 이상이라도 생기시기 전에야 어찌 그런……
[오르공] 이봐, 넌 요즘 함부로 입을 놀리는데, 내 비위를 거슬린단 마링야. 분명히 말했다.
[도린느] 주인 어른! 제발 역정내지 마세요. 그런 음모를 꾸미시다니, 사람들을 너무 놀리지 마세요. 아가씨가 그런 편협한 신자에게 어울릴 리가 없어요. 그 분도 또 자기대로 생각해야 할 딴일이 있고요. 게다가 그런 혼인을 해서 무슨 득이 있지요? 주인 어른처럼 재산도 있으신 분이 하필이면 그런 거지 사위를 고르실 필요가……?
[오르공] 닥쳐라. 그 분이 한푼도 없다면 바로 그 점이 그분의 존경받을 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 분의 가난은 바로 청빈하다는 증거니까. 그 가난이 그 분을 그 모든 위대함보다 더 높게 끌어올리는 거야. 그 분은 세속적인 것에 너무나 관심이 없고 한결같이 영원한 것에 집착하심으로써 결국 재산을 잃으신 거니까. 그러나 나의 도움으로 이 어려움을 벗어나고 재산을 다시 찾으실 수도 있을 거다. 고향에는 훌륭한 영토도 있다고 하고, 어떻게 보든 귀족임에는 틀림없으니까.
[도린느] 네, 본인이야 그렇게 말하겠죠. 하지만 그런 허풍은 신앙심을 내세우는 것과는 맞지 않아요. 티없는 성스러운 생활을 하는 자라면 자기의 이름과 가문을 그처럼 자랑삼아 떠벌이지도 않을 거에요. 믿음을 향한 겸허한 길은 요란스럽게 야심을 부리는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그 거만스러움이라니, 뭐에요? ……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주인 어른의 기분을 상하게 하니까. 그의 가문 이야기는 접어 두고 그의 인간됨을 이야기해 보죠. 그런 사내에게 아가씨 같은 따님을 주어도 그래 아무렇지도 않단 말씀이세요? 어울리는지 어떤지를 잘 따져서 이런 혼인의 결과를 생각하셔야지요. 신부의 의사가 무시된 결혼을 했을 때 흔히 정절을 못 지킨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훌륭한 아내로서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는 남편에게 달린 것, 수군수군 소문이 퍼지는 것도 흔히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남편이 꼴 같지 않으면 아내가 정절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싫은 남자를 딸에게 억지로 떠맡겼다가 딸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그건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책임이 있는 거죠. 주인 어른의 계획이 어떤 위험을 가져올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오르공] 나는 딸에게 올바른 삶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도린느] 제가 여쭙는 대로 하시는 게 제일입니다.
[오르공]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기로 하자. 마리안느,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내가 잘 알고 있다. 난 네 아버지니까. 발레르에게 널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도박을 즐긴다고 하는 데다가 신앙심조차 없는 것 같더구나. 교회에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도린느] 주인 어른께서 가시는 시간에 딱 맞춰서 거기로 달려가야 합니까? 사람들 눈에 띄기 위해 교회에 가는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오르공] 네 의견을 묻고 있는 게 아니다. 요컨대, 또 한 분은, 믿음으로 말하자면 그 이상 가는 사람이 없으며, 이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귀라 할 수 있지. 이 결혼은 너의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해 줄 것이며 부드러움과 기쁨에 푹 젖어들게 할 거다. 너희들은 신앙의 불꽃 속에서 두 어린애처럼, 두 마리의 산비둘기처럼 의좋게 사는 거지. 따분한 부부싸움 같은 건 하지도 않을 것이며, 너는 그 분을 소원대로의 남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도린느] 뭐라구요? 그런 사내를 남편으로 맞으면 오쟁이진 사내로 만들기 딱 맞죠.
[오르공] 이런, 방정맞은 소리!
[도린느] 제 말은 그 자의 꼬락서니가 그렇다는 거에요. 아가씨가 아무리 정숙하다고 할지라도 그 자가 타고난 사주팔자야 어쩌겠어요.
[오르공] 내 말을 가로채지 마. 그리고 네게는 아무 상관도 없느 일에 간섭하지 말고 입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거다.
[도린느] 주인 어른을 위해 말씀드리는 거에요. (도린느는 오르공이 딸에게 말을 하려고 돌아설 때마다 말을 가로챈다)
[오르공] 지나친 친절이야. 이제 좀 닥쳐.
[도린느] 주인 어른을 생각해서…….
[오르공] 생각해 줄 필요 없다.
[도린느] 주인님께서 싫다고 하시더라도 저는 생각해 드리고 싶은걸요.
[오르공] 이런!
[도린느] 주인 어른의 명예에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되잖겠어요. 일부러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다니, 참을 수 없어요.
[오르공] 닥치지 못해?
[도린느] 그런 혼인이 이루어지도록 보고만 있는다는 건 제 양심이 허락지 않아요.
[오르공] 닥치라니까. 뱀처럼 염치없이 지껄여대다니…….
[도린느] 어머나, 신자도 화를 내시나요!
[오르공] 물론이지, 그따위 소리르 들으면 속이 뒤집힌다. 확실하게 입을 닥치게 해줄 테다.
[도린느] 좋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하는 바가 달라지는 건 아니예요.
[오르공] 멋대로 생각해라. 하지만 앞으로 나에게 말할 때 조심해서 하지 않으면…… 됐어. (딸을 돌아보며) 나는 멍청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모든 것을 생각했다.
[도린느] (방백) 입을 다물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지는군. (그러다가 오르공을 돌아보면 입을 다문다.)
[오르공] 멋쟁이 청년은 아니지만 따르뛰프는…….
[도린느] (방백) 네, 낯짝이 일품이죠.
[오르공] 모든 다른 점이 네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도린느] 아가씨 앞길이 눈에 본 듯 뻔하군! (오르공은 도린느 쪽으로 돌아서서 팔짱을 끼고 똑바로 그녀를 쳐다본다.) 내가 아가씨의 입장이라면 강제로 결혼한 남자는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결혼식만 끝나면 여자는 언제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걸 금방 알려 주고말고.
[오르공] (도린느에게) 그래, 내 말을 안 들을 작정이냐?
[도린느] 나무라실 것 없어요. 주인 어른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르공] 그게 아니면 뭘 하는 거냐?
[도린느]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거에요.
[오르공] 좋아. (방백)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자면 뺨을 한대 갈겨 줘야겠군. (그는 뺨을 때릴 자세를 취한다. 도린느는 오르공이 노려볼 때마다 입을 다물고 꼿꼿이 선다) 얘야! 넌 내 계획에 찬성이지? …… 알겠지. 내가 고른 남편감은 ……. (도린느에게) 왜 말이 없느냐?
[도린느] 말할 게 없으니까요.
[오르공] 한마디 해보시지.
[도린느]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저는
[오르공] 그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도린느] 제가 뭐 천친가요!
[오르공] 어쨌든 내 마을 따라서 내가 고른 신랑을 공손하게 받아들이는 거다.
[도린느] (달아나며) 그런 남편을 얻다니! 웃음거리죠.
오르공은 도린느의 뺨을 갈기려 하나 실패한다
[오르공] 마리안느! 너에겐 병마가 붙었구나. 저런 것과 한집에 사니 나까지도 죄를 범하게 된다. 이 이상 말을 계속할 기분이 아니다. 고것이 버릇없이 지껄여대는 바람에 울화가 치밀어서 정신이 다 없을 지경이야. 밖에 나가서 바람을 좀 쏘이고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
제 3장
도린느, 마리안느
[도린느] 아가씨는 벙어리라도 되셨어요? 내가 대변인 역할을 해야 하게……. 그런 어이없는 소리를 듣고도 말 한마디 못하다니!
[마리안느] 고집불통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란 말이니?
[도린느] 그런 공갈쯤 피하도록 해야죠.
[마리안느] 어떻게?
[도린느] 이렇게 말하죠. 사랑이라는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결혼은 자신을 위해 하는 거지 아버지를 위해 하는 게 아니라고, 모든 일이 아가씨의 일이요. 남편이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가씨라고. 따르뛰프가 그렇게 마음에 드시면 본인이 결혼 하시라고.
[마리안느] 아버님은 우리에겐 너무나 무서운 존재이신걸. 감히 맞대어 말씀드릴 용기가 나에겐 없어.
[도린느]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세요. 발레르 님은 아가씨에게 청혼을 해오셨어요. 그 분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싫어하세요?
[마리안느] 아, 내 사랑을 그렇게밖에 생각지 않다니, 도린느! 감히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어? 내 마음은 벌써 수백 번도 더 말했고, 내가 얼마나 그 분을 그리워하는지 잘 알면서?
[도린느] 그것이 빈말인지 아닌지 누가 알며, 정말로 그 분을 사모하는지 어떻게 알 게 뭐예요?
[마리안느] 너무해, 도린느. 의심을 하다니…… 내 진심이 어떻다는 건 너무나 잘 알 텐데.
[도린느] 그럼 사랑하시는 거에요?
[마리안느] 그럼, 마음 깊이.
[도린느] 그 분도 아가씨를 사랑하시는 것 같던데, 어떠신가요?
[마리안느] 그렇다고 생각해.
[도린느] 두 사람이 한결같이 서로 결혼하기를 바라시는 거죠?
[마리안느] 물론이지.
[도린느] 그럼 또 하나 다른 혼담은 어떻게 하죠?
[마리안느] 그 결혼을 강요당하면 난 죽어 버리겠어.
[도린느] 멋있군요. 그런 수단이 있다는 걸 미처 몰랐네요. 골칫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어 버리면 된다는 거죠? 아주 훌륭한 방법이에요.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전 울화가 치밀어요.
[마리안느] 어머나! 왜 그렇게 화를 내지? 내 슬픔을 그렇게도 몰라 주다니.
[도린느] 그따위 객쩍은 소리나 하고 막상 기회가 오면 아가씨처럼 맥이 빠져 버리는 사람에겐 동정할 수가 없어요.
[마리안느] 하지만 어떻게 하겠어? 내가 소심해서 그런 걸.
[도린느] 그러나 마음에 사랑이 깃들이면 강해지는 법이에요.
[마리안느] 발레르의 연정에 대해서는 이렇게 확고한 태도를 갖고 있잖아? 아버님께 나와의 결혼을 허락받는 건 그분의 역할이 아니니?
[도린느] 뭐라구요! 아버님이 괴짜로 소문난 그 따르뛰프에게 홀딱 빠져서 일단 정한 혼인을 깨뜨려도 아가씬 그게 아가씨 애인의 잘못이라는 거예요?
[마리안느] 그럼 그때 내가 단호가게 거절하고 경멸의 빛을 뚜렷이 나타내며 내가 선택한 사람에게 정신없이 빠져 있다는 걸 보였어야 했니? 그 분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뜨거울지라도 그 때문에 여자의 수줍음을 잃고 딸의 도리를 지키지 않아도 돼? 내 연정을 세상에 드러내고…….
[도린느] 아뇨, 아뇨. 천만에요. 아마도 따르뛰프라는 그 작자한테 시집가고 싶으신 모양인데, 그 혼담을 방해했다가는 내가 몹쓸 여자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아가씨의 소원을 가로막을 까닭이 없지 않아요? 스스로 결정을 내린 것은 잘한 일이에요. 따르뛰프 씨! 오! 오! 아버님이 권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었군요. 잘 생각해 보면 따르뛰프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그의 반려자가 된다는 건 보통 복이 아니고요. 모든 사람이 그를 칭송하고 있고, 고향에서는 귀족이라죠. 몸내는 쑥 빠졌고 귀는 빨갛고 안색은 꽃과 같고, 그런 남편과 같이라면 퍽 행복하시겠어요.
[마리안느] 어쩜……!
[도린느] 그렇게 훌륭한 남편의 아내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쁘시겠어요?
[마리안느] 제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리고 이 호담을 없었던 일로 하는 데 네가 도와줘, 내가 손 들었어. 뭐든 할 테니까.
[도린느] 아니에요. 비록 원숭이를 남편으로 삼으라고 할지라도 복종해야지요. 아가씨는 정말 운이 좋아요. 대체 한탄할 게 뭐가 있어요. 역마차를 타고 그 분의 작은 고을로 간다. 백부라든가 사촌이 많이 있어서 그들과 사귀는 것은 퍽 재미있을 거야. 먼저 그곳의 상류 사회에 소개되고 도착 인사로 대법관 부인, 지방관 부인을 방문한다. 부인들은 아가씨에게 경의를 표해서 접는 의자를 권한다. 사육제에는 무도회와 대음악회를 기대할 수 있겠지. 알고 보면 퉁소 두 개만이 연주되는 그런 음악회지만……. 때로는 재주 부리는 원숭이와 인형극을 볼 테고, 물론 아가씨의 남편이…….
[마리안느] 그만! 그 정도면 됐어. 그보다도 어떻게 해야 이 난관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봐.
[도린느] 어떻게 감히 내가……? 할 수 없어요.
[마리안느] 제발 도린느, 그러지 말고…….
[도린느] 이 혼담이 이루어져서 혼이 좀 나봐야죠.
[마리안느] 제발 부탁이야!
[도린느] 싫어요.
[마리안느] 내 소원을 분명히 해서…….
[도린느] 안 돼요. 따르뛰프는 아가씨의 남편, 그렇게 되고 말 거예요.
[마리안느] 너에게만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는데, 그러니까 나에게…….
[도린느] 안 돼요. 아가씨는 틀림없이 따르뛰프 부인이 될 거예요.
[마리안느] 그럼 좋아! 내가 얄궂은 운명에 이끌려 가도 아무렇지 않다면, 앞으로 내가 만사를 포기해도 상관 말아. 자포자기가 되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이 괴로움에서 빠져나갈 확실한 방법을 나는 알아. (나가려 한다)
[도린느] 자, 자! 돌아오세요. 이제 그만 할 테니까요. 하여간 아가씨에게 동정을 하겠어요.
[마리안느] 이처럼 지독한 고통을 당할 바에는, 알겠어? 차라리 난 죽고 말 테야.
[도린느] 염려 마세요. 아주 빈틈없이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어머, 저기 아가씨가 좋아하는 발레르 님이 오시네요.
제 4장
발레르, 마리안느, 도린느
[발레르] 아가씨!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묘한 소문이 들리더군요.
[마리안느] 어떤?
[발레르] 당신이 따르뛰프와 결혼하게 된다는…….
[마리안느] 아버님이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은 틀림없어요.
[발레르] 아버님이……?
[마리안느] 갑자기 마음이 달라지셔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발레르] 뭐요? 진지하게?
[마리안느] 네, 아주 진지하게요. 이 혼인을 성사시키고 말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발레르] 그래, 당신 생각은?
[마리안느] 모르겠어요.
[발레르] 대답 한번 시원스럽군요. 모르신다?
[마리안느] 네.
[발레르] 네라뇨?
[마리안느]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발레르] 그자와 결혼하면 좋겠군요.
[마리안느] 그렇게 하라는 말씀인가요?
[발레르] 네.
[마리안느] 진정이세요?
[발레르] 물론이죠. 그 자는 훌륭한 신랑감이죠. 얌전하게 말을 들을 만한 가치가 있어요.
[마리안느] 좋아요! 충고하시는 거라면 충고에 따르겠어요.
[발레르] 충고를 따르는 데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마리안느] 충고를 해주신 당신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요.
[발레르] 나는 당신 마음에 들려고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마리안느] 나도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 따를 뿐이에요.
[도린느] (무대 뒤쪽으로 물러서며) 이 일이 어떻게 되어갈지 좀 두고 보아야겠는걸.
[발레르] 그래, 그게 사랑한다는 겁니까? 그건 속임수였군요. 언젠가 당신이…….
[마리안느] 제발 그 말은 그만두기로 해요. 당신은 솔직하게 말씀하셨어요. 아버님이 권하는 남편을 받아들이라고요.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죠. 당신이 그처럼 유익한 충고를 해주신다면 저로서도 그 충고에 따르겠다고요.
[발레르] 내 생각을 따르느니 어쩌니 하고 변명하지 말아요. 당신 결정은 이전에 이미 되어 있었던 거니까요. 하찮은 구실을 내세워 약속을 깨드리려는 거죠?
[마리안느] 그래요, 잘 말씀하셨어요.
[발레르] 물론이죠. 당신은 단 한 번도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 적이 없어요.
[마리안느]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자유지요.
[발레르] 네, 네. 내 자유이고말고요. 그러나 나도 내 감정을 짓밟힌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마음을 바치고 청혼을 할 상대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마리안느] 그러시겠죠. 당신의 인품에 끌려서……
[발레르] 인품을 운운할 때가 아니에요. 나는 보잘것없는 인간이오. 당신이 그걸 증명해 준 셈이니까. 그러나 다른 여자가 나에게 호의를 갖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요. 당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게 확실해지면 거리낌없이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마리안느] 대단한 상처가 아니겠지요. 상대를 바꾸어서 마음을 달래실 테죠.
[발레르]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죠. 그렇게 생각하셔도 할 수 없습니다. 버림을 받게 되면 체신이라도 지켜야죠. 그런 사람을 잊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그래도 잘 되지 않으면 잊어버린 양 가장이라도 한다, 외면한 여자에게 미련을 갖는 비열한 태도는 켤코 용서될 수 없으니까요.
[마리안느] 훌륭하고 거룩한 마음씨로군요.
[발레르] 그렇고말고요, 서로 불평할 건 없을 거예요. 아니, 그럼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모하고 있으란 말이여, 당신에게 버림을 받고도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내 눈앞에서 당신이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보고 있으라 이겁니까?
[마리안느] 천만에요. 내가 바라는 것은 지체없이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는 거예요.
[발레르] 진정 그걸 바라신다는 겁니까?
[마리안느] 네.
[발레르] 이 정도 모욕을 받았으면 됐어요. 지금 당장 내려가서 당신을 만족시켜 드리지요. (그는 나가기 위해 한 발짝 떼었다가 다시 들어온다)
[마리안느] 네, 그러세요.
[발레르] (되돌아오며) 적어도 나에게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이라는 것만큼은 잊지 마십시오.
[마리안느] 네
[발레르] 그리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당신의 전례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도.
[마리안느] 나의 전례를요? 좋아요.
[발레르] (나가며) 됐어요. 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 해보일 테니까.
[마리안느] 아주 잘됐어요.
[발레르] (다시 돌아오며) 이제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요.
[마리안느] 마침 잘됐어요.
[발레르] 네? (그는 나가려다 말고 문에서 뒤돌아본다)
[마리안느] 뭐죠?
[발레르] 부르지 않았나요?
[마리안느] 내가요? 설마
[발레르] 그럼,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는 서서히 나간다)
[마리안느] 안녕히 가십시오.
[도린느] (마리안느에게)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시다니 어떻게 된 것 아니에요? 두 분의 다툼이 대체 어디까지 갈까 하고 보고 있었어요. 이보세요. 발레르 님! (그녀는 발레르의 팔을 잡는다. 그는 굳이 뿌리치는 체한다)
[발레르] 허! 도린느, 왜 이래?
[도린느] 이리 오세요.
[발레르] 싫다. 싫어. 난 화가 나서 못 견디겠어. 아가씨 소원대로 하려는 거니까, 말리지 마!
[도린느] 기다리세요
[발레르] 안 돼.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됐으니까.
[도린느] 아!
[마리안느] (방백) 나를 보는 게 싫은가 봐. 내가 있어서 나가려는 거야. 이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 낫겠어.
[도린느] (발레르를 두고 마리안느에게 달려간다) 이번에는 아까시……. 대체 어딜 가려는 거죠?
[마리안느] 놔
[도린느] 돌아오세요
[마리안느] 싫어, 싫어 날 붙들려 해도 소용없어.
[발레르] (방백) 나를 보는 게 괴로운 모양이야. 어서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어.
[도린느] (이번에는 마리안느를 두고 발레르에게 달려가서) 또 그러세요?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마음에 없는 짓은 그만 하고 두 분 다 이리 오세요. (그녀는 둘을 잡아 끈다.)
[발레르] (도린느에게) 어쩔 셈이야?
[마리안느] (도린느에게) 뭘 하려는 거야?
[도린느] 두 분을 화해시키고 싸움의 끝맺음을 하자는 거죠. (발레르에게) 이런 다툼질을 하다니, 정신이 어떻게 되신 것 아니에요?
[발레르] 그녀가 나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듣지 않았어?
[도린느] (마리안느에게) 그렇게 화를 내다니, 정신 나가셨어요?
[마리안느] 내가 그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너도 보지 않았니?
[도린느] (발레르에게) 두 분 다 멍청해요. 아가시는 당신에게 몸을 맡기는 것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내가 증인이에요. (마리안느에게) 이분은 아가씨만을 사랑해요. 아가씨의 남편이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소원이 없어요. 목숨을 걸고 보증해요.
[마리안느] (발레르에게) 그렇다면 왜 그런 충고를 하셨나요?
[발레르] 그런 걸 왜 나에게 묻는 거요?
[도린느] 두 분 다 좀 이상해요. 자, 서로 손을 잡으세요. (발레르에게) 자, 당신부터.
[발레르] (도린느에게 손을 내밀며) 내 손으로 뭘 하려는 거지?
[도린느] 아휴! (마리안느에게) 자, 아가씨도
[마리안느] (역시 손을 내밀며) 이런 짓을 해서 뭘 해?
[도린느] 어마나! 자, 이제 앞으로 나오세요. 두 분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어요.
(발레르와 마리안느는 잠시 서로 딴 곳을 쳐다보며 손을 잡고 있다.)
[발레르] (마리안느에게 돌아서며) 무슨 일리아도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에요. 화를 내지 말고 잠깐 날 보면 어때요.
(마리안느는 슬그머니 발레르를 쳐다보며 약간 미소를 짓는다)
[도린느] 솔직히 말해서 연인들이란 모두 돌았어요!
[발레르] (마리안느에게) 내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죠. 솔직히 말해서 나를 괴롭히는 말을 하고 좋아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마리안느] 당신이야말로 가장 몰인정한 사람 아니시던가요?
[도린느] 그 논쟁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금은 그 고약한 혼담을 깰 방법이나 연구해 봐요.
[마리안느]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줘.
[도린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죠. (발레르에게) 도련님 아버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웃어 넘기시죠? 터무니없는 소리라고요. (마리안느에게) 하지만 아가씨는 아버님께서 무슨 말을 하시든 겉으로는 온순하게 받아들이는 게 나아요. 그렇게 하는 것이 긴급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더라고 그 혼담을 연기시키기에 좀더 쉬울 테니까요. 시간 여유만 있다면 뭣이건 수가 생기니까요. 갑자기 아프다는 핑계로 날짜를 뒤로 미룰 수도 있을 게고, 운 나쁘게 장례행렬을 만났다든가, 거울을 깼다든가, 흙탕물 꿈을 꾸었다든가, 그런 불길한 전조를 구실삼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무튼 무엇보다도 다행인 건 아가씨가 승낙하기 전에는 발레르 님 아닌 다른 사람과는 결혼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죠. 그러나 일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두 분이 함께 계시는 것을 들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발레르에게) 자, 돌아가세요. 지체없이 친구들의 힘을 빌어 주인 어른이 약속한 바를 지키도록 하세요. (마리안느에게) 우리는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어머님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도록 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발레르] (마리안느에게) 모두가 어떤 노력을 하든 내가 무엇보다도 믿고 있는 것은 당신이라오.
[마리안느] 아버님의 의사가 어떻게 움직일지 그건 보증할 수 없지만, 발레르 당신 아닌 어느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어요.
[발레르]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구료!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도린느] 아! 연인들이란 아무리 조잘거려도 지치지 않나 보군요. 자 어서 나가세요.
[발레르] (한 발자국 가다가 되돌아온다) 결국은…….
[도린느] 또 수다를 떠실려고! 한쪽은 이쪽으로, 당신은 저쪽으로 (도린느는 둘의 어깨를 떠밀며 두 사람이 헤어지도록 한다)
제 3막
제 1장
다미스, 도린느
[다미스] 어떠한 존경심이나 권력도 나를 얌전하게 떼어 두지는 못할 것이며, 내가 뭔가 한바탕 하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 죽어도 좋고 어디서이건 형편없는 하인 취급을 받아도 좋다.
[도린느] 제발 그렇게 흥분하지 마세요. 아버님께서는 그저 그런 말을 하셨을 뿐이니까요. 누구나 생각대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는 법. 계획을 세워서 이루기 위해서는 먼 길을 가야 해요.
[다미스] 그 작자의 음모를 막아야 해. 아버님께도 말씀드려야지.
[도린느] 자, 그러지 말고 마음을 가라않히세요! 그 자에 대해서나 아버님에 대해서나 함부로 굴지 못하고, 어머님 말씀이라면 아첨을 하거든요. 어쩌면 어머님께 마음이 있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잘된 거죠! 이야기가 멋지게 되는 거예요. 하여간 어머님께서는 도련님을 위해 그 자를 부른 겁니다. 도련님이 걱정하고 있는 결혼에 관해서 그의 마음을 떠보고 그의 기분을 알아보시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가 끝내 계획을 실현시킬 생각이라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걸 그에게 말할 겁니다. 그의 종복 말이 지금은 기도중이어서 만나지 못했지만 곧 내려온다고 그러더군요. 그러니 제발 여기서 나가주세요. 나 혼자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요.
[따르뛰프] 제 기도는 하늘에서 그만한 은총을 받을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부인의 건강이 회복되시길 빌며 열렬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엘미르] 저에 대한 염려로 퍽 마음을 쓰신 모양이군요.
[따르뛰프] 부인의 건강은 아무리 소중히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부인께서 회복되신다면 기꺼이 제 건강과도 맞바꾸겠습니다.
[엘미르] 그건 기독교도로서의 자비를 지나치게 베푸시는 겁니다. 모든 호의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따르뛰프] 부인의 인품을 생각한다면 저의 정성 따위는 오히려 부족합니다.
[엘미르] 어떤 일에 대해서 은밀히 상의드렸으면 해서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정말 다했이군요.
[따르뛰프] 저도 마찬가지로 기쁘게 생각하니다. 부인과 단둘이 마주보고 있을 수 있다니,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이 같은 기회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원드렸는데, 지금까지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었어요.
[엘미르] 저는 몇 마디 상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마음을 털어놓고 숨김없이 말해 주세요.
(다미스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이 대화를 듣기 위해 숨어 있는 방의 문을 살짝 연다)
[따르뛰프] 저도 이 다시없는 기회에 속마음을 털어놓고 보여 드릴까합니다. 맹세코 말씀드리는데, 부인의 매력에 끌려 많은 방문객이 이 집을 드나드는 것에 대해 이제껏 귀찮게 말씀을 드렸던 것은 결코 증오심에서 한 짓이 아닙니다. 그건 한결같이 부인을 향한 정열과 순수한 마음에서…….
[엘미르]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의 영혼이 구원을 위해 마음을 쓰신다고요.
[따르뛰프] (그녀의 손가락 끝을 잡으며) 그렇습니다. 부인. 이 불타는 정열…….
[엘미르] 어머나! 아파요. 그렇게 세게 잡으시면.
[따르뛰프] 정열이 지나쳐서 부인을 아프게 하다니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엘미르의 무릎 위로 손을 가져간다)
[엘미르] 그 손으로 뭘 하세요?
[따르뛰프] 부인의 옷을 만지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천이군요.
[엘미르] 어마나! 제발 그러지 마세요. 간지러워요. (그녀는 의자를 뒤로 옮긴다. 그러자 따르뛰프는 자기 의자를 가까이 가져간다)
[따르뛰프] (엘미르의 숄을 만지며) 이건 참 훌륭한 천입니다. 요즈음은 솜씨들이 대단히 좋아지기는 했습니다만, 이처럼 잘 짜여진 것은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엘미르] 네, 그래요. 이제 우리 용건에 대해서 좀 이야기하죠. 남편은 자신의 약속을 깨뜨리고 당신과 딸을 결혼시키려고 한다는데, 정말인가요?
[따르뛰프] 그런 말씀을 잠깐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건 제가 바라는 행복이 아닙니다. 저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는 행복, 찬란한 매력은 다른 데 있습니다.
[엘미르] 그건 당신이 이 지상의 것을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죠.
[따르뛰프] 저의 가슴에도 돌로 된 심장이 들어 있는 건 아니랍니다.
[엘미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당신의 기원은 모두 하늘을 향해 있고, 이 세상의 것은 아무것도 당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고.
[따르뛰프] 우리를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맺어 주는 사랑도 지상의 것에 대한 사랑을 질식시키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의 감각은 신이 만드신 완벽한 작품에 쉽사리 매혹됩니다. 당신들 여성에게는 깊은 매력이 있습니다. 눈을 놀라게 하고 마음을 황홀케 하는 아름다움이 당신 얼굴에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완벽한 피조물이라 할 수 있는 당신을 볼 적마다 창조자이신 신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스스로를 그린 가장 아름다운 초상을 보고 제 마음은 열정적인 사랑에 사로잡혔습니다. 처음엔 이 남모르는 정열을 악마의 교묘한 함정이나 아닌가 염려하고 당신의 눈길을 피하려고 애쓴 적도 있었습니다. 당신을 저의 구원에의 길을 막는 장애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그대여! 마침내 저는 이 정열이 죄가 될 수 없으며 정숙함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저는 그 정열에 마음을 맡겼습니다. 이 마음을 감히 당신께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지나친 만용이라 하겠습니다만, 저의 소원은 전적으로 부인의 호의에 달려 있으며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저의 헛도니 노력에 전혀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의 희망, 저의 행복, 저의 마음의 평와, 이 모두가 당신 속에 있으며 괴로움을 당할 것인가, 무상의 기쁨을 얻느 것인가 또한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요컨대 저는 당신의 마음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도 또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엘미르] 꽤 품위있는 고백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사실 전 약간 놀랐습니다. 마음을 더 굳건히 가지시고 그런 일에 대해서는 좀더 경우를 따져서 생각하셔야죠. 당신 같은 독실한 신자로서, 어디서나 그렇게 말하기……
[따르뛰프] 독실한 신자라 해도 저 역시 인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아름다움에 내 마음은 사로잡히고 이성은 저 멀리 사라지고 맙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의외로 느껴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인, 저는 천사가 아닙니다. 저의 고백을 나무라시기 전에 당신의 황홀한 매력을 책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아름다움이 빛나는 것을 본 이후 저의 마음은 당신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성스러운 눈길의 그지없는 부드러움은 끝까지 저항하려는 저의 마음을 정복해버렸습니다. 단식도 기도도 눈물도 헛된 것을 뿐, 저의 모든 소원이 당신의 매력을 향해 쏠렸습니다. 저의 눈과 한숨이 벌써 무수히 당신께 호소했습니다만, 제 마음을 더욱 잘 설명하기 위해 음성의 힘을 빌리는 겁니다. 보잘것없는 당신의 노예의 괴로움을 인지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시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위로해 주시고 황량한 제 마음의 밑바닥까지 내려오신다면 오, 황홀한 기적이여! 저는 더할 수 없는 사랑의 헌신을 당신께 바칠 것입니다. 저와 더불어서라면 당신의 명예에 금갈 염려가 없으며, 제가 당신을 저버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인들이 빠져들 듯 좋아하는 궁정의 멋쟁이들은 죄다 그 행실이 요란하고 그 말에는 성의가 없습니다. 사랑의 솜씨가 좋아졌다고 끊임없이 잘난 체하며 여인의 호의를 받으면 그걸 여기저기 떠들고 다닙니다. 여인들은 그들의 조심성없는 혀를 믿고 있습니다만 그야말로 마음을 바칠 제단을 더럽히는 짓입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후미진 사랑의 불길에 타는 자를 상대로 하면 언제까지나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평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책임을 지는 겁니다. 저의 마음을 받아들여 주시면 추문이 따르지 않는 사랑, 두려움없는 쾌락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엘미르] 알겠습니다. 퍽 노골적인 표현을 하시는데, 그만하면 알아듣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열렬한 사랑의 속삭임을 제가 남편에게 일러바치지나 않을까, 그처럼 성급한 사랑의 고백이 남편의 당신에 대한 우정을 해치진 않을까 염려해 보지는 않으셨나요?
[따르뛰프] 당신은 그지없이 선량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그러니 제 경솔한 행동을 용서해 주실 겁니다. 너무나 격렬한 사랑의 열정으로 해서 부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지라도 인간 누구나가 지니는 약점으로 너그러이 봐주시리라 믿습니다. 부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생각하시고, 제가 장님이 아니라는 것, 또 인간이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십시오.
[엘미르] 다른 여자라면 그 말씀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몸가짐을 더욱 조심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남편에게 한마디도 않겠습니다. 그 대신 하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발레르와 마리안느의 혼담에 트집잡지 마시고 쉽사리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 자신 그 애 부친의 그릇된 권력을 이용하지 마시고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재산을 탐내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제 4장
엘미르, 다미스, 따르뛰프
[다미스] (숨어있던 방에서 나오며) 안 돼요! 어머님, 안돼요. 모든 사람에게 얘기해야지요. 저는 저기서 모든 걸 다 들었습니다. 하늘의 뜻이 저를 그곳으로 인도한 것일 겁니다. 그럼으로써 저를 해치는 악당의 교만한 콧대를 꺾어 놓고 그 자의 위선과 오만불손에 앙갚음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아버님을 깨우쳐 드리고, 어머님께 사랑을 속삭이는 악당의 본성을 백일하에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미르] 안 돼, 다미스. 이 분이 더 총명해지시고 나의 호의에 보답하도록 노력해 주면 그걸로 다 된 거야. 일단 약속한 이상 그 약속을 내가 지킬 수 있도록 해다오. 법석을 떠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아. 현명한 여자는 이런 어리석은 일쯤 웃어 넘기고 남편에게 그런 걸 알려서 걱정을 끼치지 않는 법이다.
[다미스] 어머님께서 그렇게 행동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그러나 제가 다른 행동을 취하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자를 너그러이 봐준다면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이 자가 위선으로 꾸며진 신앙을 내세우고 오만불손하게 나오는 바람에 저의 정당한 분노는 짓밟히고 온 집안이 뒤죽박죽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 사기꾼은 정말로 오랫동안 아버님을 속여 왔습니다. 그리고 저와 발레르의 우정의 불길에 재를 뿌려 왔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런 자에게 이제 그만 농락당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늘은 저에게 절호의 기회를 내리신 겁니다. 이 기회를 갖게 된 것도 하나님 덕택, 그냥 넘겨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기회입니다. 기회를 잡고도 이용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그 기회를 다시 앗아간대도 할말이 없습니다.
[엘미르] 다미스…….
[다미스] 아닙니다. 저는 저의 신념에 따라 행동합니다. 저의 마음은 지금 기쁨으로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뭐라고 말씀하셔도 이 복수의 기쁨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 이상 주저할 것 없이 일을 해치워야지. 자, 때마침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실 분이 오시는군.
제 5장
[다미스] 아버님, 오시자마자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드려야겠습니다. 무척 놀라실 테지만요. 아버님의 모든 후의는 충분히 모상된 셈입니다. 이 분은 아버님의 친절에 훌륭한 보답을 하신 겁니다. 아버님에 대한 그의 크나큰 애정이 분명히 표시된 거죠. 즉 아버님의 체면에 먹칠을 않고는 못 배긴 거니다. 저는 이 자가 뻔뻔스럽게도 어머니께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워낙 상냥하시고 조심성있는 분이신 까닭에 어떻게 해서라도 이 일을 덮어두려고 하셨습니다만, 저는 이런 파렴치한 짓을 그대로 보아 넘길 수가 없습니다. 아버님께 숨기는 것은 그야말로 아버님을 모욕하는 게 됩니다.
[엘미르] 그래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로 남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아서는 안 되며, 그런 일로 체면이 손상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스스로 몸을 지킬 줄 알면 그걸로 되는 것이라고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다미스가 내 말을 좀 더 들어줬더라면 당신에겐 이런 말을 전혀 안해도 되었을 텐데요.
제 6장
오르공, 다미스, 따르뛰프
[오르공] 오, 하늘이여! 지금 내가 들은 소리가 믿을 수 있는 일일까?
[따르뛰프] 네, 그렇습니다. 형제여! 저는 악인이고 죄인입니다. 부정 투성이의 불행한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대악당입니다. 저의 생애의 모든 순간이 오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죄악과 추잡함의 축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늘이 저를 벌하기 위하여 지금 이 순간 고행을 내리시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아무리 커다란 벌을 내리신다 할지라도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믿으시고 더욱 화를 내시고 죄인으로서 저를 이 집에서 내쫓아 주십시오. 어떠한 치욕을 받을지라도 저는 그 이상의 죄를 범한게 분명합니다.
[오르공] (아들에게) 이런 나쁜 놈!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여서 이 분의 티없이 맑은 덕을 해치려는 거냐?
[다미스] 뭐라구요? 이 위선자의 겉치레뿐인 다정함에 넘어가서 사실을 부정하시려고…….
[오르공] 닥쳐! 몹쓸 놈 같으니.
[따르뛰프] 아닙니다. 말하게 내버려 두십시오. 그를 나무라시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이 좋습니다. 어찌 그런 일로 저의 편을 드시려 하십니까? 제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어떻게 아십니까? 저의 겉치레만을 믿고 계시는 건가요? 겉치레만을 보고 저를 보다 나은 인간으로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당신은 제 외관에 속고 있는 겁니다. 불행히도 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모두들 저를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은 전 아무런 가치 없는 인간입니다. (다미스에게) 그렇습니다. 친애하는 자제분이여! 뭐라고든 말하시오. 나를 배반자, 파렴치한, 미친놈, 도둑놈, 살인자로 취급하시오. 그보다 더한 저주받을 이름을 내게 실컷 퍼부으시오. 나에게 다른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인간이니까요. 나는 나의 생애의 죄에 어울리는 수치로서 이렇게 무릎을 꿇고 이 모욕을 받아들일까 합니다.
[오르공] (따르뛰프에게) 형제여, 그건 지나친 말씀입니다. (아들에게) 너는 아무렇지도 않느냐, 이 배반자 같으니!
[따르뛰프] 형제여. 신의 이름에 맹세코 화내지 말아 주시오. 아드님이 저로 인해서 할퀸 상처라도 맏게 된다면……. 전 그 어떠한 고통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르공] (아들에게) 배은망덕한 놈!
[따르뛰프]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필요하다면 제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오르공] (따르뛰프를 쫓아 무픞을 꿇고 그를 껴안으며) 오! 어찌 그런 겸손을? (그러고는 아들에게) 이놈아. 봐라! 이 분이 얼마나 너그러우신가를……
[다미스] 그럼…….
[오르공] 조용히 해!
[다미스] 뭐라구요? 나는……
[오르공] 닥치라고 말했다! 네가 왜 이분을 나쁘게 말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너희들은 모두 이 분을 미워하고 있어. 오늘 난 더욱 분명히 알았다. 아내도, 자식들로 하인들까지도 그를 미워하고 날뛰고 있음을 말이야. 모두가 이 믿음 깊은 분을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 뻔뻔스럽게 갖은 수단을 다 쓰고 있지. 그러나 너희들이 이 분을 쫓아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나는 이 분을 더 붙들 테다. 그리고 온 가족의 교만한 콧대를 꺾어 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서둘러 이 분에게 딸을 시집보내겠다.
[다미스] 강제로 꼭 그래야만 하나요?
[오르공] 그렇다, 이놈아! 오늘 밤 당장에. 너희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흥! 너희들 모두를 상대로 알려 주겠다. 이 집의 가장은 나며 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자, 아까 한 말을 취소해라, 건달 같은 놈! 이 분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란 말이다.
[다미스] 누가요. 내가요? 이 불한당 사기꾼한테……
[오르공] 이 자식! 나에게 반항하고 이 분에게 감히 모욕을 줘? 회초리, 회초리를 가져와! (따르뛰프에게) 말리지 마시오. (아들에게) 썩 여기서 나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이 집에 들어올 생각일랑 마!
[다미스] 네, 나가지요. 그러나……
[오르공] 어서 썩 꺼져. 오늘로서 네놈의 상속권은 사라졌다. 대신 나의 저주를 주도록 하지.
제 7장
오르공, 따르뛰프
[오르공] 성인 같은 분을 모욕하다니!
[따르뛰프] (방백) 오, 하늘이여!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을 그를 위해 용서하소서! (오르공에게) 형제처럼 생각하는 당신에게 저를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제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실 겁니다……
[오르공] 아, 그럴 수가!
[따르뛰프] 그 배은망덕한 행동을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낍니다. …….두렵기 짝이 없는……가슴은 답답하고 말이 안 나오고,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오르공]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쫓아낸 문쪽으로 달려가서) 악당! 이 손으로 너를 갈겨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구나. 이 자리에서 당장 뻗게 해주었어야 하는 건데! (따르뛰프에게) 기운을 차리시고 울분을 참으십시오.
[따르뛰프] 그만둡시다. 불쾌한 이야기는 이걸로 끝내기로 하죠. 저는 이 가정에 아마도 크나큰 분재을 가져온 듯합니다. 제가 이 집을 더나야 할 것 같습니다.
[오르공] 뭐라구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따르뛰프] 모두가 저를 미워합니다. 저의 변함없는 마음을 당신으로 하여금 의심케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르공] 상관없습니다! 제가 어디 그들 말을 믿기나 합니까?
[따르뛰프] 그들의 충고는 아마 계속될 겁니다. 그러한 고자질을 오늘은 물리치셨지만 다음에도 귀를 기울이시지 않는다고 볼 수 없잖겠습니까?
[오르공] 아니오, 절대로.
[따르뛰프] 아 형제여! 여자란 남편의 마음을 쉽사리 사로잡을 수 있는 법.
[오르공] 아닙니다. 아니에요.
[따르뛰프] 자. 어서 나를 여기서 나가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저를 공격할 이유도 없어질 테니까요.
[오르공] 나의 생사에 관계되는 일, 제발 계속 머물러 주십시오.
[따르뛰프] 좋습니다. 제가 괴로움을 당해야 하겠지만, 당신이 그렇게 원하시니……
[오르공] 아!
[따르뛰프] 네, 알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바 아닙니다. 명예란 중상받기 쉬운 것, 당신에 대한 우정으로 저는 사람들의 쑥덕공론과 수근거림을 경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인을 피해서 다시는…….
[오르공] 아니오, 누가 뭐라고 하든 아내와는 가까이 지내주시오. 사람들의 화를 돋구는 건 내 가장 큰 기쁨, 언제나 당신이 아내와 같이 있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 주십시오. 그뿐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만을 상속인으로 정할 작정이오. 모두를 더욱 놀래켜 주기 위해서, 나는 이길로 가서 정식 수속을 밟고 내 재산을 몽땅 당신에게 드리겠소. 내가 사위로 선택한 친절하고 정직한 친구는 나에게는 아들보다도 또 아내보다도, 친척보다도 훨씬 더 소중하니까. 내 제의를 받아 주시겠소?
[끌레앙뜨] 네, 세상이 그 소문으로 떠들썩합니다. 이런 소문이 퍼지는 것은 당신에게 켤코 명예롭지 못합니다. 마침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간단히 내 의견을 말씀드리죠. 나는 사람들의 소문을 낱낱이 들출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나는 이 문제를 나쁘게 해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미스의 행동은 옳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당신이 부당한 비난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그의 행동을 용서해 주고 복수의 마음은 깨끗이 털어 버리는 게 기독교도다운 행동이 아닐까요? 그 같은 다툼으로 아들이 그 부친의 집에서 쫓겨나는 걸 묵과해도 괜찮을까요? 다시 한번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어른 아니 할 것 없이 그 소문을 듣고 분개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 말을 믿고 일을 순탄하게 처리해서 파국으로 몰고 가는 걸 피하십시오. 당신의 울화는 하나님께 바치고 부자를 화해시키도록 해야만 합니다.
[따르뛰프] 아! 그럴 수만 있다면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그 청년을 그다지 나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전 모든 걸 용서했습니다. 무엇 하나 책망할 생각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이 그와는 다릅니다. 그 청년이 되돌아오면 제가 나가야 합니다. 그런 비길 데 없는 모욕을 당한 후 우리가 서로 상대를 한다면 오히려 더 나쁜 소문이 날 거라고 생각됩니다. 첫째로 모든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 거라는 건 뻔합니다. 내가 요령있게 처신을 한다고 사람들은 나에게 덮어씌울 테니까요. 어디서나 이렇게 말할 겁니다. 스스로 꿀리는 구석이 있으니까 자기를 비난하는 자에게 친절한 체한다든가, 상대가 두려우니까 가까이 두고 관대한 태도를 취하며 입을 봉하게 하고 있다든가…….
[끌레앙뜨] 아주 제대로 된 변명을 하시는군요. 당신의 이슈는 꾸며진 거라는 게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는군요. 하늘의 뜻을 거기다 끌어댈 것까진 없지 않습니까? 죄인을 벌하는 데 신이 우리의 힘을 빌어야 한다는 겁니까? 천벌을 내리는 건 신의 뜻에 맡기고 모욕을 용서해 주는 신의 가르침만을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지상의 명령을 따르는 데 인간의 판단 따위를 고려할 필요는 없지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으로 선행을 베풀 수 있는 영광을 놓친단 말입니까? 안 됩니다. 언제나 하늘이 명하는 대로 따르고 다른 생각으로 정신이 흐려지지 않도록 합시다.
[따르뛰프]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제 마음은 벌써 그를 용서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하늘이 지시하는 바대로 실천한 거죠. 그러나 오늘처럼 모욕을 받고 말썽이 생겨서는 제가 그와 같은 집에서 사는 걸 하늘도 명령하지 않습니다.
[끌레앙뜨] 그럼 신은 이렇게 명령하나요? 순전히 부친의 변덕스러운 생각에 귀를 기울이라고요? 법률상 당신에게는 전혀 주장할 권리가 없는 재산을 받으라고 명령하나요?
[따르뛰프]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물욕에 눈이 어두워 그런 행동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을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은 저에게는 아무런 매력이 없습니다.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는 그 찬란한 빛에도 내 마음은 결코 현혹되지 않습니다. 그 부친이 주겠다는 재산을 받아들일 결심을 한 것은, 사실을 말하자면, 그 전부가 악한 사람들 손에 들어가지 않을까 염려해서이빈다. 그것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죄 많은 용도에 그걸 쓰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신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는 사용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끌레앙뜨] 하하! 그런 지나친 염려는 제발 거두시죠. 정당한 상속인으로부터 항의가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부질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상속인이 재산을 받고 그로 인해 위험을 겪도록 내버려 둬야죠. 재산을 가로챘다고 비난을 받느니보다는 본인에게 멋대로 쓰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당신이 그 부친의 제의를 태연히 받아들인 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 참된 신앙에는 정당한 상속인의 재산을 가로채라는 격언이라도 있나요? 가령 또 하늘의 뜻에 의해 도저히 다미스와 같이 살 수 없다면 분별있는 사람으로서 당신은 점잖게 여길 나가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 집 자식이 당신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는데 염치없이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의 성실성을 보여 주는 기회로……
[따르뛰프] 마침 세 시가 되었군요. 위에 올라가서 경건한 의무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송하지만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끌레앙뜨] (혼자서) 아!
제 2장
엘미르, 마리안느, 도린느, 끌레앙뜨
[도린느] (끌레앙뜨에게) 부탁입니다. 아가씨를 위해 저희와 같이 도와주세요. 아가씬 너무나 엄청난 괴로움을 당하고 계세요. 주인님이 오늘 밤에라도 식을 올리겠다고 말씀하셔서 절망하고 있어요. 곧 주인님께서 오실 거예요.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그 불행한 계획을 힘으로든 아니면 계략을 써서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깨뜨려 버려야 해요. 다같이 힘을 합쳐야 해요.
제 3장
오르공, 엘미르, 마리안느, 끌레앙뜨, 도린느.
[오르공] 여~ 모두들 함께있어서 마침 잘 됐군. (마리안느에게) 이 계약서를 보면 넌 틀림없이 좋아할 거다. 그 뜻은 벌써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마리안느] (무릎을 꿇고) 아버님, 저의 괴로움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버님 마음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모든 걸 걸고 부탁드리오니 어버이의 권리를 그렇게 휘두르지 말아 주십시오. 아버님 뜻에는 언제나 순종하겠으나 이번만은 용서해 주십시오.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면 아버님의 자식으로 태어난 걸 저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버님께 받은 이 목숨을 불행하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가진 아름다운 꿈이 깨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수 없을지라도, 제발 소원입니다. 이렇게 무릎 꿇고 부탁드립니다. 가장 싫어하는 그 사람에게 가라고 말하지느 말아 주십시오. 아버님의 권위로서 저를 절망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오르공] (순간적으로 측은하게 여겨지는 듯) 자,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정에 끌려서는 안 돼.
[마리안느] 아버님이 그 분에게 아무리 친절하셔도 괜찮아요. 얼마든지 친절하게 하셔도 되고, 아버님 재산을 모두 드려도 좋습니다. 그게 부족하시면 제 몫의 재산까지도 주십시오. 기꺼이 동의하겠사오니 좋으실 대로 하세요. 하지만 제 몸만은 그에게 주지 마십시오. 차라리 수도원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 엄격한 규을을 지키면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슬픈 나날을 보내겠습니다.
[오르공] 음! 아버지가 사랑의 불길을 가로막으면 대부분 그렇게들 말하지. 수녀가 되겠다는 둥……. 일어나라! 네가 싫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수업을 쌓을 기회가 되는 거야. 이결혼으로 속세의 욕망을 버리도록 해라. 그리고 더 이상 내 골치를 썩이지 않도록 해.
[도린느] 뭐라구요? 대체…….
[오르공] 넌 잠자코 있어. 왠 참견이냐? 한 마디도 뻥끗해서는 안 된다. 알았지?
[끌레앙뜨] 충고라 해서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하면……..
[오르공] 처남! 처남의 충고는 대단하죠. 앞뒤가 꼭 들어맞으며, 나 역시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 충고를 따르지 않는다고 섭섭하게 생각진 마십시오.
[엘미르] (남편에게) 이런 걸 다 보고 나니 할말이 없군요. 당신이 맹목적인 데는 정말 감탄해 마지 않아요. 오늘 있었던 일 같은 것을 부정하시다니, 그 사람한테 푹 빠지셔서 눈이 어두워지신 거예요.
[오르공] 옳은 말이오. 나느 외관을 믿어요. 당신이 내 멍텅구리 아들을 귀여해 주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그놈은 그 가엾은 분에게 수작을 꾸미려 했고 당신은 그 음모를 고백할까봐 두려웠던 거지. 그걸 믿게 하기 위해서는 당신은 너무 태연했어. 더 침착성을 잃고 있었다면 또 몰라.
[엘미르] 단순히 한 사내에게 사랑의 고백을 들은 것으로 여인의 명예에 금이 간 것처럼 떠들어대야 하나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욕설을 퍼부으며 대응해야 되나요? 저는 그런 이야기 따위는 가볍게 웃음으로 받아 넘깁니다. 그런 일로 소란을 떠는 건 싫어요. 부드럽게 정숙한 여인임을 표시하면 되는 거죠. 손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정절을 지키려는, 한마디만 하면 금방이라도 덤벼드는 그 억센 열녀들과는 다르니까요. 그런 정숙은 질색이에요! 저는 그런 거친 도덕을 원치 않아요. 조용히 차갑게 거절한다고 해서 사내의 유혹을 거절하는 힘이 약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오르공] 하여간 그 이야기라면 알고 있소. 어쨌든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
[엘미르] 정말 답답하신 데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하지만 다미스가 한 말이 정말이라는 걸 보여 드리면 의심 많은 당신은 뭐라고 하시겠어요?
[오르공] 보여 준다고?
[엘미르] 네.
[오르공] 말 같지 않은 소리!
[엘미르] 아니요! 분명히 백일하에 드러내 보여 드린다면요?
[오르공] 터무니없는 소리!
[엘미르] 기막힌 양반! 하여간 대답이나 하세요. 내 말을 믿어 달라고 하진 않겠어요. 다만, 가령 어디나 당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모든 걸 분명하게 당신한테 보여 드리고 들려 드린다면 당신은 그 당신의 성인에 대해서 뭐라고 하시겠냐는 거예요?
[오르공] 그런 경우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니까.
[엘미르] 믿음이 대단하시군요. 내 말까지도 중상모략으로 생각하시다니, 너무하십니다. 당장에 보여 드리도록 하죠. 모두가 말하는 그의 본 모습을 실제로 목격시켜 드리겠어요.
[오르공] 좋아. 당신 말을 믿어 보기로 하지. 당신이 어떻게 약속을 지키는가 어디 당신 솜씨를 보기로 하겠어.
[엘미르] (도린느에게) 그 분을 이리 오시도록 해라.
[도린느] (엘미르에게) 아주 간사한 자라서 꼬리를 잡기가 그리 쉽지 않을지도 몰라요.
[엘메르] (도린느에게) 아니야 사랑하는 여자한테는 쉽사리 속는 법. 그리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니까 스스로 속아 넘어가게 돼 있어. 어서 가서 아래층으로 내려오시라고 해라. (그리고는 끌레앙뜨와 마리안느에게) 저리들 나가세요.
제 4장
엘미르, 오르공
[엘미르] 이 테이블을 이리로 가져다 놓고 당신은 그 밑에 들어가 계세요.
[오르공] 뭐라구?
[엘미르] 잘 숨으셔야 해요.
[오르공] 왜, 이 테이블 밑에?
[엘미르] 아! 저에게 맡기세요. 계획이 있으니까요. 두고 보세요. 이 밑으로 들어가세요. 들어가신 후에는 눈에 띄지 않게. 그리고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하세요.
[오르공] 지나치게 당신 말을 따르는 것 같지만 당신 계획이 어떻게 되나 보기로 하지.
[엘미르] 불평하실 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테이블 밑에 있는 남편에게) 하여간 지금부터 제가 약간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르니 절대로 노하시면 안 돼요. 제가 뭐라고 말하더라도 용서해 주셔야 합니다. 약속드린 대로 당신에게 확인시키기 위한 거니까요.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습니다. 달콤한 말로 그 위선자의 가면은 벗기고 사랑의 불길에 부채질을 해서 파렴치한 욕망을 드러나게 하고 멋대로 경솔하게 굴도록 하겠어요. 제가 그 자의 사랑의 설득에 넘어가는 척하는 것도 단지 당신을 위해 그 자를 꼼짝 못하게 하려는 거예요. 당신이 항복하시면 곧 연극을 중지하겠습니다. 어디까지 갈지는 당신이 원하시는 바에 달렸어요. 그 정도로 됐다 싶으시면 그 자의 당치않은 연정을 가로막고 아내를 구하는 것이 당신의 역할이에요. 어쨌든 당신의 미망을 깨우치면 되는 거니까, 필요 이상으로 저를 위험에 버려 두진 마세요. 모두가 당신을 위한 것, 당신 뜻대로 하세요. 아, 그가 오는군요. 가만히 숨어 계세요.
제 5장
따르뛰프, 엘미르, 오르공(테이블 밑에 숨어 있다)
[따르뛰프] 제게 말씀하실 게 있으시다고요?
[엘미르] 네. 당신에게 은밀히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하지만 말씀드리기 전에 그 문을 닫다 주세요. 누군가 엿듣지 않는지 잘 살펴 주시고요. (따르뛰프, 문을 닫고 돌아온다) 아까 같은 일이 다시 있으면 곤란하니까요. 그렇게 놀란 적은 처음이에요. 다미스가 나서는 바람에 정말 겁이 났어요. 하지만 보셨던 바와 같이 그 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계획을 포기시키는 데 무척 힘이 들었어요. 저도 무척이나 당황해서 그 애의 말을 부정하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하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게 다 잘 되어 이젠 아무런 걱정도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에 대한 존경이 뇌우를 가라앉혔고 남편은 당신에게 한치의 의심도 갖고 있지 않아요. 나쁜 소문이 쫙 퍼져도 개의치 않아요. 그리고 우리에게 언제나 같이 있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처럼 당신과 단둘이 있어도 비난받을 염려가 없지요. 그리고 이처럼 당신에게 마음을 드러내 보일 수도 있고요. 당신의 정열에 대답하는 것이 너무 빠를지도 모르지만요.
[따르뛰프] 그 말씀, 좀 이해하기가 힘든데요. 부인. 아까는 다른 투로 말씀하셨는데…….
[엘미르] 어마나! 아까 그처럼 거절한 것에 화를 내시다니, 당신은 여자의 마음을 너무나 모르시는군요! 여자가 미지근한 저항밖에 하지 않았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시는군요! 그런 경우, 여자의 수치심은 언제나 남자가 바치는 애정에 거부의 뜻을 표하는 법이에요.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을 알아도 그걸 고백하는 건 언제나 부끄러운 거니까요. 처음엔 우선 거절한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으로 마음은 움직이고 있다. 체면을 지키기 위해 다음에 없는 말을 한다. 이러한 거절은 모든 것을 약속한 것이라는 걸 알려 주는 거예요. 이런 말을 털어놓고 말씀드리다니 여자의 수치심을 소흘히 하는 것 같습니다만, 말을 꺼낸 이상 다 말씀드리죠. 당신의 사랑의 고백이 제 마음에 기쁨을 주지 않았다면 그처럼 다미스를 말리려 했을까요? 당신의 사랑의 말에 그처럼 가슴을 떨며 귀를 기울였을까요? 아까 보신 바와 같은 태도를 취했을까요? 남편이 딸과 당신의 혼담을 꺼냈을 때 당신이 거절하도록 부탁한 것도 당신을 생각하기 때문이었으며, 이 혼담이 이루어지면 겨우 독점할 수 있었던 당신의 마음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그 괴로움을 당신이 알아 달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따르뛰프] 부인!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듣는 건 분명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그 꿀 같은 달콤함은 저의 오관에 깊이 스며들어 처음으로 맛보는 감미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부인의 마음에 들 수 있다면 그 이상의 행복은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부인의 마음을 알고 저는 한없는 기쁨을 감출 길 없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진정 기쁨에 젖기 전에 저는 약간의 의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말씀은 저를 유혹하여 다 된 혼담을 깨뜨리려는 책략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터놓고 말씀드리자면 부인의 애정은 제가 바라는 것이지만, 그 애정의 표현이 어느 정도 말씀을 뒷받침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또한 제 마음을 황홀케 하는 부인의 애정에 대해 저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 줄 때까지는 어떠한 다정한 말씀도 믿지 않으렵니다.
[엘미르] (남편의 주의를 끌기 위해 기침을 한다.) 어마나! 그렇게 서둘러서 애정의 밑바닥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것만도 저로서는 몹시 힘든 일이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끝까지 사랑의 표식을 보여드리지 않으면 만족하실 수 없다니요.
[따르뛰프] 행복할 자격이 없는 인간은 그런 건 별로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은 말만으로 안심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영광에 넘친 운명도 언제 검은 그림자가 덮칠지 모르니까요. 그런 까닭에 믿기 전에 그걸 손에 넣기를 바라는 거죠. 저는 부인의 호의를 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무모한 행동이 가져온 행복을 의심하고, 부인이 실제로 저의 연정을 만족시켜 줄 때까지 전 아무것도 믿지 않겠습니다.
[엘미르] 정말이지. 당신의 사랑은 마치 폭군과도 같군요. 저는 마음이 심란해요! 남의 마음에 힘으로 군림해서 폭력으로 원하는 것을 가지려 하다니요. 정말로 당신에게 쫓기면 전 몸을 지킬 수 없어요. 숨을 돌이킬 겨를도 안 주실 테니까요. 그처럼 강인하게 다가와서 원하는 것을 가차없이 달라신다. 드러나는 약점을 이용해서 거침없이 구하신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요?
[따르뛰프] 그러나 저의 찬사를 애정을 가진 눈으로 봐주신다면 어째서 확실한 증거를 보이려 하지 않으시나요?
[엘미르] 그러나 당신이 언제나 말씀하시는 하늘을 모독하지 않고 어떻게 당신이 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어요
[따르뛰프] 저의 소원을 가로막는 것이 하늘의 뜻만이라면 그러한 장애물을 없애는 것은 내게는 쉬운 일입니다.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엘미르] 그러나 저는 하늘의 심판이 더없이 무서워요!
[따르뛰프] 그렇다면 그 우매한 공포를 덜어 드리죠. 부인! 저는 불안을 없애는 기술을 알고 있습니다. 신이 어떤 종류의 쾌락을 금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과 절충을 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양심의 사슬을 늦추고 나쁜 행위를 의도의 순수함으로써 수정하는 학문이 있거든요. 부인, 그 비밀을 가르쳐 드리죠. 당신은 내 말대로 하면 됩니다. 제 소원을 이루게 해주십시오.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부인께 폐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엘미르, 더욱 크게 기침을 한다.) 기침을 몹시 하십니다. 부인.
[엘미르] 네 몹시 괴로워요.
[따르뛰프] (엘미르에게 나팔처럼 길게 말은 종이봉투를 주며) 이 감초즙을 좀 드시면?
[엘미르] 끈질긴 감기예요. 어떤 즙을 먹어도 나을 것 같지 않아요.
[따르뛰프] 괴로우시겠습니다.
[엘미르] 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요.
[따르뛰프] 요컨대 부인의 불안을 해소시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여기서는 완전히 비밀이 보장되어 있죠. 나쁜 짓이 나쁜 짓으로 되는 것은 사람들이 떠들어대기 때문이고 아무도 모르게 범하는 죄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엘미르] (또다시 기침을 하고 테이블을 두들긴다) 마침내 말씀에 따라 모든 걸 허용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만족하시지 않을 테고 손을 드시지도 않을 테니까요. 분명 이런 일은 잘못된 짓이에요. 여자의 도리를 넘어서는 것도 제 탓이 아닙니다. 그러나 할 수없이 거기까기 가기 않을 수 없게 만들며, 남의 말을 믿지 않고 보다 분명한 증거를 대라고 말씀하시니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마음을 정하고 만족하시도록 해드리죠. 제가 이렇게 승낙하는 게 잘못이라면 그건 억지로 시킨 사람의 잘못이에요. 물론 제 잘못은 아니죠.
[따르뛰프] 물론입니다. 부인!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엘미르] 잠깐, 문을 열고 혹시 낭하에 남편이 있지 않은지 살펴 주세요.
[따르뛰프] 주인에게 그렇게 신경을 쓰실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들끼리니까 말입니다만, 그는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영광으로 생각할 겁니다. 게다가 저는 무얼봐도 믿지 않도록 그를 다스려 놓았으니까요.
[엘미르] 하여간 잠깐 밖에 나가셔서 여기저기 잘 살펴 봐주세요.
제 6장
오르공, 엘미르
[오르공] (테이블 밑에서 나오며) 허, 이럴 수가! 구역질 나는 자식이야! 기가 막혀서 정신이 다 얼떨떨하군.
[엘미르] 어마나! 벌써 나오세요? 안 돼요. 경솔하시군요. 다시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세요. 아직 나오기에는 일러요. 끝까지 기다렸다가 확실한 것을 보셔야죠. 단순한 추측을 그대로 믿으시면 안 돼요.
[오르공] 아니야, 지옥에도 저런 악질은 없을 거야.
[엘미르] 어머나! 너무 경솔하게 믿으시면 안 돼요. 손을 드시기 전에 확신을 가지셔야죠. 너무 서둘러 착각을 하지 않으시도록 말이에요. (남편을 자신의 뒤에 숨긴다.)
제 7장
따르뛰프, 엘미르, 오르공
[따르뛰프] (오르공을 보지 못하고) 부인, 만사 원하시는 대로입니다. 온 집안을 샅샅이 살폈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참으로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따르뛰프, 엘미르를 껴안으려고 두 손을 벌리고 앞으로 다가서자 엘미르가 물러선다. 그 순간 따르뛰프가 오르공을 본다.)
[오르공] (따르뛰프를 막아서며) 덤비지 마! 색정에 너무 끌리면 못써. 너무 흥분하지 말란 말이야. 군자연하고 나를 속이려고? 탐욕에 눈이 어두워 영혼을 팔다니! 딸과의 결혼에다가 아내까지 탐내! 벌써 오래 전부터 그런 짓을 제정신으로 한다고는 믿기 어려웠어. 어조가 달라지리라고 생각했었거든. 이만큼 증거를 보여 주었으면 충분해. 더 이상은 사양하겠어.
[엘미르] (따르뛰프에게) 모두 마음에 없는 일이었어요. 단지 당신한테 그런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르뛰프] (오르공에게) 뭐요! 당신은 설마…….
[오르공] 자, 여러 말 마시오. 그냥 깨끗이 나가 주면 되는 거요.
[따르뛰프] 내 계획은……
[오르공] 그런 넋두리도 이젠 먹혀 들지 않아. 당장 나가시오!
[따르뛰프] 나가야 할 사람은 당신이야. 마치 주인인 듯 말하고 있는 당신이라구. 이 집은 내 집이야. 알고 있을 텐데. 내게 싸움을 걸려고 그런 비겁한 수단을 썼겠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내가 아니라구, 나에게 모욕을 주려는 모양이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지. 그러한 협잡을 꾸민 것에 대해 벌하고 아무 소리 못하게 해줄 테니까. 하늘을 욕되게 했으니 천벌이 내릴 거야. 나를 쫓아내겠다고 말한 자들은 뉘우치게 해주지.
제 8장
엘미르, 오르공
[엘미르] 대체 무슨 소리죠? 무슨 말이에요?
[오르공] 이거 야단났는데, 웃을 경황이 없어.
[엘미르] 뭐예요?
[오르공] 저 자 말을 듣고 보니 내게도 잘못이 있었어. 재산 증여 같은 건 하는 게 아니었는데.
[엘미르] 재산 증여!……
[오르공] 그래. 그건 이미 끝난 이링야. 그러나 그 밖에 또 걱정되는 것이 있어.
[엘미르] 또 뭐요?
[오르공] 곧 알게 될 거요. 그보다도 그 상자가 위층에 있는지 보고 와야겠어.
제 5막
제 1장
오르공, 끌레앙뜨
[끌레앙뜨] 어디를 그렇게 달려가나?
[오르공] 아이고, 모르겠소.
[끌레앙뜨] 모두들 상의해서 이 사건의 대책을 세우는 게 선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오르공] 그 상자 때문에 미칠 지경이오. 무엇보다도 그게 날 괴롭혀.
[끌레앙뜨] 그럼 아주 중요한 비밀이라도?
[오르공] 그 가엾은 친구 알가스가 극비라고 하면서 직접 내게 맡기고간 거요. 달아나기 전에 나를 믿고 맡기고 간 거죠. 그의 생명과 재산이 걸려 있는 중요한 서류라고만 했어요.
[끌레앙뜨] 아니, 어째서 그걸 남에게 맡겼나?
[오르공] 양심상의 이유로 그랬죠. 나는 그 위선자에게 곧바로 상의했었죠. 그런데 그 자가 말하는 게 모두 맞는 것 같아서 상자를 맡아 달라고 주었지요. 그러면 가택 수객이라도 받았을 때, 맡고 있지 않다고 잡아뗄 수가 있고, 진실에 어긋나는 서약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끌레앙뜨] 아무래도 형세가 불리한 것 같군. 재산을 증여하고, 게다가 그런 비밀까지 털어놓았으니, 솔직히 매부의 행동은 경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 그런 약점을 잡혔으니 얼마나 당하게 될지 알게 뭔가. 상대의 입장은 그만큼 유리하다고 할 수 있으니, 그걸 생각 못하다니 정말로 경솔했어. 좀더 온건한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 건데.
[오르공] 이런 참! 그처럼 감동적인 믿음으로 가득 찬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그처럼 이중적인 마음과 그렇듯 사악한 정신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내가 일전 한 푼 없는 걸인과 다름없는 자기를 돌봐줬는데……. 이젠 알았어, 성인군자라면 이제는 질색이야. 이젠 그럼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려. 악마보다도 더 나쁜 인간이 되어서 본때를 보여 줘야겠어.
[끌레앙뜨] 아 이런! 또 그렇게 흥분하면 안 되지. 무슨 일이건 차분하게는 해결 못하는군. 올바른 이치를 따질 줄은 모르고 언제나 극단에서 극단으로 달린다니까. 이보게 매부, 자기 잘못을 깨닫고 거짓 신앙에 속았던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 잘못을 고치기 위해 보다 큰 잘못을 저지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단 한 사람의 천한 불한당과 모든 성인군자를 혼돈할 것은 없다 이 말이지. 안 그런가? 한 사람의 악당이 엄숙한 신앙을 그럴싸하게 내세우고 대담하게 매부를 속였다고 해서 누구나 그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네. 자넨 오늘날에는 진정한 신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나? 그런 멍청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신앙자들에게 맡기고, 미덕과 그 가장을 식별하고, 너무 서둘러서 존경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의 길을 택해야 하네. 협잡에 걸리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조심해야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신앙을 욕해서도 안 되는 거라네. 어느 한쪽 극단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위선의 신자에 걸리는 편이 죄가 가볍다고 하겠지.
제 2장
다미스, 오르공, 끌레앙뜨
[다미스] 어떻게 된 겁니까? 아버님? 정말이에요? 그 악당이 아버님을 협박하고 있다는 게! 아무리 은혜를 입어도 그런 자는 곧 잊어버리게 마련이에요. 뻔뻔스럽기 이를 데 없는 그 교활한 악당은 아버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거군요?
[오르공] 그렇다. 아들아. 그래서 골치가 아프구나.
[다미스] 제게 맡겨 주십시오. 그 자의 양쪽 귀를 잘라 버리겠습니다. 그런 오만불손을 묵과할 수는 없잖습니까? 단 한 방에 아버님을 그자로부터 해방시켜 드리겠습니다. 그 자를 때려 눕혀서 사건을 해결해 버리겠습니다.
[끌레앙뜨] 젊은이로서 그렇게 말하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지나친 흥분은 삼가야 한다. 우리는 왕의 통치하에 있고 폭력을 휘둘러서 덕 볼게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단 말이야.
제 3장
빼르넬르 부인, 마리안느, 엘미르, 도린느, 다미스, 오르공, 끌레앙뜨
[빼르넬르 부인] 어떻게 된 거냐?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무서운 소리들 들었는데.
[오르공] 정말 못 볼 장면을 이 눈으로 봐버린 겁니다. 제 친절이 어떤 앙갚음을 받았는지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저는 찢어지게 가난한 자를 동정해서 제 집에 받아들였습니다. 집에 머물게 하고 형제처럼 대해 주었지요. 매일같이 여러 면으로 돌봐주고 저의 모든 재산도 그에게 주었지요. 그런데 그 배반자, 불한당은 그 사이 아내를 유혹하려고 흉측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겁니다. 더욱이 그 비열한 계획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제가 베푼 것으로 저를 협박하고 저의 경솔한 호희를 역이용해서 저를 파멸시키려 들고 있습니다. 이 집도 벌써 양도받았다고 저를 내쫓고 제가 그를 받아들였을 때와 같은 비참한 입장에 저를 떨어뜨리려는 겁니다.
[도린느] 잘됐군요!
[빼르넬르 부인] 아들아, 그 분이 그처럼 흉측한 짓을 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구나.
[오르공] 뭐라구요?
[빼르넬르 부인] 덕망 높은 분은 언제나 시기를 받는 법
[오르공] 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 어머님?
[빼르넬르 부인] 이 집에는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모두가 그 분을 증오하고 있는 건 뻔한 사실 아니냐?
[오르공] 그 증오하고 어머님 말씀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빼르넬르 부인] 네가 어렸을 때 몇 번이고 말해 주지 않았니. 덕이 높은 분은 언제나 세상에서 박해를 받으며, 시기하는 자는 죽어도 시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오르공] 그러나 그 말씀과 오늘의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냐구요?
[빼르넬르 부인] 그 분에 관해서 모두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지어냈을 거라는 거지.
[오르공] 제가 직접 봤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빼르넬르 부인] 남의 욕을 하는 자들이 얼마나 교활한지 알아야지.
[오르공] 정말 기가 차군요. 어머님, 이 눈으로 그 배짱 좋은 죄악을 모두 봤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빼르넬르 부인] 말이란 언제나 독버섯처럼 퍼지게 마련이야.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르공]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제 눈으로 봤다고 말씀드렸어요. 바로 이 눈으로요. 제가 봤다면 본 거예요. 몇 번 말씀드려야 아시겠어요. 목이 찢어지도록 외쳐야 합니까?
[빼르넬르 부인] 이런 참! 흔히 겉치레는 속과 다른 거야. 본 것만 가지고 판단하는 건 잘못인지 모른다.
[오르공] 어휴 답답해!
[빼르넬르 부인] 인간의 본성은 의심이 많은 거다. 좋은 일이 나쁜 일로 해석되는 예도 많아.
[오르공] 아내를 포옹하려고 했는데, 그걸 자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구요?
[빼르넬르 부인] 사람을 비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지. 넌 확실한 걸 볼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오르공] 뭐요! 더 확실한 걸 봐요? 그럼 제가 좀더 기다리고 있었어야 했나요? 그 자가 내 눈앞에서……. 그런 멍청한 소릭 어디 있습니까!
[빼르넬르 부인] 하여간 그 분의 영혼은 맑은 신앙으로 가득 차 있다. 모두들 말하는 그런 짓을 했다고는 나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
[오르공] 정말 상대가 어머니가 아니라면 화가 치밀어서 무슨 소리를 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도린느] (오르공에게) 인과응보는 돌고 도는 법, 주인님께서 다른 사람의 말을 믿지 않으셨으니까 지금에 와서는 주인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지요.
[끌레앙뜨]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 사기꾼이 고소를 할지 모르는데 우물쭈물하고 있을 겨를이 없어요.
[다미스] 네! 그렇게까지 뻔뻔스러울 수 있을까요?
[엘미르] 제 생각으로는 그런 고소가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가되지 않아요. 그 자의 배은망덕한 행위가 너무나도 훤히 드러나 보이는데요.
[끌레앙뜨] (오르공에게)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없네. 교묘히 꾸며서 올가미를 씌울지도 모르니까. 그런 음모에 걸려 들면 쉽게 벗어날 수없어.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약점을 잡혔으면 그렇게까지 일을 밀고 가지 않았어야 했어.
[오르공] 그건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합니까? 그 배반자의 교만한 꼴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는걸요.
[끌레앙뜨] 정말이지 매부와 그 자 두 사람이 겉으로만으라도 좋으니 화해를 했으면 좋으련만!
[엘미르] 그 자가 그런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걸 알았다면 이런 소동을 일으키지 않았을 텐데요. 그리고…….
[오르공] (르와이얄 씨가 들어오는 걸 보고 도린느에게) 저 사람이 뭣 하러 왔지? 어서 가서 알아보아라. 이렇게 되면 누가 찾아 올지 알 게 뭐야!
[오르공] (작은 목소리로 끌레앙뜨에게) 이렇게 부드럽게 나오는 걸 보니 내 생각이 틀림없어요. 화해의 전조 같은 거랄까.
[르와이얄] 댁의 모든 집안과는 언제나 친근했습니다. 게다가 부친께서는 절 많이 돌봐주셨었죠.
[오르공] 이거 참 부끄럽기 이를 때 없습니다만, 댁이 누구신지 성함도 모릅니다.
[르와이얄] 저는 르와이얄이라고 하며 노르망디 태생으로 어쩌다 보니 권장(勸杖)을 들게 된 집달리올시다. 하나님의 덕택으로 사십 년 이래 다행히도 큰 사고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찾자 뵌 것은 다름이 아니라 모종의 명령 통지서를 전해 드리기 위해서…….
[오르공] 뭐요! 당신은 여기에…….
[르와이얄] 선생, 흥분하지 마십시오. 단지 최고(催告)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명하는 대로 지체 없이 가구를 밖으로 내가고, 이 집을 타인에게 비워 주라는 명령으로서…….
[오르공] 내가 여기서 나가?
[르와이얄] 네 그렇습니다. 그래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집은 아시다시피 현재로서는 분명 그 선량한 따르뛰프 씨의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계약서에 의해 차후 그 분은 당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는 격식에 맞는 것으로서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을 겁니다.
[다미스] (르와이얄에게) 뻔뻔스럽군요. 놀라워요.
[르와이얄] (다미스에게) 당신에게 용건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르공을 가리키며) 용건은 이 분에게 있습니다. 이 분은 이치를 알고 상냥한 분이니까 선량한 시민의 의무가 뭔지를 잘 알 겁니다. 설마 공무 집행을 방해하거나 그러시진 않으시겠죠.
[오르공] 하지만…….
[르와이얄] (오르공에게) 네, 저는 압니다. 비록 백만의 재산이 문제라 해도 관청의 명령을 거부하지는 않으실 거라는 걸요. 훌륭한 신자로서 제가 여기서 명령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걸 용서해 주실 거라고 말입니다.
[다미스] 권장을 가진 집달리 선생! 그 검은 웃옷을 곤봉으로 한 대 갈겨 줄까.
[르와이얄] (오르공에게) 아드님 입을 닥치게 하든지, 나가도록 해주실까요? 조서를 꾸며서 당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 섭섭해 할 테니까요.
[도린느] (방백) 이 르와이얄이라는 사람, 이름과는 달리 속이 검은 사람인가봐!
[르와이얄] 저는 모든 선량한 분들에게 진정한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서류의 건을 맡은 것도 오로지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에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다른 집달리에게 걸리기라도 하시면 불리하실 거라 생각해서, 저만큼 호의를 갖지 않은 자를 만나면 얼마나 거칠게 나왔을지 모르니까요.
[오르공] 이 이상 더 난폭할 수가 있을까? 주인더러 자기 집에서 나가라고 하다니!
[르와이얄] 시간의 유예를 드리죠. 내일까지 잠정적으로 명령의 집행을 중지시키겠습니다. 다만 오늘 밤은 부하 열명을 데리고 이곳에 머무르러 오겠습니다. 사람들 시선을 끈다든가 소문이 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형식상 주무시기 전에 문의 열쇠를 주셨으면 합니다. 안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또한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그러나 내일 날이 새면 가구 일체를 정리해서 여기를 나가실 준비를 하셔야만 합니다. 제 부하에게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물건을 밖으로 내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힘 센 자들을 골라 놨거든요. 어떻습니까, 이 이상 잘하기는 힘들죠? 제가 이처럼 관대한 조치를 취하고 있느니만큼 댁에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의 직무 집행을 절대로 방해하지 않기를 말입니다.
[오르공] (방백) 이 자의 낯짝에 주먹을 한방 된통 먹일 수 있다면 가지고 있는 가장 근사한 백 루이 금화라도 당장 주겠어.
[끌레앙뜨] (작은 목소리로 오르공에게) 그만두게, 일을 그르치지 말고.
[다미스] 이 뻔뻔스러움이라니, 참을 수가 없군. 나가는 게 낫겠어.
[도린느] 르와이얄! 당신의 등은 이렇게 강인해 보이시는데, 곤봉을 한 두서너 대쯤 맞아도 괜찮으시겠어요?
[르와이얄] 그런 폭언은 충분히 벌을 받을 만한데, 여인에 대해서도 법의 제재가 있는 법이니까.
[끌레앙뜨] (르와이얄에게) 이쯤 하면 됐습니다. 충분해요. 빨리 그 서류를 주고 돌아가 주시오.
[르와이얄] 그럼 안녕히. 하늘이 당신들에게 기쁨을 내리시기를!
[오르공] 너와 너를 보낸 자에게 신의 벌이 내리기를.
제 5장
오르공, 끌레앙뜨, 마리안느, 엘미르, 빼르넬르 부인, 도린느, 다미스
[오르공] 어떻습니까, 어머님, 그럴 만하죠? 그 통지서를 보셨으니 그 밖의 일은 추측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 자의 배반을 어머님도 아셨나요?
[빼르넬로 부인] 너무나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오는구나. 마치 구름 위에서 떨어진 것 같아.
[도린느] 불평하실 것 없습니다. 그 사람을 나무라는 것도 잘못이구요. 그의 믿음 깊은 생각이 이걸로 분명해진 거니까요. 미덕이 이웃에의 사랑으로 열매를 맺은 거죠. 그 사람은 재산이 왕왕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순수한 자비심으로 주인 어른의 구원에 방해가 되는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가져가겠다는 거니까요.
[오르공] 닥쳐!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어.
[끌레앙뜨] (오르공에게) 어서 대책을 강구해 보세.
[엘미르] 그 파렴치한 자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는 게 어때요? 그렇게 되면 계약서의 효력도 없어질 거예요. 사람을 배반하고 그런 나쁜 짓을 하는 자라는 게 알려지면 세상 사람들도 그 자의 음모가 성공하는 걸 묵과하진 않을 것 아니겠어요.
제 6장
발레르, 오르공, 끌레앙뜨, 엘미르, 마리안느, 빼르넬로 부인, 다미스
[발레르] 대단히 안됐습니다만 나쁜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사태가 급박해서 알려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저와 퍽 친한 친구가 국무상의 비밀을 어디서 교묘히 얻어서 알려왔습니다. 저와 선생님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저를 위해 그런 거죠. 그의 말로는 선생님은 곧장 달아나실 결심을 하시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오랫동안 선생님을 속이고 재미를 보아 오던 사기꾼이 한 시간 가량 전에 국왕에게 고소를 해왔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욕하고 어떤 국사범의 중요한 상자를 국왕에게 내놓았답니다. 그 자의 말에 의하면 선생님은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범인의 비밀을 은닉했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그런 대단한 죄를 범하셨는지 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 어떤 명령이 내려지고, 그 명령을 집행하는 데는 바로 그 자가 적임이어서 선생님을 체포할 사람을 대동하고 이곳으로 온다는 겁니다.
[끌레앙뜨] 그 배반자! 자기의 권리로 무장하여, 눈독들여 놓은 매부의 재산을 가로챌 심산이로군.
[오르공] 인간이란 정말 몹쓸 동물이야!
[발레르] 한시라도 늦어지면 파멸입니다. 선생님을 모셔 갈 마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돈도 천 루이 준비해 왔습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달아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을 안전한 장소에 모셔 가는 안내역은 제가 맡겠습니다. 어디까지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오르공] 아! 자네의 친절한 말에 뭐라고 감사를 해야 할지. 언젠가 은혜를 갚을 수 있을 때가 오겠지. 이 고마운 마음씨에 보답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길 하늘에 기도하겠네. 안녕히, 모두들 잘 있어요…….
[따르뛰프] (오르공을 붙들며) 좋습니다. 좋아, 그렇게 서둘러 달려갈 것 없습니다. 숙소를 찾는 데 뭐 그렇게 멀리까지 가실 필요가 없으니까요. 국왕의 명령으로 당신을 감옥으로 인도하죠.
[오르공] 배반자! 넌 그걸 마지막 무기로 감추고 있었구나. 이 악당! 그 손으로 나를 잡으려는 거야. 네 음모를 마무리 지으려는 거지.
[따르뛰프] 아무리 욕설을 퍼부어도 나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하늘을 위해 모든 걸 참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끌레앙뜨] 정말 대단하시군. 이게 선처라는 건가?
[다미스] 파렴치한 놈! 하늘을 농락하고도 괜찮을 것 같으냐?
[따르뛰프] 아무리 흥분하셔도 나는 까딱없습니다.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마리안느] 이런 짓을 하고 그것을 명예로 생각하는 거죠? 당신에게는 딱 어울리는 역할이에요.
[따르뛰프] 나는 관의 명령을 받고 여기에 온 겁니다. 어떤 역할도 영광으로 생각되지 않을 수 없죠.
[오르공] 이 배은망덕한 인간! 내 자비로운 손이 너를 빈곤의 밑바닥에서 구해 준 것을 잊었느냐?
[따르뛰프] 네, 여러 가지로 도와주신 걸 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국왕을 위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임무입니다. 이 신성한 의무는 엄정하고 가혹한 것으로 마음속에 있는 감사의 마음을 억눌러 버리죠. 이처럼 강한 사슬에 묶이면 나는 친구도, 아내도, 친척도,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기꺼이 희생할 것입니다.
[엘미르] 사기꾼!
[도린느] 사람을 숭배하는 걸 방패로 그 뒤에 살짝 몸을 숨기다니, 정말 파렴치하군요.
[끌레앙뜨] 그러나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정열,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그 정열이 그처럼 훌륭한 거라면 왜 더 빨리 그걸 보여 주지 않았지? 매부의 아내에게 치근덕거리고 그 현장을 잡힐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지 않아? 매부는 체면상 당신을 쫓아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때가 되어서 매부를 고발할 생각을 한 것은 무엇 대문이지? 매부는 당신에게 전 재산을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고소하고 나설 입장이 아니지만, 그 이야기는 그만두지. 그러나 이제 와서 매부를 죄인 취급할 거라면 왜 그로부터 재산을 받는 걸 동의했지?
[따르뛰프] (경리에게) 이 자들을 닥치게 해주시오. 우는 소리를 듣는 건 진력이 납니다. 자, 명령을 집행해 주십시오.
[경리] 네, 명령의 집행에 너무 오래 지체했습니다. 마침 때 맞춰 재촉을 하셨으니, 그럼 어디 해볼까. 당신은 곧장 나를 따라 감옥으로 갑시다. 거기가 당신 주거지가 될 거요.
[따르뛰프] 누가요, 내가요?
[경리] 그래, 당신.
[따르뛰프] 내가 왜?
[경리] 당신에게 그걸 설명해 줄 생각은 없지만, (오르공에게) 놀라셨겠지만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사기와 기만을 원수로 생각하시는 국왕의 통치하에 살고 있습니다. 폐하의 눈은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며 어떠한 사기꾼의 술책에도 속아넘어가지 않습니다. 어떤 일도 폐하의 마음을 당황케 않고 그 확고한 이성은 결코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유덕한 사람에게는 불멸의 영광을 내리시지만 폐하의 정열은 명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옳은 자를 사랑하시는 반면 빗나간 자들을 미워하십니다. 이 자도 폐하의 마음의 빈틈에 파고들지는 못했습니다. 폐하는 더욱 교묘한 함정을 마련해서 이 자로부터 몸을 지키신 겁니다. 폐하의 명석한 통찰력으로 이 자의 온몸에 깃들인 비열함을 진작에 꿰뚫어 보신 겁니다. 이 자는 당신을 고발하고 나섬으로써 스스로의 정체를 폭로하고 만 겁니다. 공평무사한 하늘의 심판, 이 자는 벌써 다른 이름으로 수배중인 이름난 사기꾼임이 폐하 앞에서 드러났습니다. 이 자의 수없는 범행을 일일이 기술하자면 아마 몇 권의 책이 될 것입니다. 요컨대 국왕께서는 당신에 대한 이자의 배은망덕한 배반을 미워하시고 되풀이되는 죄과의 끝맺음으로 이 죄를 추가하시기로 한 겁니다. 저는 폐하의 명령에 따라 이제까지 이 따르뛰프의 뜻대로 움직여 왔습니다만, 이전 한결같이 이 자로 하여금 파렴치의 극을 다하도록 하여 마지막에 당신에게 모든 걸 보상토록 하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 자는 당신의 서류 전부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만, 폐하께서는 그걸 이 배반자에게서 되찾아 당신에게 돌려주자는 뜻이었습니다. 당신이 전 재산을 이 자에게 증여한다는 계약서는 국왕의 권한으로 폐기하고, 또한 망명중인 친구와 밀통한 죄도 용서하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건 지난 내란 때 당신이 성심성의껏 폐하에게 봉사한 데 대한 보상입니다. 폐하께서는 기대하지 않았을 때 받은 선행을 치하하시며 공적은 결코 잊으시지 않습니다. 폐하께서는 악보다는 선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걸 널리 알리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하신 겁니다.
[도린느] 하늘에 영광이 있기를!
[빼르넬르 부인] 이제 살았다.
[엘미르] 아주 잘됐어요!
[마리안느]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요?
[오르공] (경리가 끌고 가는 따르뛰프에게) 어때, 배반자……
[끌레앙뜨] 아! 매부, 그만두시오. 이제 와서 점잖지 못하게. 불쌍한 자는 운명의 심판에 맡기고 마음대로 뉘우치게 내버려 두게. 그보다도 이 자가 오늘은 계기로 올바른 마음을 갖고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생활을 고쳐서 국왕의 심판에 너그러움이 있으시도록 기도나 해주게. 그리고 매부는 폐하의 각별한 후의를 받았으니 가서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려야 할 걸세.
[오르공] 네, 옳은 말씀입니다. 기꺼이 발밑에 엎드려 어지신 마음을 칭송하러 가야지요. 이 첫 번째 의무를 다하면 또 한 사람의 마음씨에 보답해야지. 연인으로서 너그럽고 성실함을 보여 준 발레르에게는 그의 소원대로 마리안느와 결혼하도록 해야겠어요.
국가사회주의 [國家社會主義, National Sozialismus] (영)National Socialism/Nazism/Naziism. Nazismus
: 독일의 나치당 당수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전체주의 운동.
열광적인 민족주의, 대중선동, 독재적 지배 등 이탈리아 파시즘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그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훨씬 더 극단적이었다. 독일에서 생겨나 히틀러의 독특한 성격을 통하여 구체화되었다.
국가사회주의는 독일 특유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뿌리의 일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대제, 오토 폰 비스마르크밑에서 발전된 프로이센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전통은 프로이센 군대의 호전성과 규율을 공사(公私)의 본보기로 삼았는데, 여기에 정치적 낭만주의의 전통이 가미되면서 합리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원칙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본능과 과거를 강조하며 특출한 개인이 모든 보편적 원칙과 규범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선언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 두 전통은 선악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난 19세기의 과학정신에 의해 보강되었으며, 콩트 드 고비노, 리하르트 바그너,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과 같은 19세기 지성인들에 의해 더욱 굳건해졌다. 이들은 북방민족(게르만족)이 다른 모든 민족에 비해 인종적·문화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으로 초기 국가사회주의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독일 전통의 흐름에 덧붙여 지적되어야 할 것은 히틀러 자신의 지적 관점이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정치적 운동, 특히 범게르만 팽창주의와 반유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히틀러의 열광적인 민족주의, 슬라브족에 대한 경멸, 유대인에 대한 혐오 등은 여러 인종이 한데 뒤섞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의 거리에서 실패한 예술가로 힘들게 살아가던 젊은 시절의 경험에서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그로 인해 특히 하류층에서 일어난 환멸과 빈곤, 좌절이 없었던들 그의 지적 준비만으로 결코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가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한 베르사유 조약(1919)은 독일의 참여없이 작성된 것으로서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의 포기를 강요하여 독일인들의 반발을 샀으며, 히틀러는 이들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당시 항간에는 1918년 11월 11일의 휴전은 전투중지에 관한 동의일 뿐 무조건 항복의 수락이 아니며 독일의 패전은 베르사유에서 외교관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히틀러의 재무장요구와 배신행위에 대한 복수의 선동은 처음부터 군부의 호응을 얻었고, 독일 군부는 평화를 단지 영토확장계획의 일시적인 후퇴로 간주했다. 1923년의 치명적이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은 많은 중산층의 저축을 폐지더미로 만들었고 대중의 소외감과 불만을 가중시켰다. 히틀러는 범게르만적 열망에다 게르만 민족의 사명에 대한 거의 신비적인 광신과 열렬한 사회혁명의 복음을 덧붙였다. 이 복음은 히틀러의 개인적 성서와도 같은 〈〈나의투쟁〉Mein Kampt〉(1925~27)에 전모가 드러나 있으며, 그는 이 책에서 인종과 선동에 관한 이론 및 실천을 개관하고 있다.
히틀러는 러시아의 볼셰비즘에 대한 보편적인 공포심을 이용해 처음에는 독일에서 그리고 나아가 세계적인 규모로 볼셰비즘에 대항할 동맹세력을 형성했으며, 이를 통해 국가사회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많은 보수세력의 지지를 확보했다. 히틀러가 국가사회주의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심리와 대중선동에 대한 깊은 이해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선동은 대상으로 삼는 대중들 가운데 가장 지적 수준이 낮은 집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성공이라는 기준에 비출 때 내용의 진실성이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질적인 적대자들을 하나의 범주로 통합시키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의 천재성 가운데 하나이다. 그 이유는 연약하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은 적(敵)이 여럿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쉽게 자기들의 정당성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유대인에게서 이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그는 유대인을 볼셰비즘과 동일시하여 일종의 우주의 악(惡)으로 규정했다. 유대인들은 그 종교 때문이 아니라 인종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차별되어야 한다. 국가사회주의는 유대인이 교육적 수준과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근본적으로 게르만족과 다르며, 영원히 게르만족에 해롭다고 선언했다.
국가사회주의는 보수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급진주의 사이에서 조화를 모색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로 나쁜 의미에서이지만 철저한 혁명운동이 되었다. 합리주의·자유주의·민주주의·법치주의·기본적 인권 및 국제협력과 평화에 관한 모든 노력을 거부했으며, 그대신 본능과 국가에 대한 개인의 종속, 위로부터 임명된 지도자들에 대한 맹목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복종 들을 강조했다. 또한 개인이나 종족은 원래가 불평등하며, 따라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사회주의는 엄격하고 잔인한 정책들을 추진하여 경쟁상대가 되는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조직들을 억압하거나 제거하려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부적격자와 낙오자들을 운동에 끌어들임으로써 부분적으로 계급적 차이를 없애기도 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뮌헨의 한 지하 맥주홀에서 보잘것없이 출발한 나치당을 20년 뒤에는 세계정치를 좌우하는 주도적 정당으로 부상시켰다. 나치당은 1919년에 설립되어 1920년 이후 줄곧 히틀러가 주도했으며, 1933년 집권당이 된 이래 1945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할 때까지 전체주의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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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주의의 역사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1934~39년은 나치당이 독일 전역을 완전히 통제하고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 운동이 대다수의 독일인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시기이다. 독일국민은 당파 싸움과 경제적·정치적 불안정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의 무질서한 자유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결단력을 가진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환영했다. 1934년 이후 대규모 공공사업과 갑자기 늘어난 군수공장으로 실업자들이 흡수되면서 끝없이 치솟아가던 실업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독일인들은 위대한 독일을 지향한 이 질서정연하고 목적의식이 뚜렷한 대중운동에 휩쓸려들어갔다. 대공황으로부터의 경제회복과 독일 민족주의에 대한 강렬한 믿음은 국가사회주의가 커다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였다. 히틀러는 1934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초반까지 외교적인 승리를 거듭하고 주변지역을 점령해감으로써 반대세력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독일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했다.
국가사회주의의 이면에는 대중조작과 강압정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치 정부는 모든 문화·정보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선동을 계속했으며 군중집회와 휘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제복을 입은 요원들로 그 절대권력을 내보이려 했다. 선전기구 밑에는 비밀경찰과 집단수용소를 핵심으로 하는 테러 조직이 있었다. 이들은 독일국민의 반유대 감정을 부채질하여 유대인을 공포와 혐오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기만적인 선전으로 모든 사회계급의 적으로 내몰았다
주요 통제기구는 하인리히 히믈러와 그의 선임부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휘하에 통합된 비밀경찰, 보안대 그리고 친위대(SS) 조직 들이었다. 반정부 세력은 철저한 폭력에 의해서, 또는 많은 경우 탄압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부터 거세되어갔다.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의 적으로 몰렸고 종종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밀고자가 되기도 하는 잘 짜여진 감시망 때문에 시민들은 표현과 행동을 매우 조심해야만 했다. 정의는 더이상 목적이 되지 못하고 이른바 국민의 요구와 이익이라고 하는 것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정상적인 사법절차는 무시되고 특별수용소가 세워졌으며, SS는 법을 뛰어넘는 권한을 휘두르며 잔학행위를 저질렀다.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공산 러시아를 능가하는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무단독재였다.
1938~45년은 국가사회주의가 대외적으로 세력을 확장했던 시기였다. 영토확장은 1938년까지 독일어권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이듬해부터는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는 민족들도 나치 경찰국가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계획에 따른 논리적인 결과였다. 히틀러는 집권 초기에 장래의 세계지배를 위한 군사력 및 공업력 강화에 주력했고, 외교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듭하면서 신속하게 목표를 성취해갔다. 첫번째 목표는 민족자결주의를 바탕으로 모든 게르만의 후손을 조국으로 결집시키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폴란드와 슬라브 국가들을 정복하여 생존권(Lebensraum) 혹은 대경제권(Grosswirtschaftsraum)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게르만족은 경제자립을 이루며 군사적인 요충지로서의 충분한 터전을 확보한다는 목표였다. 독일인은 위계질서의 정점에 있는 지배민족으로서 예속민족을 조직, 그 자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수행한 1939~41년의 군사작전이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자 히틀러의 계획은 유럽·서아시아·아프리카를 포함하게 되었고 마침내 전세계적인 지배체제를 꿈꾸게 되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희망은 거의 6년간의 전쟁 끝에 1945년 독일의 패전으로 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떤 의미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되풀이한 것이었다. 즉 전쟁 초기에 독일은 대단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결과 대규모의 대(對)독일연합전선이 만들어졌고, 독일은 무절제한 행위와 욕심 때문에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대중운동으로서의 국가사회주의는 1945년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의 포로가 되기 전에 자살함으로써 사실상 파국을 맞이했고 제3제국의 폐허 위에 분단독일이 생겨났다. 히틀러가 죽은 뒤에도 국가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일부 독일인들이 몇 차례 조직의 재건을 시도한 바 있지만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이미 호의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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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Fascism]
유럽 최초의 파시스트 지도자 무솔리니
이 운동은 1922~43년 이탈리아, 1933~45년 독일, 1939~75년 스페인 정계를 지배했으며, 그밖에도 여러 시대에 다른 몇몇 나라들을 지배했다. 일반적으로 모든 국가주의적 전체주의 운동이나 그런 정부를 가리킬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이탈리아어 '파시스모'(fascismo)는 라틴어 '파스케스'(fasce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 말은 고대 로마에서 권위의 상징이었던 도끼를 포함하여 느릅나무나 자작나무 가지의 묶음을 의미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1919년에 이탈리아 파시즘 운동의 표상으로 이 상징을 채택했다.
파시즘은 모든 형태에 있어서 주요한 특징들을 보여 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국가의 절대 우위이고, 다른 특징들은 모두 여기에서 유래한다. 개인의 뜻을 굽혀 국가가 명시한 대로 국민의 통합된 뜻에 따르고 국가를 상징하는 보통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 파시즘의 특징이다. 또한 군사적 가치관과 전투 및 정복을 찬양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합리주의 및 부르주아적 가치관은 낮게 평가한다. 무솔리니가 로마 제국의 '부활'을 예언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가나 민족을 신성한 것으로 받들고 그 운명을 선언하는 파시즘의 표현에는 대개 신비주의의 요소가 짙게 배어 있다.
이탈리아 파시즘은 무능한 정부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지도자,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탈리아를 괴롭힌 혼란한 경제상황에 대한 많은 국민의 환멸 속에서 자라났다. 이런 상황은 권위주의, 특히 군사적 덕목을 찬미하는 정치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시인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는 이 시기에 모험과 갈등 및 전쟁을 높이 찬양한 수많은 지식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19년에 단눈치오는 피우메 시(지금의 크로아티아 리예카)를 점령하고 16개월간 그곳을 통치했다. 같은 해 무솔리니는 밀라노에서 파시즘 조직을 만들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파시 데 콤바티멘토'라고 불렀다. 이 정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맨 처음 일어난 획기적인 사건은 1922년 10월 28일의 로마 행진이었다. 무솔리니와 검은 셔츠를 입은 추종자들은 무솔리니를 총리로 임명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무력으로 정부를 무너뜨리겠다고 협박하면서 로마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국왕은 이에 굴복했고, 이튿날 무솔리니에게 정부 구성을 요청했다. 곧 무장한 파시스트 집단은 좌익정당들의 본부를 습격하여 당원들을 폭행하기 시작했고,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무솔리니는 이듬해 1월에 파시스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불법화하고, 그때부터 이탈리아를 전체주의 국가로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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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일어난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나치) 운동은 이탈리아보다 훨씬 가혹한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 속에서 싹텄고, 보다 강력한 반자유주의적 국가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히틀러의 계획은 많은 점에서 무솔리니와 달랐고, 특히 국가적·인종적 힘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훨씬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특정한 정치적 견해에 대한 표현은 기본적으로 비슷했다. 스페인에서는 급진적 공화당 정권에 대항하는 내란이 끝난 뒤 팔랑헤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이 파시스트 세력이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가능했고, 그에 따라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맛보았던 의회 의석 확보의 실패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국민의 뜻과 주체성의 화신인 천황의 존재와 강한 군국주의 전통이 1930년대 파시즘 운동이 발전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제공해주었다. 1930년대 일본의 많은 지식인들은 서구화의 영향을 거부하고 예로부터 내려오는 고유한 종교와 윤리 및 무사적 전통의 가치관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특별한 가치관의 전형으로서 뿐만 아니라 미개한 민족을 정복하여 그 가치관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비준자로서의 임무가 세계 내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