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분류 전체보기 (18)
헛소리 (0)
나의책장 (0)
지식만물전 (14)
각종정보 (4)
비공개 (0)
ColorSwitch 00 01 02

Ⅰ. Kohlberg의 생애

Ⅱ. Kohlberg의 도덕성 발달 이론

  1. ‘도덕성’에 관한 고찰
    1) Freud의 도덕성에 대한 주장
    2) 도덕성에 대한 Piaget의 주장

  2. Kolhberg의 도덕발달 이론
    1) Kolhberg의 딜레마
    2) Kolhberg의 도덕성 발달 단계
    3) 이론의 예시와 검증
    4) Kohlberg 이론의 검증

Ⅲ. Kohlberg 이론의 특징과 시사점

    1) Kolhberg의 이론의 특징
    2) Kohlberg 도덕 발달 단계의 시사점

Ⅳ. Kohlberg 이론에 대한 비판점과 그에 따른 후속 연구

    1) 콜버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점
    2) Kohlberg 이론에 기초한 도덕성 발달에 대한 후속 연구




Ⅰ. Kohlberg의 생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콜버그(Lawrence Kohlberg, 1927-1987)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인지심리학의 기수이며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소년들의 반응을 토대로 Piaget의 도덕발달이론을 정교화하고 확장시켜 나간 학자이다.
-자신이 추구했던 도덕적 이상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다간 교육자로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스승으로 기억되고 있다.

  콜버그(Lawrence Kohlberg)는 1927년에 뉴욕주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부유한 실업가였다. 그는 예비학교 출신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17세의 어린 나이에 선원생활을 시작하여 20세가 될 때까지 세계를 여행하였다. 그 후 그는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여 2년 만에 1949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대학의 박사 과정에 입학한 그는 임상심리학과 아동 발달에 관심을 보였다. (대학에서 그는 철학과 문학을 통해 도덕적 전통을 배웠으며, 대학원 과정에서 Bruno Bettlheim, Carl Rogers와 같은 분들로부터 임상적 이론과 실제에 관한 지도를 받았다) 그 당시 학계는 정신분석학이나 행동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때였지만 콜버그는 피아제 이론에 심취하게 되어 발달관계에 입각한 도덕성을 규명하려는 새로운 착상을 하였다.

  콜버그는 자신의 논문 계획서대로 피아제의 도덕발달의 2단계를 10-16세 소년들에게 확장시켜 적용하는 도덕발달의 단계 구조를 만들고, 이를 시카고 지역 소년들을 통해서 검증해냈다. 이렇게 해서 박사 과정 9년 만에 1958년 박사학위 논문(<10-16세까지 사고와 선택유형발달>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마쳤다. 이 때부터 그는 논문작성에 참여했던 소년들을 3년마다 면담하면서 그들의 도덕발달을 주술에 걸린 듯 20여 년이 넘도록 추적하였다. 콜버그는 1987년 보스턴 항구의 해변가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도덕발달과 도덕교육에 몰두하였다.

  콜버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곧 이어서 교수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제일 먼저 초빙되는 곳이 예일대학교이었다. 이어서 모교인 시카고 대학교(1962)로 옮겨 8년을 봉직한 후에 다시 하버드 대학교(1968)로 초빙되어 죽을 때(1987.4)까지 이곳에서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였다. 그는 하버드의 대학 안에 “도덕교육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도덕성 발달 및 교육연구를 추진해 나갔다(문용린, 1988: 102). 그러나 그는 도덕적 이상주의와 현실간의 괴리로 인해 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59세에 생을 마치기까지 정의를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Ⅱ. Kohlberg의 도덕성 발달 이론


 1. ‘도덕성’에 관한 고찰

 심리학자들은 도덕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정의적 요소, 인지적 요소, 행동적 요소를 가정하여 연구해왔으며 각각의 입장에 따라 초점을 맞추는 측면이 다르다. 먼저 정신분석이론가들은 도덕발달의 정서적 측면을 강조한다. Freud에 의하면 자녀가 부모를 얼마나 좋아하는가가 부모의 도덕기준을 내면화하는데 영향을 준다. 그리고 부모의 도덕기준을 내면화한 아동은 그것을 위반했을 때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인지발달이론가들은 도덕의 인지적 측면 또는 도덕적 추론을 강조하였고 도덕에 대한 아동의 사고방식이 성숙하면서 도덕적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해왔다. 사회학습이론가와 사회정보처리 이론가들은 어떻게 아동들이 나쁜 행동을 억제하고 유혹에 저항하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1) Freud의 도덕성에 대한 주장

  프로이드에 따르면 초자아는 남근기에 발달하는데(3-6세) 그 시기에 아동들은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과 같은 욕망 때문에 동성부모에 대한 적대적 경쟁심을 경험하게 된다. 우선 소년의 경우,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적대감이 형성되고,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를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아동들은 아버지의 도덕기준을 포함한 여러 속성을 내면화한다. 프로이드는 남성의 초자아가 아동초기에 출현해서 6-7세에 성숙되며 이에 따라 오이디푸스 갈등이 해소된다고 가정했다.

  소녀들은 아버지의 애정을 두고 엄마와 경쟁하기 시작하는 남근기 동안에 비슷한 갈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측되나, 소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느끼는 것만큼 어머니를 그렇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어머니들은 소녀들을 결코 거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도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를 어쩔 수 없이 동일시하면서 두려움을 해결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드는 여성들의 초자아가 남성들에 비해 더 약하다고 믿었다.

  2) 도덕성에 대한 Piaget의 주장

  Piaget은 도덕 발달의 기본골격을 마련하고 거기에 두 단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도덕 전 단계를 먼저 설명했다. Piaget에 따르면, 학령 전 아동들은 규칙에 대한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거나 규칙이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공기놀이게임에서 도덕 전 단계의 아동들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놀이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하고 놀이규칙을 임의로 만들었다. 다만 게임이 서로 교대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도덕 전 시기가 끝날 무렵(4-5세)에 아동은 규칙에 따라 놀이하는 손위 아동의 행동을 주시하여 모방함으로써 규칙을 알게 된다. 그러나 도덕 전 단계의 아동은 아직 규칙이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합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1) 사실적 도덕성의 단계
    6-10세의 아동은 규칙과 신념에 대한 강한 존중감을 발달시키고 그것에 항상 복종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타율적 도덕단계의 아동들은 규칙이란 권위적 인물이 일방적으로 부과하며 매우 신성하고 결코 변경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위급한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중에 '도로규칙'을 위반했을 때에도 어린 아동은 그 행동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타율적 도덕단계의 아동들은 규칙을 절대시한다. 이때 아동들은 행위자의 의도보다는 행위의 객관적 결과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쉽다. 예를 들어 우연히 컵 15개를 깨뜨린 아이가 잼을 훔치려다 컵 한 개를 깬 아이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즉 자신이 나쁜 행동을 하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상대적 도덕성(자율적 도덕성)의 단계
    10-11세가 되면, 도덕발달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자율적 도덕단계의 아동들은 사회규칙들이 변경될 수 있으며, 규칙이 사람들의 동의여하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임의적 합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규칙이란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위배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제 아동은 행동 자체의 객관적 결과보다는 의도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다.


  2. Kolhberg의 도덕발달 이론

  Kolhberg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10, 13, 16세의 소년들의 반응을 토대로 Piaget의 도덕발달이론을 정교화하고 확장시켜왔다. 딜레마를 보고 소년들은 두 가지, 즉 규칙, 법, 권위적 인물에 복종하는 것과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규칙과 명령을 어기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Kolhberg는 Piaget가 도덕성을 타율적 도덕성과 자율적 도덕성으로 양분한 것은 도덕성 발달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본 것이라고 생각하고, Piaget가 주로 어린이를 연구의 대상으로 한 것에서 성인까지 확대하여 도덕성 발달을 3 수준 6 단계로 확대하여 제시하였다. Kolhberg는 그의 도덕성 연구에서 질문지를 사용하였다. 그는 질문에서 단순하게 "예" 혹은 "아니오"라는 응답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논리에 관심을 두었다.

하인즈가 약을 훔치다

 “유럽의 한 부인이 특수한 종류의 암을 앓아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 부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약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약은 같은 마을에 사는 어느 약사가 최근에 발명한 라디움 종류의 약이었다. 그 약을 만드는 데는 원가가 상당히 비싼데다가 그 약사는 약값을 원가의 10배나 요구하였다. 라디움을 200 달러에 구입해 가지고 그 조그만 약을 2,000 달러에 팔려고 한 것이다. 병든 부인의 남편인 하인즈는 돈을 구하기 위해 아는 사람들 모두 찾아 다녔으나 그 약값의 절반밖에 안 되는 1,000 달러밖에 마련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하인즈는 그 약사에게 가서 자기 부인이 죽어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그 약을 1,000 달러를 받고 싸게 팔거나, 아니면 외상으로라도 자기에게 팔아주면 다음에 그 돈을 갚겠다고 간청했다. 그러나 그 약사는 "안 됩니다. 그 약은 내가 발명한 약인데, 나는 그 약으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절망에 빠진 하인즈는 결국 약방을 부수고 들어가서 자기 부인을 위하여 그 약을 훔쳐내었다.”

콜버그는 소년들의 도덕적 추론구조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 남편은 약을 훔쳤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만 하는가?
☞ 약제사는 그렇게 터무니없이 비싼 약값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 약제사가 부인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한가?
☞ 만약 정당하다면 그리고 부인이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약제사를 더 심하게 처벌해야 할까?

1) Kolhberg의 딜레마

2) Kolhberg의 도덕성 발달 단계

  (1) 제1수준, 전인습적 : 전도덕성
  도덕적 선악의 개념은 있으나, 준거는 권위자의 힘이나 개인적 욕구에 관련시켜 해석한다.

  ① 1단계(주관화 - 복종과 처벌지향)
     하인즈가 약을 훔치는 것은 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판단한다. 권위자의 벌을 피하고, 권위에 복종한다. 3세-7세에서 나타나는 이 단계는 벌과 순종을 향하여 있다. 놀이 친구를 고자질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나이 또래의 어린이는 “차라리 말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매 맞을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② 2단계(상대화 - 상대적 쾌락주의)
    약을 훔쳐서라도 하인즈는 자기 아내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시기이다. 자신의 욕구충족이 도덕 판단의 기준이며, 욕구 배분의 동기는 있으나 자신의 욕구충족을 우선 생각한다. 8세-11세의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이 단계는 순진한 도덕적 상대주의(naive instrumental relativism)에 있게 된다. 앞 선 질문에 대하여 어린이는 오히려 다음과 같이 답변할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고자질하지 않겠어요.” 제 2단계의 어린이들은 고도로 발달된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든지 모든 사람이 동등한 분깃을 받도록 공명정대함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그런 어린이들은, 자신들은 잠을 자야 되는데, 왜 더 나이가 많은 어린이들이 더 늦게까지 자지 않아도 되는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2) 제2수준, 인습 수준 : 타율 도덕성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대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며 사회질서에 동조하고자 하고 힘 있는 사람과의 동일시를 하려 한다. 다른 사람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사회 지향적 가치기준을 갖는다.

  ③ 3단계 (객체화 - 착한 아이 지향)
    하인즈가 약을 훔치는 것은 약사의 권리를 침해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대인 관계 및 타인의 승인을 중시한다. 12세-17세의 청소년에게 나타나는 이 시기는 상호 인격적 일치가 나타난다. 청소년은 다른 사람의 관점과 의도를 이해할 수 있고, 고려할 수 있다. 정의는 항상 다른 사람을 부정하고 해치지 않는 옳은 것에 대한 인습적 형상(image)을 포함한다. 아무리 반항적인 청소년일지라도 항상 그들의 도덕적 개념을 유지해 주는 동년배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의 도덕적 판단의 특징적인 결과는 보다 덜 반항적인 청소년들과도 마찬가지이다.

  ④ 4단계 (사회화 - 사회질서와 권위 지향)
    법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하인즈의 행동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시기이다.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무를 다한다. 18세-25세의 시기에 주로 나타난다. 이 때에는 법과 질서가 호소력이 있다. 친구의 비행을 말할 것인가, 아니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행위가 법을 어겼는가? 또는 공공의 질서를 심각하게 방해 하였는가 이다. 정의는 자신의 의무를 행함으로, 자기 자신의 사회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소수의 권리에 대한 예리한 감각은 없다. 가장 성숙한 측면이 탈 인습적 측면이다. 여기에서 도덕적 관습이 이해된다. 그러나 다른 것을 고려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3) 제3수준, 후인습수준 : 자율도덕성
  자신의 가치관과 도덕적 원리원칙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별개임을 깨닫게 되면서 개인의 양심에 근거하여 행위를 하게 된다.

  ⑤ 5단계 (일반화 - 민주적 법률)
  하인즈가 약방문을 부수고 들어간 것은 잘못이나 인명을 구하기 위한 일이므로 용서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시기이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원리에 따라 행동한다.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공리주의, 가치기준의 일반화를 추구한다. 25세 이상의 시기에 나타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상호 유익을 위하여 합의를 시도한다. 그러므로 소수까지 포함된 모든 개인의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 모두의 관심거리가 된다. 어떤 친구의 비행을 말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이제는 그 친구가 그 행위를 하게 된 이유에 달려 있게 되고, 가능한 여러 행동이 그 친구와 보다 넓은 공동체에 끼칠 영향력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의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⑥ 6단계 (궁극화 - 보편적 원리)
    법이나 관습 이전에 인간 생명이 관여된 문제로서 생명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보편적 도덕 원리를 지향한다. 스스로 선택한 도덕 원리, 양심의 결단에 따른다. 제 6단계에 있어서(극히 소수만이 단계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에 나이를 들 수가 없다) 보편적 도덕의 원칙을 인식하게 된다. 사회적 질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와 모든 사람을 결속시키는 도덕적 원칙에 대한 존중이 극에 달하게 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지고의 측면에 인도하기 때문에 의무적이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의 정의는 모든 주장에 대하여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결코 수단으로만 여겨지지 않고 목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⑦ 7단계 : 우주적 영생을 지향하는 단계
    콜버그는 말년에 7단계를 추가한다. 그것은 도덕 문제는 도덕이나 삶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주적 질서와의 통합이라고 보는 단계이다. 예수, 간디, 마틴 루터 킹, 공자, 소크라테스, 칸트, 본 회퍼, 테레사 등의 위대한 도덕가나 종교지도자, 철인들의 목표가 곧 우주적인 원리이다. 우주적인 원리가 속하는 것은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율과 같은 곳에서 드러난다. 생명의 신성함, 최대다수를 위한 최선의 원리, 인간 성장을 조성하는 원리 등이 우주적인 원리에 속한다.


하인즈의 행동에 대한 도덕발달단계별 반응 예시
(Shaffer, 1993 송명자, p287)


단계 1

괜찮다

훔친 약값이 실제로는 200불 밖에 안 될 것이다.

나쁘다

남의 것을 함부로 훔치는 것은 죄가 된다. 약값이 비싸므로 비싼 것을 훔친 만큼 죄가 크다.

단계 2

괜찮다

약국 주인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또 언젠가 갚을 수도 있다. 아내를 살리려면 훔치는 수밖에 없다.

나쁘다

약사가 돈을 받고 약을 파는 것은 당연하다.

단계 3

괜찮다

훔치는 것은 나쁘지만 이 상황에서 훔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아내를 죽도록 버려둔다면 비난 받을 것이다.

나쁘다

아내가 죽더라도 남편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약을 훔치지 않았다고 해서 무정한 남편이라고 할 수 없다.

단계 4

괜찮다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약사가 나쁘다. 아내를 살리는 것이 남편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약값은 반드시 갚아야 하고, 훔친데 대한 처벌도 받아야 한다.

나쁘다

아내를 살리려면 하는 수 없지만. 그래도 훔치는 것은 나쁜 행동이다. 개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규칙은 지켜야 한다.

단계 5

괜찮다

훔치는 것이 나쁘다고 하기 전에 전체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이 경우 훔치는 것은 분명 나쁘다. 그러나 이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라도 약을 훔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쁘다

약을 훔치면 아내를 살릴 수 있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하인즈가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훔친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단계 6

괜찮다

법을 준수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하라면 법을 어기더라도 생명을 구하는 것이 더 수준이 높은 행동이다.

나쁘다

암환자는 많고 약은 귀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약이 돌아갈 수는 없다. 이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감정이나 법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무엇이 이성적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참고) Piaget와 Kohlberg의 도덕성 발단 단계 비교


Piaget

Kohlberg

사실적

도덕성

(6-

10세)

- 규칙이란 권위적 인물이 일방적으로 부과하며 매우 신성하고 결코 변경될 수 없음

- 행위의 객관적 결과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쉬움

전인습

수준

(자아 중심적인 특징)

단계 1

(3-7세)

처벌과

복종지향

-처벌을 피할 수 있거나 힘을 가진 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도덕적 행위라고 판단

-처벌받는 행위는 나쁜 행위이며 그렇지 않으면 옳은 행위

상대적

(자율적)

도덕성

(10-

11세)

- 사회규칙은 변경될 수 있음

- 행동 자체의 객관적 결과보다는 의도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판단

단계 2

(8-11세)

상대적

쾌락주의

-자신이나 타인의 욕구 충족 여부를 기준

 

 

인습수준

(다른 사람의 판단과 의견을 고려, 사회의 인습· 규칙에 동조)

단계 3

(12-17세)

대인간계 조화를

위한

도덕성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행위가 도덕적 행위

-착한 소년-소녀지향

단계 4

(18-25세)

사회질서

권위유지

-현재의 법이나 질서와의 일치 여부가 기준

후인습 수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원리에 비추어 도덕

판단)

단계 5

(25세 이상)

사회계약으로서의

도덕성

-사회적 합의에 의한 도덕판단

-융통성 있는 법의 개념

단계 6

보편적 원리에 의한 도덕성

-스스로 선택한 도덕적 원리에 따른 양심에 의해 도덕적 행위 결정

-도덕적 원리는 추상적이고 보편적 원리


  3) 이론의 예시와 검증

문제 상황

“수학 시험 시간이다. 주관식 한 문제가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는다. 어제 저녁에 한번 풀어봤는데 해법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그 문제를 풀던 연습장이 쉽게 손닿는 곳에 있다. 감독 선생님의 눈도 피할 수 있다. 이 시험은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중요한 시험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 1단계 : 만약 발각되어 처벌받을 위험성이 전혀 없다면 부정행위를 하겠다고 말 할 수 있다. 또는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 있다 해도, 만에 하나 발각되면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는 등 신체적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안 하겠다고 말 할 수도 있다.
● 2단계 : 내신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말 할 수 있다. 또는 내가 부정행위를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의 내신이 불리해져도 나의 내신만 높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부정행위를 할 수도 있다.
●   3단계 : 선생님에게 발각되지 않아도 옆의 친구들이 보고 나서, 나를 부정행위 잘하는 놈이라고 놀려댈까 봐 하지 않을 수도 있다.
● 4단계 : 처벌에 상관없이,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상관없이,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이며 교칙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무조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안 할 수 있다.
● 5단계 : 단순히 교칙이나 사회 규범에 어긋나기 때문이 아니라, 부정행위가 사회에 보편화되면 사회구성원들이 살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아주 넓은 시야에서 생각하고 부정행위를 안 할 수도 있다.
● 6단계 : 극히 일부의 철학자들에게나 나타나며,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4) Kohlberg 이론의 검증

  미국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연령증가에 따라 전인습 추론(1,2단계)은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 약 22세까지는 인습적 추론의(3,4단계) 사용이 증가하였다. 또한 후인습 추론(5,6단계) 도 연령에 따라 증가되었다. 그리고 10-16세 소년들이 5,6단계 추론을 결코 사용하지 않는데 비해 24세 된 성인들은 약 10%가 후인습 수준에 있었다. 비슷한 연령별 추세가 멕시코, 버어마, 타이완, 터어키, 중앙아메리카, 인도, 케냐, 그리고 나이제리아 등에서도 입증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인습 후 수준이 도달하는 것은 아니며 사실상 모든 사회에서 성인 대부분의 도덕추론수준은 인습적 도덕수준(3,4단계)에 머물러있다. Kohlberg에 의하면, 이와 같이 도덕발달이 멈추거나 한 단계에 고착되는 이유는 개인이 현재 수준의 도덕적 추론방식을 반성할 충분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Ⅲ. Kohlberg 이론의 특징과 시사점


  1) Kolhberg의 이론의 특징

(1) 단계들이 불변의 연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입은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은 반드시 순서에 따라 각 단계를 거쳐 간다. 다시 말해서 도덕 발달은 다른 모든 발달처럼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진행되므로 하룻밤 사이에 지고의 도덕군자로 변신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2) 단계들은 계층적 통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낮은 단계는 높은 단계의 도덕적 추론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높은 단계는 낮은 단계의 도덕적 추론을 포괄하고 이해한다. 단계의 이동은 도덕적 추론을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인지적 구조가 재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3) 발달은 인지적 불균형이 생성될 때 발생한다. 도덕적 난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는 인지적 판단이 서지 못한 상태를 불균형이라 한다.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에서 현재의 인지적 판단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새로운 인지적 구조로 전환하여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발달의 특성이다.


  2) Kohlberg 도덕 발달 단계의 시사점

 콜버그의 인지적 접근의 도덕성 발달이론은 인지적 요인을 중시하는 교육에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콜버그는 교육에서 도덕적 추론능력 혹은 도덕 판단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토론식 수업을 제안했으며, 이것의 효과를 여러 연구에서 입증했다. 그는 학교에서 도덕성의 문제를 어린이에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도덕성 판단 단계에 맞게 소집단을 형성하여 도덕성 문제 및 도덕적 가치 갈등에 대하여 토론을 하게 함으로써 도덕성발달이 하위단계에서 다음 상위단계로 이행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어린이는 자신의 현재 도덕성 단계보다 한 단계 상위단계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며, 보다 상위단계의 판단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콜버그는 도덕성 발달이론은 부모나 교사들이 어린이의 연령에 따라 어떻게 도덕 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유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예컨대, 아주 어린 아동들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는 즉각적인 처벌로 어린이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다 성숙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사회적 제재보다 보편적인 가치기준 혹은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적절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이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하였으나 이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인 서구문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과 또한 도덕 판단력과 도덕적 행위는 일치하는가에 문제가 있다.

Ⅳ. Kohlberg 이론에 대한 비판점과 그에 따른 후속 연구


1) 콜버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점

 콜버그 접근법은 원리주의 혹은 연역적 도덕적 추론양식, 피아제식의 경성 발달단계의 개념, 수수하게 언어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연구 방법론, 그리고 지나치게 제한된 초기 발달단계와 관련하여 비판을 받아왔다. 콜버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점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덕적 추론양식

 콜버그의 도덕적 추론양식에 대한 비판은 철학적 관점에서 제기되어 왔다. 그 동안 도덕 이론들은 근본 원리주의 방식을 고수하여 왔다. 다시 말하면, 줄곧 어떠한 “기본적인 원리”를 중심으로 도덕 이론들이 형성되어 온 것이다. 도덕 이론들이 근본 원리를 이론의 중심에 끌어들인 까닭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도덕적 문제 사태에 봉착했을 때, 그러한 원리를 근거로 연역적인 도덕적 판단을 하기를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연역적 도덕 추론 양식”의 도덕성은 원리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콜버그는 자신의 도덕 발달 이론의 철학적 배경으로 이러한 접근법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정의는 곧 근본원리에 해당되었다.

 도덕 철학자들은 1960년대 이래 이러한 접근 방식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소위 말하는 “원리주의” 혹은 “연역적 추론양식”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툴민(S. E. Toulmin)이다. 툴민은 합리적 윤리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기존의 방법론들은 거짓 가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객관적 접근법의 옹호자는 마치 견문이 넓은 사람들은 가치에 관하여 일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하고, 주관적 접근법의 옹호자는 마치 사람들은 저마다 가치의 표준을 다르게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툴민의 지적은 사람들이 정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도덕적 문제에 대한 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는 콜버그의 관점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된다. 도덕적 문제에서 귀납적 추론 양식의 타당성을 제시한 것이다.

 콜버그 이론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콜버그의 전기 이론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인간을 격리된 개인적인 의사 결정자로서 상정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의 이론적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직관적 상상으로부터 자신의 도덕적 관점을 구성하는 존재이다. 즉, 인간이 자신이 속한 특수한 공동체 관계나 역사와 무관하게 보편적 표준에 입각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2) 발달단계 개념

 콜버그는 발달의 모델로서 계단에 비유되는 피아제식 경성 단계 개념을 채택하였다. 이 개념에서 보면 발달이란 한 순간에 한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해석된다. 단계와 단계 사이가, 비록 중첩을 인정한다 하지만,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매우 경직된 단계 개념이다.

 콜버그는 행위자의 도덕판단에 초점을 둠으로써 개인적 상대성과 문화적 상대성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불변적 단계 계열을 통해 발달하고 있는 문화적으로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콜버그에 있어서 보다 높은 판단의 단계란 양심이나 내면화라는 모호한 개념들보다는 한결 간결하게, 단계를 도덕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형식적 특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개인의 행위가 그의 판단에 대응하는 한, 그리고 그 판단이 높은 단계에 속하기에 그만큼 더 선명하게 도덕적인 것으로 보는 한, 우리는 그 행위를 문화적 변수와 별개의 또는 상황적 편의의 요인과 무관한 상태에서 “도덕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콜버그의 이와 같은 경성 단계 개념을 주장하지 않는다. 인지발달의 단계들은 사회 문화적으로 보편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글러는 콜버그의 경성 단계 모델에 관한 잘못을 두 가지 측면에서 지적하고 있다. 우선, 아동들은 모든 인지발달 영역들에서 대부분의 현상에 관하여 전형적으로 다중적인 사고방식들을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인지 발달 변화는 아동들이 새로운 사고 방식들의 소개뿐만 아니라, 이들 방식에 의존하여 사고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는 변화를 포함하며, 그러한 변화는 일종의 계단식의 진보라기보다는 일련의 중첩되는 파동들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3) 연구 방법론

 심리학자들은 콜버그가 도덕적 판단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연구 방법론을 심각하게 비판하여 왔다. 그의 연구 방법론은 순수하게 언어적인 방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콜버그는 인터뷰를 통해 피험자들의 도덕 판단에 대한 정당화 자료를 수집하였다. 곧 피험자들이 인터뷰 과정에서 제공하는 언어에 오로지 의존하여 평가를 하였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인지적 과정을 자기 스스로 보고하는 방식이 지닌 심각한 한계들을 지적하여 왔다.  심리학자들은 암묵적 과정들과 무언의 지식이 인간의 의사결정에 대해 갖는 영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험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도덕적 판단들을 정당화하도록 요구하는 표준 교격화된 인터뷰 자료는 도덕적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지구조에 관한 평가가 “도구에 제한”되어 버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도구로부터 자유로운 평가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은 인터뷰 자료가 전혀 가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언어적 자료 산출물들은 마음의 복잡한 작용들을 자칫 잘못 나타내거나 혹은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준 규격화된 자료의 타당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4) 초기 발달단계

 많은 학자들은 콜버그가 주장하였던 도덕적 판단 발달의 초기 단계들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콜버그는 아동기(5-8세)에 주로 나타나는 1단계와 학동기(9-11세)에 주로 많이 나타나는 2단계는 인습 이전 수준으로, 1단계의 타율적 도덕성과 2단계의 개인주의, 도구적 목적, 교환의 단계가 이에 해당한다. 1단계의 타율적 도덕성은 처벌을 받기에 규칙을 어기지 않으며, 복종을 위한 복종을 하고, 또한 사람과 재산에 대한 물리적 손상을 피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여긴다. 2단계의 도구적 목적의 도덕성은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될 때만 규칙을 따르며,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 부합되도록 행동하고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한다. 옳은 일이란 공정한 것, 요컨대 공정한 교환, 거래, 협약이다.

 그러나 데먼(W. Damon), 아이센버그(N. Eisenberg), 호프만(M. Hoffman) 등은 어린 아동들이 콜버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어린 아동들은 타인들의 신체적 및 심리적 상태들을 해석하는 인지적 능력,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정서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적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불만을 경감시키려고 노력하는 행동 목록을 가지고 있다. 어린 아동들은 콜버그의 이론에서처럼 자기 중심적 반응 혹은 강한 힘에 대한 복종으로 그렇게 제한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센버그는 콜버그의 잘못이 추상적 정의를 지나치게 강조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엄격하고 절대적인 단계를 가정한데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녀에 따르면, 개인의 도덕적 판단은 문화적 특성이나 순간적 상황에 의해 영향받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발달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예측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높은 수준의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내일은 더 낮은 수준의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판단을 하는가 하면,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더 낮은 수준의 판단을 하는 과제 특징적인 경향을 보이므로, 도덕적 사고의 단계를 엄격하게 계단식으로 가정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호프만의 연구에 따르면, 아동은 아주 어린 시기에서부터 이타적 행동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피아제가 말하는 감각운동기에 해당하는 2세 전후의 아동들은 다른 사람이 고통이나 어려움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3-7세가 되면 다른 사람이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누구인지도 안다. 비록 그 사람이 자신과 다른 감정이 있고, 지금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적절하게 반응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공감 능력이 아주 어린 아기에게서도 발달되고 있다는 점이 콜버그의 초기 발달단계의 내용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2) Kohlberg 이론에 기초한 도덕성 발달에 대한 후속 연구

 앞서 비판점을 살펴보았듯이, 1980년대 이후 콜버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는 자신의 접근법에 대한 몇 가지 한계들을 인정하고, 비판자들의 입장을 수용하여 수차례에 걸쳐 기꺼이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였다. 그는 도덕적 영역은 매우 넓고 다양하여, 어떤 하나의 접근법으로 그것을 개념화하고 또한 평가한다는 것은 그러한 다양성을 철저히 논하거나 혹은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였다. 도덕 심리학에는 다른 과정들(processes)과 구성들(constructs)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콜버그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단계에 대한 정의와 면담 자료를 점수화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인정하였고, 딜레마 토론을 통한 개인의 인지적 성장에 초점을 두었던 도덕교육 접근법을 “정의 공동체”의 건설로 전환시켰다. 그는 또한 자신의 3수준 6단계 이론을 모든 도덕적 영역을 포괄하는 추론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정의와 관련한 사고로 협소화시켰다.

 콜버그 자신도 비판의 일부를 수용하여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였지만, 뿐만 아니라 이후에 신콜버그파는 콜버그 이론에 대한 그러한 비판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이론적 정립을 시도하였다. 신콜버그파란 콜버그의 주요 이론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인간의 도덕성 발달을 설명하고자 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지칭하며, 대표적 학자들로는 레스트(J. Rest), 나베츠(D. Navaez), 투리엘(E. Turiel) 등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인지를 강조하고, 아동은 도덕에 관한 인식을 스스로 구성해 나가는 존재로 이해하며, 발달의 개념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습 이후 사고에 여전히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콜버그 이론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콜버그 이론이 갖고 있는 위의 비판들을 수용하여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이론을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1) 귀납적 추론 양식

 그러나 툴민을 비롯한 현대 도덕 철학자들은 선험적인 도덕적 원리에 기초한 합의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은 하나의 특별한 공동체의 도덕적 체계는 다른 공동체의 도덕저거 체계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보편적 도덕적 체계에 대한 요구를 포기한다. 이들은 특정 공동체에서 몇 가지의 범례적인 경우들에 대해 실제적인 합의에 이르는 것은 선험적인 추상적인 원리들을 근거로 합의점을 찾으려는 소득 없는 노력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주장한다.

 많은 현대 도덕 철학자들은 도덕성을 특수한 시간에 있는 특수한 공동체에 대해 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도덕적 회의주의, 곧 모든 도덕적 담론은 단순히 개인적 선호의 승인이라는 신념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확립된 집단 관습과 전통에 대한 마음 없는 혹은 전혀 의심 없는 순응도 아니며, 그리고 도덕적 이상을 폐기하는 것도 아니다. 툴민과 같은 철학자들은 도덕적 사고가 반드시 원리의 측면에서 가장 믿을만하게 작동한다는 생각에 도전하였다. 사람들이 원리에 합의하지 못해도, 구체적인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 서로 정당한 이유에 입각하여 합의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도덕적 사고의 가장 진보된 형식이 도덕적 결정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과는 무관한 개인의 사고 작용이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그들은 생명 지원체계의 제거에 대한 의학적인 윤리적 지침들의 발달을 예로 들고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수년 동안 뇌사 상태에 빠져 생명지원체계에 의해 삶을 인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 상황적 특수성과 사회적 특수성이 의학적 “윤리”를 결정하게 된다. 의학적, 철학적, 법학적, 그리고 정치적 권위자들에 의해 합의가 형성되고, 그것이 생의학적 윤리의 지침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의 철학자들은 도덕을 하나의 본래적으로 타고난 사회적 현상, 곧 한 공동체의 특별한 경험들과 심사숙고 속에 체현된 사회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결국 도덕성이란 사회적 조직 그리고 집단 합의와 분리된 별개의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이는 관습적 도덕성이 상대주의가 무비판적 혹은 지각없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공동체의 특수한 역사와 맥락에 있는 도덕적 이상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콜버그의 구조/내용 구분에 대한, 인습 이후에 관한, 범 문화적 보편성의 주장에 관한, 그리고 도덕적 사회에서의 논쟁과 심사숙고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함축들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신콜버그파는 도덕 심리학에서 콜버그식의 연역적 도덕적 추론보다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들은 도덕적 민감성, 판단, 동기, 인격 등의 요소들이 도덕적 행동을 산출하는데 작용하는 네 가지 구성요소라 말한다. 각기 다른 구성요소들은 도덕성 발달에 대한 각기 다른 접근법들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콜버그도 후기에 이르러 도덕적 판단과 발달의 6단계 모델에 입각한 연역적 도덕적 추론 중심의 도덕교육 접근법에서 차츰 벗어나 도덕성의 사회적 구성에 초점을 둔 정의 공동체 접근법에 애착을 보였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콜버그가 추론 능력의 계발 중심의 접근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회적 맥락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도덕적 추론 능력을 생각했던 것이다.

 (2) 도식 이론

 신콜버그파는 오랜 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단계라는 용어보다는 도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도식이란 말은 요소들 간의 관계를 포함한 몇몇 자극 현상의 정신적 표상으로 이루어지는 인지적 구조로서, 피아제가 생물학적인 지식에서 빌어 온 개념이다. 도식이란 한마디로 아동 자신의 경험적 활동에 의해 조직화한 행동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 ‘이해의 틀’을 도식 또는 구조라고 말한다. 신콜버그파가 피아제가 사용하였던 도식이란 용어를 다시 사용하는 까닭은 인지구조의 유형이 몇 가지 중요한 방식에서 콜버그의 단계들과 다르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신콜버그파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도식이란 말이 기존의 콜버그의 단계 개념과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인지구조들을 “조작”, 곧 콜버그의 “정의 조작”과 같은 측면에서, 정의하지 않는다. 둘째, 콜버그의 계단식 발달의 경성 단계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어느 한 때에 어느 특정 단계에 속한다는 콜버그의 가정도 인정하지 않는다. 셋째, 도덕적 도식의 보편성에 대한 선험적 주장을 하지 않는다. 즉, 신콜버그파는 도식에서의 범 문화적 일치에 대해 경험적 의문을 품고 있다. 끝으로, 내용을 근본적으로 무시하고 구조만을 대상으로 하는 콜버그의 점수화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차별적 의미에서, 신콜버그파는 단계라는 용어 대신에 도식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콜버그의 이론에서는 발달이 정신적 조작의 측면에서 설명된다. 즉, 보다 나중의 단계들은 이른 단계보다 더 복잡한 정신적 조작들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발달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콜버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보다 많은 것들을 보다 복잡한 방식에서 처리하게 되면서 발달한다. 그러나 신콜버그파는 이와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도식들은 세계에 관한 일반적 ‘내용’의 표상들이다. 이들의 도식 개념에 따르면, 결과물 혹은 내용의 측면에서 인지구조의 발달을 정의한다. 즉, 이들의 도식 개념에 따른 발달은 인지구조를 결과물 혹은 내용의 견지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개념이 보다 복잡해지고 또한 규범적으로 더 적절하다면, 그 사람의 인지구조는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신콜버그파는 발달 도식으로 ‘개인적 이익’ 도식, ‘규범들의 유지’ 도식, 그리고 ‘인습 이후’ 도식 등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물론 이 세 가지 도식들이 도덕 판단의 완전한 의사결정 모델을 나타내는 것으로 제안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도식들은 콜버그의 단계들과는 다르지만, 아직 콜버그의 주요 개념들의 핵심들은 유지하고 있다. 다만 콜버그의 단계 개념의 핵심과 구분하기 위해, 신콜버그파는 다른 용어들을 사용한 것이다. 예컨대, 콜버그가 사용하였던 “법과 질서”하는 용어 대신 “규범들의 유지” 도식이란 말을 쓴 것이다. 신콜버그파가 말하는 발달의 도식은 콜버그가 정의 조작의 측면에서 단계들을 기술하였던 것보다는 사회도덕적 관점의 측면에서 발달을 설명하였던 방식과 유사하다.


 (3) 영역 접근

 신콜버그파는 발달의 모델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콜버그의 경직된 계단 모델에서 파동 모델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새로운 발달의 모델은 보다 발달된 사고를 점차적으로 사용하고 선호하는 빈도수가 증가하는 측면에서 상승운동으로 표현한다. 신콜버그파에 있어서, 발달이란 한꺼번에 한 계단이 변화하는 전환이 아니라, 보다 낮은 사고의 형식들에 대한 보다 높은 사고의 형식들의 점진적 증가를 의미한다. 이는 신콜버그파가 기존의 콜버그의 경성 영역 접근법에서 연성 영역 접근법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다.


 (4) 도덕성 개념의 확장

 콜버그는 길리건과의 논쟁을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단계들이 ‘정의'의 범위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곧 자신의 도덕적 딜레마와 점수화 체계는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그리고 자기가 한 구성원인 집단에 대한 특수한 관계와 의무들을 다루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제한되어 있다고 인정하였다. 콜버그는 이후에 6단계의 원리를 “인간 존중”으로 다시 정의하고, 여기에서 정의의 원리와 함께 자비의 원리를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자신의 6단계에 의해 포괄되었던 도덕성의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약 반세기에 걸친 인지발달 이론의 역사에서 도덕적 사고에서의 정의 정향과 배려 정향이 이론적 차원에서 공히 확신을 갖게 된 것은 근래에 이르러서였다. 최근 들어 인지발달 이론은 길리건의 경험적 연구결과를 받아들여 기존의 정의 정향과 함께 배려 정향을 구조화된 전체들로서 정의하는 인식론적 가정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콜버그 이론체계에서 ‘정의 구조들’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한 대안이다. “정의”는 이제 더 이상 도덕철학의 유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dext.tistory.com/trackback/118 관련글 쓰기










주요 문학 개념 풀이




이 글은 문학 공부에서 자주 접하는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김윤식 편 『문학비평용어사전』(일지사, 1976),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민음사, 1976), 이명섭 편 『세계 문학비평용어사전』(을유문화사, 1985), C. R Reaske 『How to Analyze Poetry』(Thor Publications, 1966), M. H. Abrahms 『A Glossary of Literary Terms』(Holt, Rinehart and Winston, 1971) 등의 책들을 참고하였으며 여기에 실린 내용을 종합하여 알기 쉬운 언어와 문장으로 정리하였다.



개념 표시와 함축(含蓄, implication):
한 낱말이 단일한 의미나 개념만을 나타내도록 쓰여졌을 때 그 낱말은 의미나 개념을 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그 낱말이 표시하고 있는 단일한 의미를 외연(外延, denotation)이라고 한다. 반면 한 낱말이 어떤 단일한 의미를 표시할 뿐만 아니라 문맥상으로 보아 다른 여러 뜻을 암시할 때, 이를 함축 혹은 내포(內包, connotation)라 한다. 외연적 의미(개념 표시)는 일반적으로 객관적 설명이나 논술에 쓰이고, 내포적 의미(함축)는 독자의 지적 이해 이외에 감각적 내지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글, 즉 문학이나 웅변 등에 쓰인다. 알레고리, 비유, 상징 등이 모두 함축적 사용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계몽주의(啓蒙主義, enlightenment): 봉건적 구습(舊習), 종교적 전통에 의존하는 무지(無知), 미신(迷信), 도그마 등에서 벗어나, 이성(理性)과 사실의 논리를 믿고 자유 사상, 과학적 지식, 비판 정신 등을 고취하려는 정신 운동이다. 그 바탕은 인간의 존엄을 자각하게 하려는 합리주의이다. 일반적으로 18세기를 <이성의 시대>, <계몽의 시대>라고 하거니와, 특히 18세기의 프랑스 및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반종교적(현세적), 반형이상학적(과학적) 사상을 자연의 인식뿐만 아니라 사회 인식에까지 넓혀, 넓은 의미의 계몽, 즉 교육의 보급으로 사회적 부자유와 불평을 제거하려는 합리주의 사상 운동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상은 일찍이 영국에서부터 싹이 텄는데, 그 대표자는 로크이다. 프랑스에서는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절대주의가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로크의 사상이 볼테르와 몽테스키외에 의하여 도입되자, 계몽사조라는 형태를 이루어 급진적 경향을 띠게 되고 디드로, 튀르고 등에 의해 더욱 철저화되었다. 독일은 통일된 근세 국가를 이루지 못한 상태여서 이 사상이 프랑스만큼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구어체(口語體, the colloquial style): 현대의 음성 언어를 바탕으로 그와 가까운 어투의 문장으로 쓰려는 문자 언어의 한 문체로 문어체에 대립된다. 즉, 일상 회화에서 접할 수 있는 말투를 글로 옮긴 경우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으며, 소설이나 신문 기사의 문장에 이런 문체가 많다. 물론, 희곡에서는 지문(地文)을 제외하면 대부분 구어체로 구성되어 있다. 연설에서도 보통 경어라든지 완곡한 표현법을 쓰는 구어체가 나타난다. 해라, 하게, 하오, 합쇼 등의 공손법 어투는 모두 구어체로 사용되는데, 그 가운데 <해라체>만은 특별히 문어체의 종결 어미로도 통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문장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의도가 따르기 때문에 현대의 모든 문장이 구어체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기교주의(技巧主義, technicalism): 1930년대 순수 문학 또는 순문학이란 개념의 출현과 함께 문학에서 형식이나 기교를 중시한 기교파들의 특징을 일컫는 말이다. 박용철(朴龍喆), 김영랑(金永郞) 등이 창간한 시동인지인 <시문학>과 <9인회> 및 그 기관지 <시와 소설>, <해외 문학>, <시원(詩苑)>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들은 1920년대에 전개된 프로 문학 이론의 사회성․정치성․철학성에서 독립된 순수한 예술 영역의 문학을 수립하려 하였다. 즉 작가의 방법적 태도, 창작상의 기술적 가치의 재인식을 강조했다. 그들은 결국 언어 예술가로서의 시인의 직능, 다른 사회적 영역으로부터 구별되는 문학의 독자적 영역,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구별 등을 중시하여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로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기교주의는 음(音)이나 형(型)의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경향을 보이며, 시대 정신과 비평 정신을 무시한다. 현실적 발언의 거부와 민중으로부터의 도피는 그 후 후반기(後半期) 동인들의 반발을 겪기도 했으나 해방 직후 <청록파> 등에 연결되면서 1950년대, 60년대 한국시의 한 주류를 형성한다.

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엽까지 독일,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걸쳐 전개된 문학과 기타 예술상의 근대 문예사조와 그 운동을 뜻한다. 이성과 지성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neo-classicism)에 반대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사상(想像)과 정서를 강조하는 데 그 기본 특징이 있다. 이 낭만주의는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등으로 문명 개화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신이 고양되고 <질풍노도(疾風怒濤, Strum und Drang)>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낭만주의는 매우 다양한 위상(位相)과 국면(局面)으로 전개되어 일률적으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조는 대체로 개인주의, 자연숭배, 원시주의, 중세와 동방에 대한 관심, 철학적 이상주의, 자유사상과 종교적 신비주의, 정치적 권위와 사회 관습에 대한 반항, 육체적 정열의 고양, 정서와 감정의 순화(醇化), 병적 우울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백조(1922)>를 중심으로 얼마간 퇴폐와 우울을 주제로 하는 병적 낭만주의 경향이 전개되었으나, 혁신적인 운동이 되지는 못하였다.

로망스(romance): 이 말은 본래 로마의 직접적인 영향권 속에 있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사용되던 로마 말(즉 라틴어)의 방언을 뜻하였다. 언어학에서는 그들의 말을 로망스어라 부른다. 그들은 중요한 문서나 저술은 이미 죽은 말이 되어버린 라틴어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의 오락을 위한 시와 이야기는 구어체의 방언으로 기록하였다. 그렇게 기록된 이야기를 로망스, 로만즈, 로만조라 불렀는데, 이는 로망스 방언으로 쓴 하찮은 글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특히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쓰인 로망스는 환상적으로 이상화된 기사의 무용담과 연애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그 후 로망스 하면 환상적 무용담, 연애담을 뜻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로망>이라는 말이 유럽 대륙에서 <소설>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그에서 연유한다. 12세기에서 15세기까지 크게 번성한 로망스 문학의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었던 것은 옛날 영국의 전설적 왕이었던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 프랑크족의 왕이었던 샤를르마뉴 대왕과 그의 기사들 및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에 관한 전설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합리주의의 발흥으로 로망스 문학은 조소거리가 되었다. <돈키호테>는 로망스 문학에 대한 조소로 일관한다. 합리주의에 기초한 사실주의는 로망스의 주관적인 열망, 현실을 초월하는 이상화의 경향과 반대된다. 로만티시즘은 그 명칭이 암시하듯이 로망스 정신의 근대적 부활이었다. 18세기 중엽, 막연한 공포와 신비를 추구한 이른바 <고딕(Gothic) 문학>,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 셸리 부인의 「프랑켄슈타인」 같은 모험 소설, 「폭풍의 언덕」 같은 거의 초인간적인 사랑 이야기 등은 로망스 문학의 후예들이고, 이 가닥은 「데카메론」, 「돈키호테」 등의 사실적 이야기의 전통과 대치되어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반사실적인 기괴한 문학 즉 카프카나 일부 실존주의 문학에도 로망스의 요소가 들어 있다.

모더니즘(modernism): 현대주의 또는 근대주의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기성 도덕과 전통적 권위를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 도시의 시민 생활과 기계문명을 구가(謳歌)하는 사상적, 예술적 사조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 문학이 퇴조하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노골적으로 대두하는 1930년대에 영미 주지주의(主知主義)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문학 사조를 가리킨다. 이 경우의 모더니즘은 주지주의와 동의어이다. 반낭만주의적(反浪漫主義的) 태도, 지성(知性)과 시각 이미지의 중시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한국 문단에 주지주의 이론을 도입한 이는 김기림, 이양하, 최재서 등이며, 주지주의의 영향을 받고 시를 쓴 시인은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장서언 등이다.

묘사(描寫, description): 근본적으로 말에 의한 사물의 전달은 모두 묘사에 의한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기차가 막 달린다>라는 말도 어떤 물체의 특수한 행위를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의 묘사는 기술적이고 의도적인 것이다. 근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묘사는 배경 묘사일 것이다. 예전에는 주인공의 행위가 벌어지는 장소로서의 배경을 막연히 제시했을 뿐인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배경을 인물의 행위와 직결시킴으로써 배경 묘사는 결국 인간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 대조 또는 비판이 된다고 본다. 다음으로 중요한 묘사는 인물 묘사이다. 인물의 외모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근대 사실주의 문학에서 비롯되어 그 방법도 무척이나 세련되었다. 심리학의 영향으로 심리 묘사가 세련된 모습을 갖게 된 것도 현대 문학의 특징이다.

문체(文體, style): 문체란 원래 라틴어 stilus에서 유래한 말로서 글씨를 쓰는 도구를 뜻하는 말이었다. 문체라는 말뜻은 수사학과 결부되면서 문장 형태의 유형과 혼동된 일이 많았다. 즉, 문장체로서 흔히 구분하고 있는 몇 개의 유형들 즉 우유체․강건체․간결체․화려체 등등의 이름으로 문장 유형을 구분하는 데 문체라는 이름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문체란 문법학이나 수사학처럼 어떤 유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문체란 개인의 사고하는 방법, 감정이나 감각의 차이 같은 특유한 것, 그러한 개별적인 특수성을 문자로 표현해 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국문을 사용하느냐 한문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문체를 국문체와 한문체로 구별하는 경우가 있다. 국문과 한문을 섞어 쓴 문체는 국한문혼용체라 부른다. 또한 현대의 음성 언어를 바탕으로 그와 가까운 어투의 문장으로 쓰려는 문자 언어의 문체를 구어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문어체라 한다.

문학의 교시적 기능(敎示的 機能): 문학 작품은 독자를 가르치는 기능을 갖는다는 말이다. 물론 교시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직접적인 진술로 무엇을 가르치는 일은 드물다. 문학 작품에서 가르친다는 뜻은 강제적이며 규범적인 것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의 작품으로 계몽주의적 작품을 들 수 있는데, 이 광수의 「무정」, 입센의 「인형의 집」 등이 대표적이다.

문학의 쾌락적 기능(快樂的 機能): 독자를 가르치는 교시적 기능과 함께 또 다른 문학의 기능은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즉 문학에는 재미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 「무정」의 경우 분명히 이 작품에서 우리는 사회 개혁의 의욕이나 민족주의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재미를 맛보고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재미와 즐거움이 없다면 차라리 「무정」보다 춘원의 「민족 개조론」 같은 논설을 택할지 모른다.

문학의 현대성(現代性, modernity): 이 말은 시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용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전대의 문학에 비해서 다르면서 현대적인 삶과 관련된 문학으로서 지니고 있는 어떤 특성인 것이다. 이런 문학의 현대성이라는 것이 우리 문학의 경우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은 그다지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역사적인 감각으로 보아 전대의 문학적 특성과는 다른 새로운 현대적인 관심과 성격을 지칭할 수 있는 것으로, 개화 사상의 수용, 낭만주의적인 감정의 해방, 사실적인 인식 태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인생관과 사회관의 반영을 비롯해서 심리적인 내면의 추구, 지성적인 경향 등을 그 윤곽으로 들 수 있다. 따라서, 현대 문학의 기점이란 바로 이러한 현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이다.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 문예사조상의 사실주의는 넓은 의미에서는 공상적이고도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와 대립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경향 또는 양식이다. 사실주의 작가는 낭만주의의 방종한 상상력을 통제하고 동시에 사람의 생활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를 정밀히 관찰하여, 현실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과 그 본질을 파악하고 묘사한다. 대표적 작가로는 플로베르, 공꾸르 형제, 뒤랑뛰 등이다.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 생산 수단이 일부 계층의 사유(私有)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유인 사회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설을 말한다. 이 학설에 따르면 원시 공산주의 사회 이래 생산 수단이 사유화되면서 인류는 계급사회에서 살아왔고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사회로서의 마지막 단계이며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에 의해 타도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주의 사상은 19세기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이론의 기초가 마련되었으며 1917년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함에 따라 전 세계에 혁명이론으로서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사회주의 사상이 도입되어 사회 운동에서 뿐 아니라 문학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문학은 계급 운동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며,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고, 국내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혁명 운동에 참가시키도록 선동해야 한다는 소위 계급 문학 혹은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1920년~30년대의 우리 문단을 주도하였다.

상징(象徵, symbol): 그 자체로서 다른 것을 내포하고 있는 사물 일체를 우선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라비아 숫자는 어떤 수량을, 한글 24자는 각각 어떤 소리를 대표한다. 낱말들은 뜻을 대표한다. 화학의 분자식이나, 기호학의 도표나 도형 등도 모두 어떤 관념, 생각, 형상 등을 대표한다. 이러한 종류의 상징은 <기호>라고도 한다. 국기, 상표, 학교나 단체의 로고, 십자가 같은 종교의 표식 등은 일반적 기호와 구별해 제도적 상징이라고 부른다. 어떤 제도적 집단에 소속한 사람에게 제도적 상징은 큰 의의가 있으나(국기는 그 나라의 국민에게 있어서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상징이다.) 그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의 무의미하다. 문인은 언어와 문자를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만큼 기호적 상징을 주로 사용하여 특히 문학적이랄 수 있는 상징을 찾는 일에 정성을 기울인다. 문학적 상징은 심상의 일종이다. 그러나 일반적 심상이 구체적, 감각적 사물을 환기시키는 낱말이라면 상징은 그런 사물이 암시하는 또 다른 의미의 영역을 나타낸다. <장미꽃>이라는 낱말이 하나의 구체적, 감각적 인상을 되살리는 데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심상이고, 이 장미꽃이라는 심상이 정열, 또는 쉽게 사라지는 사랑의 아름다움 등의 뜻을 가리키든가 암시하면 상징이 된다. 상징은 다른 뜻을 함축하고 있는 심상이라는 점에서 은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일반적인 은유는 두 사실 사이의 유사성, 상호 암시성을 근거로 한 1:1의 유추적 관계에 의존하므로 그러한 유추적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상징과는 다르다. 더욱이 일반적 심상이나 은유가 작품의 한 부분에서 맡은 일을 하는 데 비하여, 상징은 작품 전체(또는 한 작가, 시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의미 또는 암시성의 배경을 형성한다. 따라서, 어떤 심상이 상징인가 아닌가를 가려내는 일은 작품 전체의 의미 또는 암시성이 그 심상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는가의 여부를 가려내는 일이 된다. 해석상의 차이로 한 심상을 상징으로, 또는 한 상징을 심상으로 규정짓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상징주의(象徵主義, symbolism): 상징주의라는 용어는 과학, 철학, 신학 등에서도 쓰이나 예술 분야에 한정해서 보면, 특정 시대와는 관계없이 일반적, 범시대적(汎時代的) 개념과 특정 시대 사조(時代思潮)에 따른 개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범시대적 개념으로서의 상징주의는 예술상의 표현 방법으로 상징을 사용하여 사물, 정서, 사상 등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태도이다. 대상이 초감각적, 형이상학적 실재(實在)이거나, 추상적, 내면적인 것이어서 보통의 수단으로는 표현할 수 없으므로 상징을 사용한다. 시대 사조로서의 개념은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상징파의 예술 운동을 뜻한다. 사실주의, 자연주의, 고답파 등의 외면적․객관적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으로 상징적 방법에 의하여 형이상적 또는 신비적 내용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보들레르를 선구자로 하고 베를렌, 말라르메 등을 지도자로 한 프랑스 상징파의 예술 운동의 노선은 예술지상주의(art for arts sake)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억, 백대진 등이 <태서문예신보>를 통하여 처음으로 이 이론을 소개하면서 프랑스 상징파의 작품도 번역하였다. 이어 <창조> 제 2호를 통해서 일본의 상징파 시인들의 작품이 번역, 소개되었다. <폐허>, <백조>에 이르러 상징적 경향의 작품이 창작, 발표되었다.

서사시(敍事詩, epic): 서사시를 뜻하는 epic(英)은 라틴어의 epicos에서 온 말로 <말>, <이야기>, <노래>를 뜻하였다. 그러므로 서사시란 어떠한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한 또는 음송(吟誦)한 시를 말하는데, 보통 <운문(韻文)으로 된 장편 서사 문예의 일종으로, 신이나 영웅의 행위를 중심으로 민족 집단의 운명적 사건을 장중 웅대(莊重雄大)하게 읊은 객관적 장시(長詩)>를 말한다. 본래 서사시는 어떤 개인적인 작자의 창작으로 생긴 것보다는 민간(民間)에 유전(流轉)하던 신화(神話)나 전설(傳說), 민요(民謠)가 모여서 된 것이다. 우리가 다 아는 서사시는 그리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 등인데, 이 서사시들은 보통 호메로스라는 사람이 쓴 것이라 하지만 사실은 작자가 분명하지 않다. 호메로스가 그 서사시의 작자라 하더라도, 여기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을 호메로스가 창작해 낸 것이라기보다는 그 때 민간에 떠돌아다니고 있는 신화나 전설 같은 재료들을 모아서 편집(編輯)해 놓은 것이라고 하겠다. 서사시는 고대(古代)에 성했던 문학 양식이며, 그 뒤에 오는 시인들에 의하여 그 내용이나 형식이 차차 세련되어 갔다. 소설(小說)이 나타나기 전에는 서사시의 문학적 위치(位置)는 매우 중요시되었으며, 중세기까지만 해도 시라면 당연히 서사시를 가리킬 만큼 그것은 시의 대표적인 양식이었다.

서정시(抒情詩, lyric): 외적 사건보다는 시인 자신의 정서와 사상을 노래한 시이다. <리릭(lyric)>이란 술어는 고대 그리스의 7현금(七絃琴)인 <리라(lyra)에 맞추어 노래부른다>는 데서 나왔다. 서정시는 주관적이고 내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이고 외적 표현인 서사시(敍事詩: epic)와 구별된다. 서정시의 특징은 먼저 이것이 본질적으로 음악과 의미의 융합이며 짧은 것이라는 점에 있다. 또한 이것은 주관적인 개인 의식의 반영인 동시에 구체적인 현실성의 구현이다. 서정시의 종류로는 오우드(ode), 소네트(sonnet), 발라드(ballad) 및 죽음에 대한 비탄의 감정을 표현하는 추도시(追悼詩)인 엘리지(elegy)가 있다. 한국 현대시는 대부분이 서정시에 속하며, 고전 시조 및 일본 시가의 하이쿠(俳句), 와카(和歌) 등은 전통적인 형식의 서정시이다.

소설의 사실성(事實性, reality): 소설은 리얼리티를 지닌 인생의 표현이어야 한다. 소설은 구체적으로 인간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문학이고 작가의 주관에 의하여 꾸며진 픽션이지만, 그것은 곧 리얼리티가 있어야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되고 진실해진다. 거짓말인 소설을 참말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곧 리얼리티이고, 작품 속에 등장된 인물들이 살아서 숨을 쉬고 앞뒤가 잘 맞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리얼리티이다. 그런데, 소설의 리얼리티는 결코 현실 사회에서 보는 사실 자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필연성과 개연성, 다시 말하면 작품 안의 진실성이 곧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작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똑같을 필요가 없다. 본격 소설․예술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리얼리티가 갖추어져 작품에 통일의 효과를 주어야 한다.

소설의 역사성(歷史性, historicity): 단편소설이 인생의 단면을 표현하는 고도로 의장적인 양식이라면 장편 소설은 인간의 개인적인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소설의 역사성을 획득한다. 근대의 복잡한 사회 구조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데 장편 소설의 역사성이야말로 필요 불가결하다. 여기서 복잡한 사회 구조의 반영과 개인적 역사의 서술은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니다. 근대 사회는 그 핵심이 어디까지나 개인이며, 개인주의를 그 시대 원리로 하는 사회이므로 근대 소설에 있어서도 개인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고대 서사시의 경우에는 한 집단과 동격에 놓이는 영웅의 일대기(역사)가 서술되지만, 근대 사회에 있어서의 집단과 동격이 될 만한 개인은 있을 수 없으므로 근대 소설은 한 집단 내에서 가장 문제성이 있는 인물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그 인물이 속한 집단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반영한다. 헤겔이 장편 소설을 가리켜 <부르주아의 서사시>라 부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소설의 주제(主題, theme): P. 라보크는 <소설에서 최초로 존재하는 것은 주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주제를 발견하는 능력이란 그 작가의 기초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제가 제출되기 전까지는, 작가는 어느 것에도 손을 댈 수가 없다. 주제는 소설의 시초요, 전체이다. 주제에 의지하지 않고는 소설은 그 형태를 이룰 수 없다.>라고 하면서 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 마디로 주제야말로 창작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뜻이다. 주제란 작가가 나타내려는 중심 사상으로 작품 전체에 통일적인 맥락을 부여하는 것이다. 안수길(安壽吉)은 <주제의 선명한 파악은 소설 제작의 출발점이며, 종착역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주제는 작품 속에 표현하려는 그 무엇이므로, 그것은 작품의 내용이 되는 것이요, 내용인 까닭에 작가의 사상인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소설의 허구성(虛構性): <fiction>은 라틴어 <fingo>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의미는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상력의 작용을 통하여 만들어진 작품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fiction>이 쓰인 것이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허구성을 지닌다. 소설은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가 현실의 그것과 그대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현실을 취재하되, 개인적 안목과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소설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꾸며 낸 이야기라고 함은 소설이 지니는 이러한 허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꾸며 낸 이야기라는 말은 여러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꾸며낸 이야기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제시 또는 전개되어서는 안 되고, 독자로 하여금 그럴싸하다는 느낌을 자아내야 하는데, 이렇듯 그럴싸하다는 느낌을 자아내는 요소나 성질을 리얼리티라고 한다면, 소설의 생명은 리얼리티의 구현에 있다고 하겠다. 둘째, 그럴싸하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사진과 같이 인생을 재현시킨다는 뜻이 아니고, 소재를 적절히 선택, 배열하여 재구성한다는 뜻이다.

순수시(純粹詩, pure poetry): 1850년에 미국 시인 에드거 앨런 포가 발표한 평론 「시의 원리」에 자극받아 프랑스의 보들레르가 발전시킨 시의 이론이다. 그로부터 말라르메를 거쳐 발레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상징주의의 기본 이념이 되었다. 순수시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시에서 웅변, 교훈, 관념 등 산문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체의 요소를 제거하고, 음악처럼 언어적 의미와 관계없는 효과를 내어야만 진정한 시, 즉 순수한 시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의 의미 요소를 최소 한도로 축소시키고 교란시킴으로써 시의 자율성을 기하려 했다고 보인다. 순수한 시가 암시하는 세계는 말의 의미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음악의 여운처럼 직접적이면서도 형언할 수 없는 세계이다. 20세기의 순수시 이론가였던 브레몽은 시의 음악성보다는 신비경에 파묻힌 자의 기도처럼 최면적이고 주문 같은 효과를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순수시는 산문적인 사고를 유발할 개념이나 낱말을 제외하고 청각적 자극(음악성) 또는 시각적 자극(회화성, 즉 심상)에 주력하는 시라고도 하겠다. 자연히 듣기 좋은 소리, 보기 아름다운 심상만을 골라 쓰므로, 인위적이라는 인상을 짙게 풍기며, 지속적인 긴 작품이 될 수도 없다. 상징주의자들의 좋은 작품들은 실상 그들의 이론에 부합하는 무의미한 음악 같은 순수시라기보다는 오히려 복잡다단한 토론을 불러일으키는 불순한 작품들이다.

시의 리듬: 시가 다른 장르의 문학과 구분되는 가장 특징적인 점은 우선 그것이 운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의 운율은 외형적(外形的)인 것과 내재적(內在的)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외형적인 것, 즉 외형적 운율(external rhythm)을 일으키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같은 말이나 구, 절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운각(韻脚: foot), 음보(音譜: metre), 압운(押韻: rhyme) 등을 따져서 외형률(外形律)을 확보하는 길이 있다. 우리 시조(時調)는 원칙적으로 초장 3,4,3,4, 중장 3,4,3,4, 종장 3,5,4,3과 같은 자수율(字數律)에 의거한다. 이것은 일정한 음보를 사용해서 운율을 확보하고자 한 경우이다. 운각이란, 소리의 강약이라든지 고저․장단을 이용하여 그것을 일정하게 배열함으로써 운율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 시가에서 이런 기법(技法)에 의한 외형률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압운도 우리 시가에서는 실험적으로 쓰인 데 그친다. 음절률(음수율, 자수율)─ 음절의 수를 한 단위로 하여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4,4조 혹은 7,5조 등과 같이 자수율을 말한다. 음절 수의 단위는 언어의 특징과 시의 호흡군에 의하여 결정된다. 음성률─ 음성의 강약, 장단, 고저 등의 속성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경우이다. 영시(英詩)를 비롯한 서구시에서 미터(metre)란 특히 이것을 의미한다. 음성률은 보통 음보에 기준을 두는데, 한 음보는 한 개의 악센트가 주어지는 실러블(syllable)과 그렇지 않은 두 실러블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이다. 영시에서 음보는 약강격, 강약격, 약약강격 및 강약약격의 네 종류로 구분되며, 각 시행(詩行)은 1음보, 2음보, 3음보, 4음보, 5음보, 6음보, 7음보 등 여러 음보로 이루어진다. 또한 이 시행을 중심으로 한 시형으로는 트리올레트, 론도, 마드리갈, 소네트, 오우드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언어에서도 음성의 특징은 있으나, 시에서 그것이 음성률로는 부각되지 못하므로 우리 시에서 음성률은 없다고 본다. 음위율─ 압운을 말한다. 두운(頭韻), 요운(腰韻), 각운(脚韻) 등이 있다. 서구의 경우 라임(rhyme)은 남성운, 여성운 및 각운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한시에서도 압운법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 시에는 실험적인 것이 보일 뿐이다.

시의 어조(語調, tone): 어조란 말하는 사람이 상대편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가 나타난 것으로, 말의 몸짓이다. 이 역시 시의 요소이기 이전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한 요소이다.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고 할지라도, 어조가 다름에 따라 듣는 사람의 느낌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일상 생활에서도 어조가 중요함을 알게 한다. 시는 말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지는 예술인 만큼 이러한 특질을 더욱 섬세하게 활용한다.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 어조에 대하여 특별히 주의하지 않아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담겨진 말투(어조)에서 어떤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에는 각각 그 나름의 어조가 있다. 다만, 그 시가 담고 있는 내용이나 사상, 감정과 얼마나 걸맞는 어조로서 씌어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실증주의(實證主義, positivism): 신과 같은 초경험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경험적․현실적으로 주어진 것만을 지식의 대상으로 하는 근대 철학의 사조이다. 자연주의 문학과 테느의 과학적 비평 등의 기초 이론이 되었다. 이 사조는 자연 과학의 방법과 성과를 토대로 물리적, 정신적 현상 세계의 통일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경험 과학의 방법을 중시하고 사변적 형이상학을 물리치는 것으로 넓게 해석한다면, 그 원류는 로크, 흄 등의 경험론이나 프랑스의 계몽 사상에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콩트의 「실증철학강의」에서 말한 지식의 3단계론을 소개하면, 제 1의 신학적 단계, 제 2의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제 3의 실증적 단계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3단계는 현상을 그 자체로 설명하여 현상 상호간의 법칙을 파악한다.

유머(humour)와 위트(wit): 유머는 성격적, 기질적인 것이고, 반면 위트는 지적인 것이다. 따라서 유머는 태도, 동작, 표정, 말씨 등에 광범위하게 나타나지만, 위트는 언어적 표현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머는 상대방에 대하여 선의를 가지고 그 실수․약점․부족을 같이 즐겁게 시인하는 공감적인 태도이며, 위트는 서로 다른 사물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유사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경구나 격언 같은 압축된 말로 능숙히 표현하는 지적 능력이다. 한편, 유머는 유희 본능과 관계 있어 청중이나 독자의 습관적인 기대를 유희적으로 깨뜨릴 때 성립하며,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흥미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위트 역시 그러한 일을 어느 정도는 하지만 즉각적인 웃음보다는 재빠른 판단력․기발함에 대한 경이감을 자아낸다.

이미지(image): 문학에서 말하는 이미지는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정신 속에 재생시키도록 자극하는 말을 뜻한다. 따라서, 감각적 체험과 관계되는 일체의 낱말은 모두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추상 명사보다 보통 명사, 감각적 지각을 암시하는 형용사, 또는 부사로 수식된 명사와 동사는 이미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학에서 이미지(心像)란 용어는 무척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쓰는데,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논의하는 것이 보통이다. ㉠글을 읽고(또는 말을 듣고) 독자(청자)의 마음에 생긴 감각적 재생, ㉡그런 이미지가 생기도록 자극하는 비유적인 또는 묘사적인 말, ㉢그런 말들이 한 작품 또는 한 작가의 전체 작품, 또는 문학 전통이나 경향에서 특수한 배합 양식을 갖거나 어떤 세계관 또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 위의 구분에서 ㉠이 통용되는 <이미지>의 개념이다. ㉢은 이미지라기보다 <심상의 조직 양식>이란 뜻의 <이미저리(imagery)>라고 보는 것이 옳다. 즉, ㉠은 독자의 심리와 관계되는 것 곧 심상의 효과이고, ㉡과 ㉢은 심상의 원인이 되는 특수한 언어이다.

이상주의(理想主義, idealism): 철학에서의 이상주의란 세계관, 인생관이 현실보다 이상(理想), 이념(理念)에 중심을 두는 사상을 말한다. 즉, 현실주의와 실재론(實在論)의 반대 개념이다. 한편, 예술에서의 이상주의는 이상에 따라 현실을 순화하고 고양하려고 하는 경향 또는 태도를 가리킨다. 물론 모든 예술은 많건 적건 이상적 경향을 가지나, 현실주의(現實主義, realism)와 대립적인 이상주의는 특히 이상화(理想化)를 의식적으로 강조한다. 이상주의도 여러 양상으로 구별되는데, ①대상, 내용면에서 일체의 개별적, 우연적 요소를 제거하고 대상의 유형적 본질을 표현하는 경우와, 인간적 의의와 가치가 풍부한 것을 선택해서 표현하는 경우 ②표현 방법, 형식면에서는 순수한 미적 특성을 위하여 대상을 변형하는 경우와 주체의 개성적 양식 원리 또는 내면 형식에 의거하여 소재의 형성에 강력한 창조적 자유를 발휘하는 경우 등으로 대별된다. 낭만주의, 상징주의, 신비주의 등은 이상주의에 속한다.

이야기(story): 소설이나 서사시, 희곡이 지니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소설을 가리켜 편의상 <적당한 길이의 산문으로 꾸민 이야기>라고 정리하기도 한다. 이 때 이야기는 영어의 <스토리>에 해당하며, 때로는 꾸민 이야기라는 점에서 픽션(fiction)에 해당하기도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하여 제 3자에게 보고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가 된다. 듣는 사람이 현실적 이해 관계 없이 그 보고에 흥미를 느끼면 그 이야기는 재미있는 것이 된다. 그러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발전시키거나 왜곡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꾸민 이야기가 허구(虛構)이다. 이렇게 꾸며진 이야기는 운문으로 들려지다가, 근대에 와서 산문으로 씌어져 읽혀지기도 하고 때로는 연희(演戱)로 제시될 수도 있다. 운문으로 들려진 것은 서사시요, 산문으로 읽혀지는 것이 소설이며, 연희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연극이다.

인물(人物, character): 성격이라 칭할 때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물은 외부에서의 관찰 대상이고, 성격은 인물의 내적 속성이다. 인물은 주로 소설이나 희곡 같은 이야기 문학의 요소로 생각되지만, 모든 문학 작품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서정시나 수필에서도 작가가 창조한 주인공의 성격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성격이 구현되는 것은 소설이나 희곡 등 이야기 문학에서이다. 성격을 구현한다는 것은 곧 인물의 창조를 뜻한다. 특히 소설에서는 인물의 창조라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배경이나 사건은 인물을 있게 하는 바탕이 된다.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 문예상의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뒤를 이어 소설과 연극에서 일대세력을 차지했다. 사실주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려고 하지만, 자연주의는 그 관찰에다 실험을 덧붙이려고 한다. 인간의 윤리를 무시하고 인간의 추악한 면과 야수성을 기탄없이 폭로하여 인간 멸시 사상과 염세 사상을 조장하였다. 자연주의 작가들은 다아윈(C. Darwin)의 생물학 이론과 테에느(H.A.Taine)의 사회 환경 결정론(social determinism)의 영향을 받았다. 이 운동은 인간 사회와 그에 속한 인간들을 마치 자연 과학의 주제를 구명하듯이 객관적이고 진실하게 묘사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았다. 철학에서는 물질을 유일한 실존으로 보는 실재론(實在論, realism)을 말하며, 반자연주의적인 관념론에 대립된다. 일반적으로 문예사조상 자연주의는 넓은 뜻의 리얼리즘의 한 분파로서 생리학․생물학이 인간의 모든 조건을 결정짓는다고 하는 졸라(E.Zola)의 소설들로부터 비롯되는 사조를 의미한다. 그런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차이점은 우선 사실주의가 현실의 총체적이고, 충실한 재현(再現, reproduction)만을 의도하는 예술로서 기록적 소설(記錄的小說)로 만족하는 반면에, 자연주의는 과학적 방법에 의거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려는 의도로 실험적 소설(實驗的小說)을 창조하려는 데 있다. 또 사실주의 소설은 현실 생활뿐만 아니라 과거나 혹은 다른 지역의 생활 모습까지도 묘사할 수 있지만 자연주의 소설은 전적으로 현재의 사실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문장에서도 사실주의는 모든 사람의 이해를 위하여 가능한 한 단순하고 적확한 재현으로 구성의 정연함과 표현의 정확성에 부심(腐心)하는 데 비해 자연주의는 문장의 세련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개성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의식적으로 구성과 표현을 확대하고 있다.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surrealism): 2차대전 후에 처음 다다이즘에 동조했던 시인, 예술가들이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일으킨 문학 운동이다. 공식적인 발족은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 파리에서 「선언문」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비이성적, 비논리적 성질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던 오랜 역사를 가진 문학의 한 가닥이 낭만주의와 더불어 표면화되고 그 후예인 상징주의자들에 의하여 심화되고 다다이즘(Dadaism)에 이르러 잠시 철저한 허무주의로 전락하였다가 사람에 대한 새로운 긍정적인 비전(vision)을 주장하게 된 것이 초현실주의였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 등이 밝혀 낸 무의식의 세계가 새로운 문학의 재료와 방법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무의식은 합리성이나 논리에 의하여 전개되지 않고 비논리적이며 자동적이고 자유로운 연상작용으로 전개된다. 무의식은 욕구와 공포가 논리적 조직을 받기 이전의 상태에서 큰 힘을 가지고 꿈틀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적인 조작을 받지 않고 그대로 표출되기 위해서는 꿈꾸는 듯한 상태에 있어야 하며 그 순간에 의지를 발동시키지 않고 손이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자동기술(automatic writing)>의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초현실주의자는 정신 수련을 하거나, 특수한 환경을 조성하거나, 또는 환상을 일으키는 약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를 비판한다. 의식 세계의 사실은 인위적인 조직과 합리화의 과정을 통하여 꾸며낸 것이므로 그만큼 인간의 진정한 의식에서 멀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볼 때 표면적 사실은 거짓인 셈이다. 초현실이야말로 진실이며, 초현실을 파악하고 전달하는 것은 인간을 조작된 일상의 사실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현실, 아니 진실을 덮어버리는 일체의 도덕, 철학, 미학은 부정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사람은 우주와 진실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한 진실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인간 해방을 강조하는 혁신적 태도가 그 전 시대의 다다이즘과 크게 다른 점이며, 또한 1930년대의 다수 초현실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를 겸한 배경도 된다. 물론 공산주의와 자리를 오래 할 수는 없었다. 초현실주의는 일종의 인식론이기도 하다. 그 성질상 조직적 체계는 이루지 못하지만, 초현실주의자는 감각으로 파악한 세계가 진실된 세계임을 믿는다. 그들은 전 시대의 낭만주의자들처럼 감각적 인상을 시적 비유에 의하여 표현하려 하지 않고, 감각적 체험에 대하여 무의식이 보내는 반향을 그대로 쏟아놓으려고 한다. 이 때 무의식은 일련의 낱말을 흘려 보내는데, 그 낱말들은 모두 심상의 꼴을 하고 있다. 그 심상들은 각자 그 나름대로의 생명을 갖고 있어서, 심상과 심상의 연결은 논리적 서술에서처럼 주종 관계에 있지 않고 서로 대등적이다. 초현실주의 문장은 동등한 힘을 가진 심상들의 계속적 병치 및 공존이다. 세상의 진실은 모든 사물이 독자적인 생명을 가지고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초현실주의의 주제는 사랑, 특히 본능적인 성욕, 온갖 본능적 욕망의 예찬, 현실의 도덕적 의미와 관계없는 자유 분방, 현실에 대한 반항, 요즈음 문제가 되는 이른바 <검은 해학(black humor: 터무니없으나 강력한 아이러니)> 등이다. 초현실주의는 미학과 도덕이 발전하기 이전의 원시 미술에 매혹을 느끼며, 도착 심리에도 흥미를 느끼며, 장르의 구별은 물론 반대하며, 문학과 기타 예술의 구별도 되도록 없게 하려고 한다.

카타르시스(katharsis 또는 catharsis): 이는 비극의 효과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 설의 중심 관념을 이룬 것이다. 비극을 보거나 자기 고뇌를 하소연함으로써 억압된 애상과 공포를 해소하여 일종의 정화된 쾌감을 얻는 것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 제 6장의 <비극은 엄숙할 뿐만 아니라 어떤 크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이 완결된 한 행위의 모방이다. 그것은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을 포함하며 그럼으로써 그와 같은 정서의 카타르시스를 달성한다.> 라는 말의 해석에 관해서 르네상스 이후 많은 이견(異見)이 있었다.

유미주의(唯美主義, aestheticism): 탐미주의(眈美主義), 심미주의(審美主義),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라고도 한다. 이 주의는 예술이란 그 자체로서 자족(自足)한 것이며, 어떠한 이면적 목적이 그 속에 내포되어서는 안 되고, 윤리적이라든지 정치적 또는 다른 비심미적(非審美的) 기준에 의하여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유미주의 지지자들은 계몽주의에 의식적(意識的)으로 반기를 들어왔다. 그들은 이해 관계, 실용성, 의지의 속박은 인간의 현실 생활에 속한 것이므로 정신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비약을 저해하는 요소들로서 예술 자체의 순수함과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보들레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유미주의의 구호를 실제 인생에 적용시켜 예술을 위해서 현실 생활 전부를 바쳐야 한다는 예술 지상주의를 주장하였다. 플로베르, 말라르메 등도 그와 같이 예술의 절대적 존엄성을 신봉한 문인들이었다.

풍자 문학(諷刺文學): 풍자(Satire)란 대상을 왜소화시키는 방법을 통해 조롱․멸시․농락한다. 비판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나타나서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통쾌미는 없으나, 찌르고 질식시킬 만한 신랄미(辛辣味)와 심각미(深刻味)가 있다. 이와 같이 인물과 사회 현실의 모순, 불합리, 결점 등을 재치 있게 파헤친 작품을 풍자 문학이라고 하고, 그러한 시를 풍자시라 한다. 대상에 따라 첫째, 개인 공격의 저급한 풍자, 둘째,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정치적 풍자, 셋째, 인류의 전체를 조소하는 고급 풍자, 넷째, 자기가 자기를 해부하고 비판하고 욕하는 자아 풍자가 있다.

한국 현대시의 기점(起點) 문제: 현대시란 현대적 특성을 나타낸 시를 말하는데, 현대적 특성, 즉 현대성(現代性: modernity)이 무엇이냐에 따라 현대시의 기점을 각각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현대성을 19세기 부르주아 근대문학에 반대하고 일어난 20세기의 계급주의 문학에서 찾는다면, 1923년부터 일어난 신경향파와 프로 문학이 현대시의 기점이 된다. 개인적, 낭만적 의식을 극복한 주지성과,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 등을 현대성으로 본다면, 주지주의 문학과 시문학파 이후가 된다. 민족 주체성과 자아의 확립 등을 현대성으로 보면, 제 2차 대전이 끝나고 해방이 된 1945년이 현대시의 기점이 된다.

행동주의(行動主義, behaviourism):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학 운동이다. 1929년 전 세계에 걸친 경제 공항, 히틀러의 집권, 파리 폭동과 좌우 정치 세력의 충돌 등으로 조성된 혼란과 허무 속에서 자의식(自意識)으로의 침잠에 반발하여 작품을 통한 영웅적 행동을 중요시한다. 앙드레 말로와 생텍쥐페리가 그 대표자이다. 말로는 『왕도』, 『인간의 조건』등에서 행동을 실험하고, 생텍쥐페리는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등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묘사하여 독특한 휴머니즘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였다.

허무주의(虛無主義, nihilism): 인간 생존의 무의미성, 허무성을 주장하는 사상이다. 실재(實在) 및 진리를 부정하고, 진리 인식의 가능성조차도 부정한다. 윤리적으로 보편적 도덕 가치를 부정하며, 종교적으로는 신(神)을 상실한 인간 존재의 허무성을 주장하며, 정치적으로는 사회, 국가의 질서를 부정하여 무정부주의(anarchism)로 발전한다.

현대소설의 특징: 20세기에 와서는 18, 19세기의 주요한 경향을 그대로 계승한 전통주의적인 소설도 많이 쓰여지고 있으나, 조이스(Joyce; 1882~1941), 프루스트(Proust; 1871~1922), 울프(Woolf; 1882~1941) 등에 의해서 이른바 <의식(意識)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경향이 하나의 주류가 되었다. 문학사의 일대 변혁을 이룬 이 경향은 인간의 심층(深層) 의식, 곧 잠재 의식을 추구하고, 외부 묘사나 연대기적(年代記的) 서술 방법을 파기하였다. 이에 따라, 1인칭의 주관적 표현이 많아지고, 또한 현재형(現在形)인 것이 많아졌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프랑스에서 나타난 신소설(新小說: nouveau roman)은 심리주의 소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작가가 정리하기 이전의 자연 발생적인 지각(知覺)이나 충동 또는 기억을 재현한다. 이밖에도, 서구에서는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이 여러 방향으로 시도되고 있다. 한국의 소설은 대체로 이광수의 『무정(無情)』(1917)에서부터 근대 소설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여 대개는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의 경향을 보이면서 전통적 소설 작법에 의존한 예가 많았다.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 이 말의 어원은 편집자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고를 편집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제 1철학(존재의 제일 원리 및 그 원인을 취급하는 부분)을 물리학 다음에 편집하면서 「ta metata physics(물리학 이후의 책)」이라 이름 붙인 데 있다. 그리하여 그 후 물리학상의 순리학(純理學), 혹은 우주의 본체․실체․실재에 대한 추상학(抽象學)을 metaphysics란 말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 말이 동양에서의 역경(易經) 계사편(繫辭篇)에 나오는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형이상학으로 번역된 것이다. 형이상학은 초감각적인 세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순수한 사고에 의해 인식하려는 학문이다. 이러한 생각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은 경험을 인식의 원천으로 삼는 경험론, 더 나아가 유물론이다. 그런데 칸트가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물 자체(物自體)의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한 이후, 불가지론(不可知論)이나 실증주의(實證主義)는, 객관적 실재(實在)를 인정하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을 일률적으로 형이상학이라 불렀다. 이런 입장에서는 유물론도 형이상학이라 규정된다. 그러나, 그 후 칸트가 해결하지 못한 존재 자체의 문제를 계기로 해서 피히테, 셀링, 헤겔의 형이상학이 새롭게 전개되었다. 이들의 철학은 주관과 객관의 대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그들 양자의 변증법적 발전을 주안(主眼)으로 하는 형이상학이었다. 이런 입장은 칸트 이전의 형이상학은 반(反)변증법적인 낡은 형이상학이라고 비판하였다.

휴머니즘 문학: 자아(自我)의 각성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본성에 눈뜨고 인간을 존중하며 인간의 자유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그 정신적 기반으로 삼는 문학이다. 본래 휴머니즘은 문예 부흥과 함께 발전한 사조인데, 문예부흥은 신만능(神萬能)의 중세 체제(中世體制)에서 인간의 자유,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는 일종의 반체제(反體制) 운동이었다. 인간 존엄성이 말살당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대에 들어오면서 휴머니즘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즉, 기계 문명의 여파, 인간들의 소외감(疎外感)으로 현대인들은 과연 미래에도 인간성의 옹호가 가능할 것인가의 회의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휴머니즘이 부각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휴머니스트 작가는 토마스 만, A. 지드 등이다. 한국 문단에서 휴머니즘 문학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출처 : 포엠큐
깨진 문자만 정리하여 원문 그대로 가져옴

Trackback Address :: http://dext.tistory.com/trackback/107 관련글 쓰기
  1. BlogIcon sexual retreats 2008/05/23 04:22 수정/삭제 댓글에댓글달기

    여보세요, 좋은 아주 위치!











편집성 성격장애

편집성 성격장애는 일반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계획된 요구나 위협으로 보고 지속적인 의심과 불신을 갖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음의 양상들을 갖습니다. 충분한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관찰하고 해를 끼치고 기만한다고 의심합니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충정이나 신뢰에 대한 근거없는 의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어떠한 정보가 자신에게 나쁘게 이용될 것이라는 잘못된 두려움 대문에 다른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기를 꺼립니다.보통 악의 없는 언급이 사건에 대해 품위를 손상하는 또는 위협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지속적으로 원한을 품습니다. 즉, 모욕이나 상처줌 혹은 경멸을 용서하지 못합니다.다른 사람에겐 분명하지 않은 말을 자신의 성격이나 평판에 대한 공격으로 지각하고 곧 화를 내고 반격합니다.정당한 이유없이 애인이나 배우자의 정절에 대해 반복적으로 의심합니다.


분열성 성격장애

분열성 성격장애는 일생동안 사회로부터 철퇴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형성 능력과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고 지나치게 내향적이며 온순하고 빈약한 정서가 특징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괴벽스럽고 외톨이처럼 보입니다. 가족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친밀한 관계를 바라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습니다. 항상 혼자서 하는 행위를 선택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성적 경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즐거움을 취하려 하지 않습니다. 일차 가족 이외의 친한 친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에 무관심합니다. 감정적 냉담, 유리 혹은 단조로운 정동의 표현을 보여줍니다.


분열형 성격장애

분열형 성격장애 환자의 행동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도 괴이하거나 이상하게 보입니다. 사회적 고립, 텔레파시 같은 마술적 사고, 관계망상, 피해의식, 착가, 이인증 등이 특징입니다. 관계망상이 있을 수 있으며, 행동에 영향을 주며 소문화권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이상한 믿음이나 마술적인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 신체적 착각을 포함한 이상한 지각경험을 하기도합니다. 이상한 생각이나 말을 하며, 의심하거나 편집증적 사고도 있습니다. 부적절하고 제한된 정동과 기이하거나 편향되거나 괴이한 행동이나 외모가 있으며 일차가족 이외에 친구나 심복이 없습니다. 친하다고 해서 불안이 감소하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보다도 편집증적인 공포와 관계되어 있는 과도한 사회적 불안이 있습니다.


히스테리성 성격장애

히스테리성 성격장애 환자들은 흥분을 잘하고 감정적인 사람들로서, 다양하고 극적이며 외향적이고 자기 주장적, 자기 과시적이며 허영심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끌기 위해 과장된 표현을 하지만 실제로는 의존적이며 무능하고 지속적으로 깊은 인간 관계를 갖지 못합니다. 자신이 관심의 중심에 있지 않는 상황에 있는 것을 불편해 합니다.다른 사람과의 관계행동이 자주 외모나 행동에서 부적절하게 성적, 유혹적 내지 자극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집니다. 감정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피상적으로 표현됩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외모를 사용합니다. 지나치게 인상적이고 세밀함이 경여된 형태의 언어를 사용하며, 자기극화, 연극성 그리고 과장된 감정의 표현을 보입니다. 피암시적이서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실제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로 생각합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에서는 자신의 재능, 성취도, 중요성 또는 특출성에 대한 과대적 느낌이 있습니다. 타인의 비판에 매우 예민하나 감정이입은 결핍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대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한한 성공, 권력, 명석함,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과 같은 공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는 특별하고 특이해서 다른 특별한 높은 지위의 사람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고 또는 관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과도한 숭배를 요구하며, 특별한 자격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대인관계에서 착취적이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합니다. 타인의 느낌이나 요구를 인식하거나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자주 부러워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기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만한, 건방진 행동이나 태도를 보입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

반사회적 성격장애란, 사회적응의 여러 면에 걸쳐서 지속적이고 만성적으로, 비이성적, 비도덕적, 충동적, 반사회적 또는 범죄적 행도, 죄의식 없는 행동 또는 남을 해치는 행등을 나타내는 이상성격입니다. 즉 사회의 정상적 규범에 맞추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체포의 이유가 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법적 행동에 관련된 사회적 규범에 맞추지 못합니다.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가짜 이름을 사용하며,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타인을 사기 치기도 합니다. 충동적이거나,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신체적 싸움이나 폭력 등이 반복됨으로써 나타나는 불안정성 및 공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에 대한 부주의와 무시가 있기도 합니다. 일정한 직업행동 또는 재정적 의무의 지속에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지속적인 무책임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학대하거나 다른 사람 것을 훔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양심의 가책의 결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경계성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는 정서, 행동 및 대인관계의 불안정과 주체성의 혼란으로 모든 면에서 변동이 심한 이상 성격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항상 위기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어떤 위기상태에 놓일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감을 나타내고 논쟁적이고 요구적이며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시키려 합니다. 평상시에도 기분은 변동이 심하며 만성적인 공허감과 권태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대인관계가 불안정하고 강렬하며, 의존과 증오심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불안정하고 강렬한, 자제가 곤란한 분노반응을 보입니다. 실제적 또는 상상된, 버림받을까 하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 미친 듯한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행동면에서는 매우 돌발적이고 통제력이 상실되어 있어서 예측할 수 없으며, 낭비, 성적 문란, 도박, 약물남용, 좀도둑질, 과식 등의 행동을 보입니다. 때로는 자해행위, 자살위협을 하기도 하는데 남들로부터 동정을 받기 위해서 라든지, 분노를 표시하기 위하여, 또는 자신의 불안정한 정서를 가라앉히기 위해서입니다.


회피성 성격장애

회피성 성격장애는 거절과 배척에 대한 극도의 예민성이 특징이며 이 때문에 환자는 사회적으로 위축됩니다. 그들은 내심 친밀함을 강하게 원하고 있으나 부끄러워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은둔적인 생활을 하지만 실제로는 남들과 안정된 친분관계를 갖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으로부터의 거절에 대하여 지나치게 민감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조건없이 화고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대인관계만을 갖고자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존심이 낮으며 거절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 때문에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은둔적인 생활을 해 버립니다. 직업적인 영역에서는 수동적인 분야에서 일합니다. 공포성 회피가 흔합니다.


의존성 성격장애

의존성 성격장애는 자신의 욕구를 타인의 욕구에 종속시키고 자신의 삶의 중요부분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지우며, 자신감이 결여되고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심하게 괴로움을 느끼는 성격장애입니다. 프로이드가 구강적 성격이라고 묘사한, 의존성, 비관적 사고, 성에 대한 공포, 자기의심, 수동성, 피암시성, 인내심 결여 등의 특징을 다 보이고 있습니다. 의존과 복종이 특징적입니다. 환자들은 자기 확신이 결여되어 있어 타인의 도움과 보살핌을 항상 필요로 하며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책임을 타인에게 맡깁니다. 염세적이고 수동적이며 성적 또는 공격적 느낌을 표현하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입장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할 때에는 불안해 합니다. 또한 사소한 일도 자신이 결정하기 못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따르기만 하고, 자기의 욕구를 억제합니다. 이는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과의 밀착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학대하는 남편에 대해 참고 견디는 부인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강박성 성격장애

강박성 성격장애는 감정적 억제, 규칙성, 고집, 완고함, 우유부단, 완벽주의, 융통성 없음 등이 특징입니다. 기본적인 특징은 정돈성, 인내심, 완고함, 우유부단 그리고 감정표현의 인색함 입니다. 대인관계에서는 따뜻함이나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에 합리적이고 형식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주게 된다. 이들은 서로 주고받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모든 일이 또는 자신의 사생활이 올바르게 일정한 틀에 맞게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지나치게 신경을 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냉담하며 지나치게 통제된 생활을 하므로 옹졸한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주로 수직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자신도 윗사람에게 철저히 복종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자기에게 복종하기를 원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완벽하지 못할 때는 경멸하고 분노를 느끼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혹시나 실수를 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모든 일에 우유부단한 자세를 취합니다. 사회생활에서는 이들의 정돈성과 완벽성 때문에 융통성이 요구되는 직업에서는 실패하나, 정확성이 요구되는 직업에서는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즉 감정 표현의 제한, 정돈성, 인색함, 경직성, 엄격한 초자아, 인내성, 옹고집, 우유부단 그리고 성적 자발성 결여입니다.





청량리정신병원 홈에서 발췌

Trackback Address :: http://dext.tistory.com/trackback/94 관련글 쓰기











몰리에르

본명 : Jean-Baptiste Poquelin.
1622. 1. 15 프랑스 파리에서 세례받음~1673. 2. 17 파리.
프랑스의 위대한 희극작가·배우



사용자 삽입 이미지

[ Moliere, 포클랭 ]

초기의 연극 활동

 몰리에르는 파리 중심부에서 태어났으며(또한 그곳에서 죽었음) 등기부 기록에 의하면 1622년 1월 15일에 장 바티스트 포클랭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는 그가 10세 때 죽었고, 아버지는 왕실지정 가구상으로, 그에게 콜레주 드 클레르몽(이 학교는 훗날 볼테르를 비롯해 숱한 프랑스의 재사들을 키워낸 리세 루이 르 그랑의 전신임)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실의 직책을 맡게 되기를 희망했으나 1643년 그 자리를 사임한 것으로 보아 그는 전통과 결별하고 무대 위에서 살아갈 방도를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해에 몰리에르는 다른 9명과 함께 일뤼스트르 테아트르(Illustre-Théâtre)라는 이름으로 극단을 조직하여 희극을 창작하고 공연했다. 몰리에르라는 그의 예명은 1644년 6월 28일자로 된 문서에서 처음 발견된다. 그는 이후 30년 동안 연극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고 51세의 나이로 기진하여 죽었다.

 재능있는 여배우 마들렌 베자르는 몰리에르를 설득해 극장을 세우게 했으나, 새로 생긴 극단을 유지시키지는 못했다. 1645년 몰리에르는 건물과 집기 때문에 빚을 져 2번이나 투옥되었다. 17세기의 파리는 연극 관람객의 수가 매우 적었고, 시에는 이미 2개의 극장이 있었으므로 새로운 극단이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했으리라고 보인다. 1645년말부터 13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극단은 지방순회공연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다. 이 기간에 대해서는 지방의 행정기록과 교회 기록들을 통해 극단이 여러 곳에서 공연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1648년에는 낭트에, 1649년에는 툴루즈에, 1652년말부터 1655년 여름까지 그리고 1657년에는 가끔씩 리옹에 있었고, 1654년과 1655년에는 몽펠리에에, 1656년에는 베지에에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극단은 분명 부침을 겪었을 것이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이 기간은 몰리에르의 경력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시기로, 이 시절에 그는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엄격한 훈련을 쌓는 동시에 작가들, 동료들, 관중 및 당국을 상대하는 법도 배웠을 것이다. 마침내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가 거둔 급속한 성공이나 반대에 부딪쳤을 때의 강인함은 이 시절의 훈련에서 비롯된 듯하다. 1655년 리옹에서 공연된 〈실수쟁이 L'Étourdi ou les contretemps〉와 1656년 베지에에서 공연된 〈사랑 싸움 Le Dépit amoureux〉은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최초의 작품들이다.

 몰리에르에게 명성의 길이 열린 것은 그의 극단이 1658년 10월 24일 루브르 궁의 위병소에 차려진 가설무대에서 루이 14세를 위해 공연했던 코르네유의 〈니코메드 Nicomède〉와, 뒤이어 시골 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었던 작은 여흥들 가운데 하나를 공연했을 때였다. 그 작품이 〈사랑에 빠진 의사 Le Docteur amoureux〉인데, 현재 남아 있는 것과 같은 형태였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은 성공적이었고 왕제(王弟) 오를레앙 공(公) 필리프의 호의를 얻게 해주었다. 공의 후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7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후에는 왕 자신이 극단을 인수하여 '왕실 극단'(Troupe du roi)으로 만들었다. 극단이 다소간의 명성과 권위, 권문세가들로부터의 초대, 배우들의 후원금(종종 지불되지 않기도 했음) 등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이상의 소득은 별로 없었다.

 1658년 파리에 돌아온 이후 몰리에르의 생애와 관련된 믿을 만한 사실들은 모두 작가·배우·감독으로서의 활동에 관한 것이다. 몇몇 프랑스 전기작가들이 그의 작품에서 개인사를 읽어내려 했으나, 그러한 시도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을 실제 있었던 일로 오도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 전설 같은 이야기와 풍자를 제외하면 정보란 거의 없다. 몽테뉴, 플루타르크, 율리우스 카이사르, 세네카 등의 저서가 그의 서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의 희곡을 읽을 때 그런 작가들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분명 위대한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몰리에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작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문학이라 불릴 만한 것, 출판하기 위한 것은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희곡 외에 쓴 것이라고는 몇 편의 시와 고대 작가 루크레티우스의 미완성 번역이 전부임). 그의 희곡들은 모두 공연용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는 초기작 서문에서 표절을 피하기 위해 출판이라도 해야겠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그의 작품 2편은 실제로 표절되었음). 그는 7편의 작품을 미간(未刊)으로 남겼고, 전집이라고는 낸 적이 없으며(적어도 알려진 바로는) 작품의 출판을 위해 교정쇄를 읽은 적조차도 없다. 그에게 희극이란 공연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었다. 19세기는 이러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의 극적인 천재성을 제대로 발견한 것은 루이 주베, 샤를 뒬랭, 장 루이 바로, 장 빌라르 등 20세기의 배우들이었다.

 그는 고전작가도, 자기 뜻대로 계획하고 글을 쓸 여가를 가진 작가도 아니었다. 경쟁·생존을 위한 투쟁이야말로 몰리에르의 전 생애에서 주조(主調)였으며, 자신의 배우와 관객을 유지한다는 것은 다른 극단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의미했다. 그는 이런 싸움을 거의 혼자 힘으로 해냈다. 그의 극단이 유지된 것은 그의 기술적 역량과 인품 덕택이었다.

 몰리에르가 파리에서 공연한 첫 희곡 〈재치를 뽐내는 여인들 Les Précieuses ridicules〉은 그의 이후 작품들을 예고해준다. 그것은 2명의 시골 아가씨가 주인 행세를 하는 2명의 하인에 의해 웃음거리가 된다는 이야기로, 한편으로는 아가씨들의 고상함에 대한 열망과 상식의 결여를, 다른 한편으로는 하인들의 평이한 언어와 아가씨들의 교양적 상투어를 대비시키고 있다. 아가씨들이 고도의 재치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언동들은 물질적인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뒤틀린 교양관을 반영한다. 이 잰 체하는 인물들이 제공하는 웃음거리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신선한 감동을 주며 당시의 관객들에게는 한층 더 그러했을 것이다. 아마도 〈재치를 뽐내는 여인들〉은 〈스가나렐 Sganarelle〉과 마찬가지로 루브르에 인접한 프티 부르봉(Petit Bourbon)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것이다. 프티 부르봉은(아무런 통지없이) 헐렸고, 극단은 1661년초 리슐리외가 팔레루아얄(Palais-Royal)에 세운 극장으로 이전했다. 몰리에르의 '파리'극들은 모두 이곳에서 공연되었다. 그 첫작품이 1661년 2월에 공연된 〈나바르의 돔 가르시 Dom Garcie de Navarre, ou le prince jaloux〉인데, 허점투성이인 이 영웅 희극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 단지의의가 있다면 몰리에르를 분발시켜 〈인간혐오자〉를 쓰게 했다는 점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실패는 드물었고 파리 극장에서의 유례없는 대성공들에 의해 가려졌다.


추문과 성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몰리에르 석고상


 1662년 12월 26일 초연된 〈아내들의 학교〉는, 마치 사람들이 그 무엇도 신성불가침으로 생각지 않는 희극의 천재가 나타났음을 알아차리기도 한듯 추문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훌륭한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몰리에르의 걸작이요, 가장 순수한 희극이라고 평했다. 폴 스카롱이 옮긴 스페인 이야기 〈무익한 경계 La Précaution inutile〉(1655)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현학자 아르놀프가 주인공인데, 그는 여성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세간의 풍습을 전혀 알지 못하는 소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이 소녀의 깨어나기 시작하는 감수성, 관습의 속박이 없기 때문에 한층 강한 감수성의 섬세한 묘사는 이 희극의 경이로운 점이다. 극은 현학자가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대목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소녀의 말을 더듬어 이해해야 하는 수고는 그가 받는 벌인 동시에 관중에게는 즐거움이었다. 1662년 이후로 그의 극단은 팔레루아얄의 극장을 이탈리아 배우들과 함께 사용했으며, 각 극단이 매주 3번씩 공연했다. 한편 몰리에르는 개인적으로 주문을 받은 희곡들도 썼는데, 이 작품들은 다른 곳에서 초연되었다. 1661년 8월 보에서 공연된 〈불쾌한 사람들 Les Fcheux〉, 1664년 베르사유에서 공연된 첫번째 〈타르튀프〉, 1670년 샹보르에서 공연된 〈부르주아 장티욤 Bourgeois Gentilhomme〉, 1671년 튈르리 궁에서 공연된 〈프시케 Psyché〉 등이 그것이다.

1662년 2월 몰리에르는 아르망드 베자르와 결혼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대로 그녀가 마들렌의 누이였는지, 아니면 몇몇 동시대인들이 시사하듯 그녀의 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 결혼에서 세 자녀가 태어났는데, 딸 하나만이 살아 남았다. 믿을 만한 정보는 못 되나 몰리에르에 대해 적대적인 팜플렛에 아르망드의 연애사건이 실리기도 하는 등 그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몰리에르는 무대를 통해 비평가들에게 답변함으로써 〈아내들의 학교〉가 일으킨 반대를 오히려 극단의 신용을 얻는 방향으로 돌렸다. 1663년 6월에 공연된 〈아내들의 학교에 대한 비판 La Critique de L'Ecole des femmes〉과 10월에 공연된 〈베르사유 즉흥극 L'Impromptu de Versailles〉은 모두 단막 토론극이다. 〈아내들의 학교에 대한 비판〉에서는 자신의 희극이 지닌 새로운 스타일의 몇 가지 원칙을 표명했고, 〈베르사유 즉흥곡〉에서는 극단의 배우분장실과 연습에 포함된 뒷얘기들을 놀랄 만큼 사실적으로 그린 연극사를 제시하고 있다. 1664년 5월 첫번째 〈타르튀프〉의 공연이 일으킨 격랑과 추문은 〈아내들의 학교〉가 일으킨 분쟁보다 휠씬 심한 것이었다. 이 위대한 작품의 역사는 몰리에르가 활동하던 당시의 여건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인내와 투지력을 입증해준다. 그는 보상을 받기까지 5년이나 기다려야 했고 극단 배우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겼고, 그것은 그의 생애 최대의 성공이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진작에 싸움을 포기했을 것이었다. 오늘날 알려진 〈타르튀프〉의 처음 3막에 해당했을 〈타르튀프〉가 초연되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연 금지령을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몰리에르는 〈동 쥐앙 Don Juan, ou le festin de Pierre〉을 무대에 올려 사태를 한층 악화시켰다. 그 볼만한 결말에서 무신론자는 지옥에 떨어지지만, 그것은 그가 실컷 즐기고 관중을 분개시킨 다음이었다. 〈동 쥐앙〉은 급한 재정적 필요에서 만들어졌으나, 값비싼 실패로 끝났다. 15회 공연된 뒤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단되었지만 몰리에르는 그것을 공연하거나 출판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 쥐앙〉은 그의 예술의 둘도 없는 본보기였다. 주인공 동 쥐앙은 극단적 귀족주의 원칙을 고수하여 부모나 의사, 상인이나 신에 대한 온갖 종류의 의무들을 거부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에 대한 의무들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순박하고 겁많고 미신적인 하인 스가나렐은 모든 면에서 그와는 반대이다. 이 두 인물은 돈 키호테와 산초에 대응하는 프랑스적 전형들이다.

당국과의 싸움에 휘말린 와중에서도 몰리에르는 극단을 혼자 힘으로 이끌어나갔다. 배우도 작가도 확보할 수 없었던 그는 더 많은 작품을 씀으로써 작가의 부족을 메워나갔다. 1664년 그는 장 라신의 첫 희곡 〈라 테바이드 La Thébaïde〉를 무대에 올렸으나, 다음해에 라신은 자신의 2번째 희곡 〈알렉산더 대왕 Alexandre le Grand〉을 몰리에르의 배우들이 공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오랜 전통을 지닌 다른 극장에 넘겼다. 몰리에르는 당국으로부터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했다. 이러한 장애들은 몰리에르에 대한 왕의 호의로 인해 어느 정도 완화되었을지 모르나, 왕의 호의란 변덕스러운 것이었다. 약속된 연금은 지불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궁정에서는 위대한 작품보다도 경쾌한 극을 원했다. 그의 극단의 수입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었다. 파리에서 보낸 14년 동안 몰리에르는 무대에 올린 95편의 희곡 중 31편을 썼다. 자신의 질병, 대왕대비의 승하에 따른 7주간의 극장 폐쇄, 〈타르튀프〉 및 〈동 쥐앙〉의 공연금지 등 잇단 불운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한 시즌(1666~67)에 5편의 희곡을 쓰기도 했다. 이 5편 중에서 〈억지 의사 Le Médecin malgré lui〉만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인간혐오자〉가 거의 처음부터 식견있는 관객들로부터 걸작으로 평가되었다. 이 작품은 별다른 출전없이 몰리에르 극단의 자체적 요소들로부터 만들어진 응접실 희극이다. 몰리에르는 몸소 알세스트 역을 맡았는데, 이 인물은 새로운 종류의 바보로서 고매한 원칙들과 엄격한 표준을 지녔으나 천성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자이다. 알세스트는 클리멘(몰리에르의 아내 아르망드가 연기했음)과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는 탁월한 희극적 인물로서 어떤 경우에도 막힘이 없는 사교계의 총아이다. 극의 구조는 시적이리만큼 단순하다. 알세스트는 우울한 얼굴로 극 전체를 휩쓸고 다니며, 어떤 '정직한' 사람도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 또한 타르튀프만큼이나 자신의 본성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에서 티끌을 찾기에만 열심이다.

교회는 몰리에르에 대한 싸움에서 거의 승리함으로써, 〈타르튀프〉를 5년간, 〈동 쥐앙〉을 평생동안 공연금지시켰다. 5막짜리 〈타르튀프〉는 1667년에 단 1번 공연되었으나 경찰총장에 의해 금지되었고, 대주교는 그것을 다시 공연하면 파문하겠다고까지 위협했다. 이에 대해 몰리에르는 다시금 왕을(심지어 전쟁터에서도) 설득하는 한편, 〈사기꾼의 희극에 대한 서한 Lettre sur la comédie de l'Imposteur〉을 발표해 자신의 극을 옹호했다. 1668년 한 해 동안 그는 〈앙피트리옹 Amphitryon〉(1. 13)·〈조르주 당댕 George Dandin〉(7. 18 베르사유)·〈수전노 L'Avare〉(9. 9) 등을 공연해 극단을 결속시켰다. 몰리에르처럼 독창적인 희극작가는 어느덧 고대의 희극적 인물인 구두쇠의 근대적 묘사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의 1668년 희극들 중 마지막 작품인 〈수전노〉는 운문처럼 읽히는 산문인데, 상투적인 상황들이 모두 재연되나, 그 정신은 몰리에르의 다른 희극들과 달랐으며 모든 사람의 기호에 맞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창조한 구두쇠는 살아 있는 역설로서, 돈에 대한 숭배에서는 비인간적이지만 존경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극히 인간적이다. 그의 광기는 잔인성과 병적인 고독, 심지어는 정신이상까지 시사하는 것으로, 이 희극은 희극에서 웃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삭막하다. 그래서 괴테는 그것을 차라리 비극적이라고도 했으나, 이전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의지의 힘은 비인간적인 목표들에 봉사하며 본능 및 극히 '인간적인' 본성에 반대된다.

희극적 요소의 기초가 되는 것은 명랑함보다는 이러한 부조리와 부조화이다. 흔히 소극(笑劇)으로 불리는 1668년의 2번째 희극 〈조르주 당댕〉은 몰리에르가 만든 가장 위대한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그 주인공인 바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면서도 지혜가 그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만일 사태가 정말로 나쁘게만 돌아간다면 현명해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자신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그는 결코 증명할 수 없다. 이 희극의 주제는 사소한 듯하나 무한한 암시력을 갖는 것으로, 전혀 새로운 범주의 희극을 제시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669년에는 웬일인지 공연허가가 얻어졌고 〈타르튀프〉의 장기공연이 시작되어 그해에만도 60회 이상 공연되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몰리에르를 곤경에 빠뜨렸던 이 희곡의 주제는 한 지방의 위선자가 그의 여주인을 유혹하는 것을 보고 얻은 듯하다. 작품의 3가지 형태 중에 마지막 것만이 전해진다. 1664년 왕 앞에서 공연되었던 첫번째 〈타르튀프〉는 3막으로 구성되었는데, 부르주아 가정에 들어간 철저한 사기꾼에게 주인이 자기 딸을 주고 자신의 아들에게서 상속권을 빼앗는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세속의 신앙지도자들이 가정에 자리잡고 생활을 훈계 지도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이 '성스러운' 인물은 고용주의 아내와 정사를 벌이다가 발각되자, 거창한 자기비난으로 위신을 회복하고 주인을 설득해 자기를 용서하게 할 뿐 아니라 가능한 한 자주 아내를 돌볼 수 있게 만든다. 몰리에르는 이 주제에서 훨씬 더 큰 희극적 가능성들을 엿보았던 듯 5막으로 확대했는데, 오늘날 남아 있는 5막짜리 〈타르튀프〉는 2개의 유혹 장면을 포함하며 타르튀프 자신의 희극적 역설(비인간적이리만큼 금욕적인 체하면서 실제로는 극히 인간적인 난봉꾼이라는)로 흥미를 옮기고 있다. 신심 깊은 자들의 마음을 거스르기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주제도 없을 것이다. 〈아내들의 학교〉의 아르놀프처럼, 타르튀프도 재치만을 믿고 본능을 잊었기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후기 희곡들

몰리에르는 〈타르튀프〉 분쟁으로 지친 나머지 반복되는 질병을 이기고 새 희곡들을 써낼 힘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상 그는 이후 4년밖에 더 살지 못했다. 그러나 1669년에는 샹보르에서 왕을 위해 〈푸르소냐크 씨 Monsieur de Pourceaugnac〉를, 1670년에는 〈부르주아 장티욤〉을 공연했다. 〈부르주아 장티욤〉은 부르주아, 즉 중·상류층의 사회적 상승이라는 당대의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그의 모든 희극들 중 가장 근대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주르댕은 불유쾌한 아첨꾼이라기보다는 어리석지만 즐겁고 순진하며 성실한 인물이다. 그의 어리석음은 그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인정많은 기질 속에 들어 있다. 이것은 몰리에르의 가장 행복한 형태의 희극이다. 남자 주인의 어리석음은 아내와 하인의 상식으로 상쇄된다.

병석에서도 창작을 계속했던 몰리에르는 1671년 〈프시케〉와 〈스카팽의 간계 Les Fourberies de Scapin〉를 썼다. 뒤이어 1672년에는 〈유식한 여자들 Les Femmes savantes〉이 나왔는데, 이런 주제는 자칫 지적인 여성들에 대한 풍자가 되기 쉽지만(어떤 이들은 몰리에르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고 생각했음) 몰리에르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유식한 아내를 은근히 두려워하는, 분별있는 부르주아를 묘사한 것이다. 〈기분으로 앓는 사나이 Le Malade imaginaire〉는 죽음과 의사를 두려워하는 우울증 환자에 대한 것으로, 몰리에르의 마지막 희극이다. 그것은 의학적 전문용어들과 직업주의의 자세한 묘사, 지식은 있으되 양식(良識)은 전혀없는 사이비 의사의 우둔함, 그리고 다른 인물들의 미신과 탐욕과 야바위에 대항하는 젊고 분별있는 연인들의 온건함 등이 어우러져 강한 효과를 자아내는 희극이다. 1673년 2월 17일 이 희곡의 4번째 상연 도중에 몰리에르는 무대 위에서 쓰러졌고 리슐리외가에 있는 집으로 실려갔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성사를 통해 배우라는 직업을 형식적으로나마 포기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2월 21일 해가 진 뒤에 예식없이 매장되었다.


배우·극작가로서의 몰리에르

몰리에르의 연기는 실망과 동시에 영광의 원천이었다. 그는 비극 배우가 되기를 원했으나 당대의 취향은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 관중은 성내고 기뻐하는 위풍당당한 비극적 문체를 선호했다. 몰리에르는 체격과 유연성, 풍부한 얼굴 표정을 지닌 타고난 희극배우였다. 무대를 떠나서는 그리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명랑하지도 않았으나, 실생활 그대로의 말씨를 모방하고 구사할 줄 알았으며 배우의 지치지 않는 원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소한 사건으로도 희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줄 알았으며 자신을 무대에 올려놓을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한 인물에게는 자신의 기침을, 다른 인물에게는 자신의 기분을 부여했으며, 실제 연습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 그가 창조해낸 위대한 희곡 속의 인물은 실제 그의 극단 멤버들과도 같다. 그가 실제로 병들어 있었을 때 병자 역을 연기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그에게 걸맞은 일이었다.

그의 연기는 창작에도 영향을 미쳐, 그는 자신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것만을 썼다. 그는 성마른 역할, 하인 역할, 오쟁이진 남편 역할, 어리석은 부르주아 역할, '몰리에르 녀석'을 저주하는 미신적인 노인 역할(찰리 채플린과의 비교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 등을 맡았다. 그에게는 동물적인 에너지나 모방에 대한 재능 이상의 무엇, 극적 비전의 강렬함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자질이 있었다. 이 점에서도 배우들은 학자들이 간과했던 그의 천재적 양상, 즉 무대 위에서의 격렬함을 재발견했다. 그의 희곡들을 이성에 대한 옹호론으로 본다면 그 생생함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의 이성은 그로 하여금 부조리한 것에 생기를 부여했다. 그의 인물들은 쉽게 흥분할 뿐만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을 정도로 흥분한다. 그는 극의 생생함과 생명감을 위해 플롯을 희생하며, 고전 작가이기는 하지만 창작의 엄격한 규칙들을 쉽사리 저버린다.

몰리에르가 이성의 냉정한 수호자이며 자신의 극에 등장하는 보다 이성적인 인물들과 관점을 같이 한다는 주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으나,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환경을 감안한다면 믿기 어렵다. 당시만 해도 희극이란 설교가 아니며, 희극에서 어떤 교훈이 얻어질 수 있다 해도 부차적 효과일 뿐 교훈주의와는 정반대된다고 생각했다. 생각들이 표현되는 것은 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이지, 작가의 견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만일 그에게 위선이나 무신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런 질문에 놀라면서 극장은 '견해'를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고 답변을 회피했을 것이다. 몰리에르가 결혼이나 교회, 지옥, 계급 간의 격차 등에 대해 자기 의견을 표명하려 했다는 증거자료는 전혀 없으며, 엄격히 말해 이런 문제들에 대한 그의 견해는 알 수 없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가 극장 안에서 극을 위해 일했고 놀라운 극적 환기력으로 그 어떤 상상적 장면에도 생기를 부여했다는 사실뿐이다. 만일 그가 무신론자에 대해 동정적인 초상을 남겼다면 그것은 자유사상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촌스러운 하인도 생생하고 동정적으로 그렸다. 그의 희곡들이 사물을 증명하고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은 그의 작품을, 작품이 지닌 환상과 상상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몰리에르의 작품이 갖는 힘은 그 언어의 창조적 활기에 있으므로, 그의 작품들을 풍속희극·인물희극·소극으로 나누는 전통적 분류는 별 소용이 없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특정한 종류의 희곡을 쓰려는 의도를 가지고 출발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강제 결혼 Le Mariage forc〉에서는 라블레의 인물 파뉘르주가 표명하는 결혼에 대한 회의로부터, 그리고 〈억지 의사〉에서는 매를 맞지 않으려고 의사인 척하는 나무꾼에 대한 중세의 우화로부터 시작한다. 그러한 대강의 골격을 기초로 하여 생동하는 인물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그 인물이 전혀 다른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처음 표현된 역할들이 역전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 극의 매력은 실제 일어나는 일보다는 지적인 리듬에, 이야기보다는 토론에 있으므로, 플롯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본질을 전달하지 못한다.


독창적 희극관

몰리에르에 대한 공격들은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명백한 미학적 진실들을 표명할 기회를 그에게 제공했다. 가령 〈아내들의 학교에 대한 비판〉에서는 비극은 영웅적일 수도 있지만 희극은 자연에 거울을 들이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려진 인물들이 살아 있는 전형들로 보이지 않는다면 희극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점잖은 사람들을 웃긴다는 것은 이상한 노릇이다." 그리고 혹자들이 작가들에게 부과하려 애쓰는 규칙들에 대해서는 "나는 기쁨을 주는 것이야말로 황금률이며, 성공하는 극은 올바른 방식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술철학,유머).

〈아내들의 학교〉에 대한 공격들은 〈타르튀프〉나 〈동 쥐앙〉이 일으킨 폭풍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 대한 공격은 시인으로부터 예술적 원칙에 관한 값진 진술들을 끌어냈다. 〈동 쥐앙〉은 공식적으로 비난된 적이 없으므로 그것에 대한 공개 답변도 없다. 〈타르튀프〉를 옹호하는 자료들로는 왕에 대한 2편의 상소문, 1669년의 초판본에 실린 서문(이것들은 모두 몰리에르의 자비로 발간되었음)과 1667년의 〈사기꾼의 희극에 대한 서한〉이 있다. 상소문들과 서문이 미학적으로 실망스러운 것은 몰리에르가 그의 적대자들이 선택한 쟁점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희극도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기(몰리에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다른 증거는 없으므로, 그가 그런 식으로 논한 것은 강요되었을 때뿐이라고 할 수 있음) 때문이다. 〈사기꾼의 희곡에 대한 서한〉은 훨씬 더 중요한 자료로서, 의미심장한 몇 줄 속에 〈타르튀프〉뿐만 아니라 몰리에르의 새로운 희극 개념의 미학적 기초를 표명하고 있다.

"희극적인 것이란 자연의 혜택이, 우리가 그것을 보고 피할 수 있도록, 모든 비이성적인 것에 부여한 외적이고 가시적인 형태이다. 희극적인 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이성적인 것을 알아야 하는 바, 희극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의 부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부조화야말로 희극적인 것의 핵심이다. 따라서 모든 거짓말, 위장, 속임수, 가장, 사실이 아닌 모든 외적인 현시, 단일한 근원에서 나오는 행동들간의 모든 모순,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희극적이다."

여기에서 몰리에르는 희극적인 것에 대해 자신의 개념이 갖는 새로운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희극이란 현명한 것과 어리석은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 생겨나는 항구적인 이중성에 기초하며, 우스움이란 우발적 효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희극관이야말로 그의 창안이고 그의 영예이다.

몰리에르의 주요한 기술적 양태는 여러 층위 내지는 문맥을 뒤섞는 것이다. 인물들은 한 가지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잊어버린 듯 엉뚱한 때에 나서며 역할을 과장되게 연기한다. 그래서 이러한 부수적 전개에 주의하는 사람은 뒤섞인 층위들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된다. 〈억지 의사〉에서 사람을 두드려패 의사인 척하게 만든다는 발상은 그리 세련되지 못한 것이지만, 몰리에르는 이러한 발상을 가지고 놀듯 나무꾼으로 하여금 새로운 역할을 즐기고 전문용어들을 주워섬기다가 나중에는 그것을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든다. 그는 히포크라테스에 대해 공허한 말을 지껄이고, 라틴어를 모르는 환자를 만나자 말뜻에 신경쓸 필요가 없으므로 기뻐한다. 오른쪽에서 심장을 찾다가 실수를 들킨 그는 저 유명한 대사로 태연자약하게 대꾸한다. "우리가 그걸 다 바꿔놓았다오." 돈을 강탈당한 구두쇠는 비감하지만 그가 내뱉는 부조리한 언어는 비감하기는커녕 웃음을 자아낸다. "……다 끝났다……나는 죽는다……나는 죽었다 ……나는 묻혔다." 그는 그렇듯 불합리하고 과장된 어조로 정의를 요구하며 법정들을 고발하겠다고 위협한다. 몰리에르의 〈인간혐오자〉는 이상으로서의 정의와 사회제도로서의 정의가 어떻게 뒤섞이는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정의를 내 곁에 두었는데도 재판에서 졌다!" 자신에게는 세계질서의 수치라고 생각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의 머리가 돌았다는 증거일 뿐이다. 몰리에르의 극적 언어는 그러한 간결성을 얻고 있다.


프랑스적 천재

볼테르가 몰리에르를 "프랑스의 화가"라고 한 것은 그의 희극들이 그리고 있는 프랑스적 태도의 범위를 시사해준다. 그때문에 프랑스인들은 그를 특별한 의미에서 자신들의 작가라고 생각하며 그에 대해 각별한 흥미를 가져왔다. 그들은 외국인들이 간과하기 쉬운 몰리에르 작품의 양상들을 강조하는데, 그중에서 3가지가 주목할 만하다.

첫째, 그의 작품들은 고도의 형식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결코 사실주의(있는 그대로의 삶)만을 제시하지 않으며, 거기에 항상 빛과 운동, 음악과 춤과 언어를 융합하는 양태와 형식을 부여한다. 그의 극에서 막간극을 생략하는 현대 제작들은 본래의 효과를 상실한 것이다. 인물들의 이합집산, 장면과 대사들의 배열, 희극적인 대화들도 사실주의를 무시하고 이루어진다.

둘째, 외국인들이 심리학을 보는 곳에서 프랑스인들은 시를 본다. 그들은 그의 희곡들을 사회적 광기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사상들을 잠깐 스쳐 요점을 만들어내는 환상의 양태라고 본다. 〈인간혐오자〉는 사례연구나 프랑스적 '햄릿'이 아니라 교묘하게 어우러진 목소리들과 태도들의 합창으로서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을 싣는다. 그의 희곡은 그 중심주제를 끊임없이 환기함으로써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말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여서, 이상주의적이거나 중상모략적이거나 거칠거나 원한에 차 있거나 또는 단순히 어리석다.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몰리에르의 뛰어난 점은 사회 내에서 자기중심성이라는 신비를 희롱하는 이러한 환상에 있다.

셋째, 프랑스에서 높이 평가되는 몰리에르의 자질은 인간의 여러 측면을 보편적 인간으로부터 구별해내는 그의 지적인 예리함이다. 몰리에르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16세기의 수필가 몽테뉴는 지식이나 예의, 기술처럼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자질들과, 인간성·동물성처럼 다른 수식 없이 '인간 본성'이라 할 만한 것을 구별한 바 있다. 몰리에르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을 대비하기를 즐겼는데, 그의 극에서는 종종 사회적 표피가 벗겨져나가고 진짜 인간이 나타나며 극 중의 많은 대화들은 예의바르게 시작하여 공공연한 모욕으로 끝나기도 한다.

몰리에르는 여러 가지 형태로 자연과 재치를 대립시켰다. 그의 희극들은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그 너머의 것까지도 포함하며, "그건 상식에 어긋나는데요, 하지만 어떻든 사실은 사실이지요"라고 〈앙피트리온〉에서 매맞은 하인이 말하듯이 이성과 사실이 양립하는 적은 별로 없다.

W. G. Moore 글
엠파스백과사전 발췌









 타르튀프 [Le Tartuffe]


타르튀프는 프랑스어에서 위선자라는 보통명사로 사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몰리에르의 전성기의 작품인데 희극으로 분류된다.
 1664년, 베르사유 궁전의 축제에서 <사기꾼>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보수적-종교적 세력의 압력에 의해 루이 14세는 이 극을 금지시킨다. (당시 교회의 고위 교직자들의 부패 ·타락한 생활을 폭로한 대담한 희극이었기 때문) 1667년, 몰리에르는 이 극을 다른 이름으로 팔레-르와얄에서 공연하였지만, 첫 공연 이후 다시 금지되고 만다. 이제 파리의 대주교는 이 극을 읽기만 하는 자도 파문하겠다고 협박했다. 1669년의 개작본에서야 비로소 왕의 공연허가가 주어졌고, 그 후 커다란 성공을 하게 된다. 초판에서는 따르뛰프가 성직자였지만, 개작본에서는 몰락한 귀족으로 바뀌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양심의 감독자directeur de conscience“라는, 신앙과 생활방식에 대한 조언자들이 높은 존경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었는데, 몰리에르는 바로 이런 자들을 풍자하고 있다. 경건함의 명목 하에 일어나는 기만적인 행위들을 탄핵하고 있는 것이다.
 따르뛰프는 예수회의 행동지침론Kauikstik이나 신비적 신학에 능통한 자로서,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좇아 충실한 가장이었던 오르공에게 영향을 미쳐 그의 재산을 빼앗고 그의 딸과 결혼하려 하고, 심지어 그의 아내에게 접근하기까지 한다. 오르공의 아내가 결국 계책을 써서 오르공이 숨어있는 장소에서 따르뛰프로 하여금 자신에게 육체적으로 접근하게 함으로써 오르공은 눈을 뜨게 되지만, 이미 그의 재산은 따르뛰프에게 넘어간 상태다. 거의 시민비극으로 끝날 뻔한 무대의 사건은 왕의 개입을 통해 따르뛰프의 정체가 폭로됨으로써 해피 엔드로 끝난다. 여기서 왕은 Deux ex machina의 기능을 하는 것인데, 이런 결말은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이 극에서 오르공의 처남인 끌레앙뜨는 이성종교의 이상을 체현하고 있다.
 집중된 줄거리와 인물묘사, 운문의 기술 등의 면에서 이 작품은 몰리에르 예술의 정점을 이룬다고 평가되고 있다. 3막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따르뛰프의 성격은 등장하자마자 하는 몇마디의 말을 통해 이미 탁월하게 묘사된다. 다른 인물들의 묘사도 생동감이 넘친다. 이런 장점들은 이 극이 오늘날까지 자주 공연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타르튀프 [Le Tartuffe] 전문읽기

more..



Trackback Address :: http://dext.tistory.com/trackback/85 관련글 쓰기








▣  나치즘과 파시즘 - 지식만물전 - 2007/06/24 17:39





나치즘과 파시즘






나치즘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군대를 사열하는 히틀러(1939)

국가사회주의 [國家社會主義, National Sozialismus]
(영)National Socialism/Nazism/Naziism. Nazismus

: 독일의 나치당 당수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전체주의 운동.



 열광적인 민족주의, 대중선동, 독재적 지배 등 이탈리아 파시즘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그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훨씬 더 극단적이었다. 독일에서 생겨나 히틀러의 독특한 성격을 통하여 구체화되었다.

 국가사회주의는 독일 특유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뿌리의 일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대제, 오토 폰 비스마르크밑에서 발전된 프로이센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전통은 프로이센 군대의 호전성과 규율을 공사(公私)의 본보기로 삼았는데, 여기에 정치적 낭만주의의 전통이 가미되면서 합리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원칙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본능과 과거를 강조하며 특출한 개인이 모든 보편적 원칙과 규범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선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 두 전통은 선악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난 19세기의 과학정신에 의해 보강되었으며, 콩트 드 고비노, 리하르트 바그너,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과 같은 19세기 지성인들에 의해 더욱 굳건해졌다. 이들은 북방민족(게르만족)이 다른 모든 민족에 비해 인종적·문화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으로 초기 국가사회주의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독일 전통의 흐름에 덧붙여 지적되어야 할 것은 히틀러 자신의 지적 관점이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정치적 운동, 특히 범게르만 팽창주의반유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히틀러의 열광적인 민족주의, 슬라브족에 대한 경멸, 유대인에 대한 혐오 등은 여러 인종이 한데 뒤섞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의 거리에서 실패한 예술가로 힘들게 살아가던 젊은 시절의 경험에서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그로 인해 특히 하류층에서 일어난 환멸과 빈곤, 좌절이 없었던들 그의 지적 준비만으로 결코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가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한 베르사유 조약(1919)은 독일의 참여없이 작성된 것으로서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의 포기를 강요하여 독일인들의 반발을 샀으며, 히틀러는 이들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당시 항간에는 1918년 11월 11일의 휴전은 전투중지에 관한 동의일 뿐 무조건 항복의 수락이 아니며 독일의 패전은 베르사유에서 외교관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히틀러의 재무장요구와 배신행위에 대한 복수의 선동은 처음부터 군부의 호응을 얻었고, 독일 군부는 평화를 단지 영토확장계획의 일시적인 후퇴로 간주했다. 1923년의 치명적이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은 많은 중산층의 저축을 폐지더미로 만들었고 대중의 소외감과 불만을 가중시켰다. 히틀러는 범게르만적 열망에다 게르만 민족의 사명에 대한 거의 신비적인 광신과 열렬한 사회혁명의 복음을 덧붙였다. 이 복음은 히틀러의 개인적 성서와도 같은 〈〈나의투쟁〉Mein Kampt〉(1925~27)에 전모가 드러나 있으며, 그는 이 책에서 인종과 선동에 관한 이론 및 실천을 개관하고 있다.

 히틀러는 러시아의 볼셰비즘에 대한 보편적인 공포심을 이용해 처음에는 독일에서 그리고 나아가 세계적인 규모로 볼셰비즘에 대항할 동맹세력을 형성했으며, 이를 통해 국가사회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많은 보수세력의 지지를 확보했다. 히틀러가 국가사회주의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심리와 대중선동에 대한 깊은 이해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선동은 대상으로 삼는 대중들 가운데 가장 지적 수준이 낮은 집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성공이라는 기준에 비출 때 내용의 진실성이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질적인 적대자들을 하나의 범주로 통합시키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의 천재성 가운데 하나이다. 그 이유는 연약하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은 적(敵)이 여럿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쉽게 자기들의 정당성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유대인에게서 이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그는 유대인을 볼셰비즘과 동일시하여 일종의 우주의 악(惡)으로 규정했다. 유대인들은 그 종교 때문이 아니라 인종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차별되어야 한다. 국가사회주의는 유대인이 교육적 수준과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근본적으로 게르만족과 다르며, 영원히 게르만족에 해롭다고 선언했다.

 국가사회주의는 보수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급진주의 사이에서 조화를 모색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로 나쁜 의미에서이지만 철저한 혁명운동이 되었다. 합리주의·자유주의·민주주의·법치주의·기본적 인권 및 국제협력과 평화에 관한 모든 노력을 거부했으며, 그대신 본능과 국가에 대한 개인의 종속, 위로부터 임명된 지도자들에 대한 맹목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복종 들을 강조했다. 또한 개인이나 종족은 원래가 불평등하며, 따라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사회주의는 엄격하고 잔인한 정책들을 추진하여 경쟁상대가 되는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조직들을 억압하거나 제거하려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부적격자와 낙오자들을 운동에 끌어들임으로써 부분적으로 계급적 차이를 없애기도 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뮌헨의 한 지하 맥주홀에서 보잘것없이 출발한 나치당을 20년 뒤에는 세계정치를 좌우하는 주도적 정당으로 부상시켰다. 나치당은 1919년에 설립되어 1920년 이후 줄곧 히틀러가 주도했으며, 1933년 집권당이 된 이래 1945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할 때까지 전체주의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



 국가사회주의의 역사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1934~39년은 나치당이 독일 전역을 완전히 통제하고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 운동이 대다수의 독일인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시기이다. 독일국민은 당파 싸움과 경제적·정치적 불안정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의 무질서한 자유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결단력을 가진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환영했다. 1934년 이후 대규모 공공사업과 갑자기 늘어난 군수공장으로 실업자들이 흡수되면서 끝없이 치솟아가던 실업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독일인들은 위대한 독일을 지향한 이 질서정연하고 목적의식이 뚜렷한 대중운동에 휩쓸려들어갔다. 대공황으로부터의 경제회복과 독일 민족주의에 대한 강렬한 믿음은 국가사회주의가 커다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였다. 히틀러는 1934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초반까지 외교적인 승리를 거듭하고 주변지역을 점령해감으로써 반대세력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독일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했다.

국가사회주의의 이면에는 대중조작과 강압정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치 정부는 모든 문화·정보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선동을 계속했으며 군중집회와 휘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제복을 입은 요원들로 그 절대권력을 내보이려 했다. 선전기구 밑에는 비밀경찰과 집단수용소를 핵심으로 하는 테러 조직이 있었다. 이들은 독일국민의 반유대 감정을 부채질하여 유대인을 공포와 혐오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기만적인 선전으로 모든 사회계급의 적으로 내몰았다

주요 통제기구는 하인리히 히믈러와 그의 선임부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휘하에 통합된 비밀경찰, 보안대 그리고 친위대(SS) 조직 들이었다. 반정부 세력은 철저한 폭력에 의해서, 또는 많은 경우 탄압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부터 거세되어갔다.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의 적으로 몰렸고 종종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밀고자가 되기도 하는 잘 짜여진 감시망 때문에 시민들은 표현과 행동을 매우 조심해야만 했다. 정의는 더이상 목적이 되지 못하고 이른바 국민의 요구와 이익이라고 하는 것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정상적인 사법절차는 무시되고 특별수용소가 세워졌으며, SS는 법을 뛰어넘는 권한을 휘두르며 잔학행위를 저질렀다.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공산 러시아를 능가하는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무단독재였다.

 1938~45년은 국가사회주의가 대외적으로 세력을 확장했던 시기였다. 영토확장은 1938년까지 독일어권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이듬해부터는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는 민족들도 나치 경찰국가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계획에 따른 논리적인 결과였다. 히틀러는 집권 초기에 장래의 세계지배를 위한 군사력 및 공업력 강화에 주력했고, 외교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듭하면서 신속하게 목표를 성취해갔다. 첫번째 목표는 민족자결주의를 바탕으로 모든 게르만의 후손을 조국으로 결집시키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폴란드와 슬라브 국가들을 정복하여 생존권(Lebensraum) 혹은 대경제권(Grosswirtschaftsraum)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게르만족은 경제자립을 이루며 군사적인 요충지로서의 충분한 터전을 확보한다는 목표였다. 독일인은 위계질서의 정점에 있는 지배민족으로서 예속민족을 조직, 그 자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수행한 1939~41년의 군사작전이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자 히틀러의 계획은 유럽·서아시아·아프리카를 포함하게 되었고 마침내 전세계적인 지배체제를 꿈꾸게 되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희망은 거의 6년간의 전쟁 끝에 1945년 독일의 패전으로 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떤 의미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되풀이한 것이었다. 즉 전쟁 초기에 독일은 대단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결과 대규모의 대(對)독일연합전선이 만들어졌고, 독일은 무절제한 행위와 욕심 때문에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대중운동으로서의 국가사회주의는 1945년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의 포로가 되기 전에 자살함으로써 사실상 파국을 맞이했고 제3제국의 폐허 위에 분단독일이 생겨났다. 히틀러가 죽은 뒤에도 국가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일부 독일인들이 몇 차례 조직의 재건을 시도한 바 있지만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이미 호의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






파시즘
[Fascism]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럽 최초의 파시스트 지도자 무솔리니

 이 운동은 1922~43년 이탈리아, 1933~45년 독일, 1939~75년 스페인 정계를 지배했으며, 그밖에도 여러 시대에 다른 몇몇 나라들을 지배했다. 일반적으로 모든 국가주의적 전체주의 운동이나 그런 정부를 가리킬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이탈리아어 '파시스모'(fascismo)는 라틴어 '파스케스'(fasce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 말은 고대 로마에서 권위의 상징이었던 도끼를 포함하여 느릅나무나 자작나무 가지의 묶음을 의미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1919년에 이탈리아 파시즘 운동의 표상으로 이 상징을 채택했다.

파시즘은 모든 형태에 있어서 주요한 특징들을 보여 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국가의 절대 우위이고, 다른 특징들은 모두 여기에서 유래한다. 개인의 뜻을 굽혀 국가가 명시한 대로 국민의 통합된 뜻에 따르고 국가를 상징하는 보통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 파시즘의 특징이다. 또한 군사적 가치관과 전투 및 정복을 찬양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합리주의 및 부르주아적 가치관은 낮게 평가한다. 무솔리니가 로마 제국의 '부활'을 예언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가나 민족을 신성한 것으로 받들고 그 운명을 선언하는 파시즘의 표현에는 대개 신비주의의 요소가 짙게 배어 있다.

 이탈리아 파시즘은 무능한 정부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지도자,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탈리아를 괴롭힌 혼란한 경제상에 대한 많은 국민의 환멸 속에서 자라났다. 이런 상황은 권위주의, 특히 군사적 덕목을 찬미하는 정치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시인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는 이 시기에 모험과 갈등 및 전쟁을 높이 찬양한 수많은 지식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19년에 단눈치오는 피우메 시(지금의 크로아티아 리예카)를 점령하고 16개월간 그곳을 통치했다. 같은 해 무솔리니는 밀라노에서 파시즘 조직을 만들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파시 데 콤바티멘토'라고 불렀다. 이 정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맨 처음 일어난 획기적인 사건은 1922년 10월 28일의 로마 행진이었다. 무솔리니와 검은 셔츠를 입은 추종자들은 무솔리니를 총리로 임명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무력으로 정부를 무너뜨리겠다고 협박하면서 로마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국왕은 이에 굴복했고, 이튿날 무솔리니에게 정부 구성을 요청했다. 곧 무장한 파시스트 집단은 좌익정당들의 본부를 습격하여 당원들을 폭행하기 시작했고,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무솔리니는 이듬해 1월에 파시스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불법화하고, 그때부터 이탈리아를 전체주의 국가로 다스렸다.




 

━━━━━━━━━━━━━━━━━━━━━━━━━━━━━━━━━━━━




 독일에서 일어난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나치) 운동은 이탈리아보다 훨씬 가혹한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 속에서 싹텄고, 보다 강력한 반자유주의적 국가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히틀러의 계획은 많은 점에서 무솔리니와 달랐고, 특히 국가적·인종적 힘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훨씬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특정한 정치적 견해에 대한 표현은 기본적으로 비슷했다. 스페인에서는 급진적 공화당 정권에 대항하는 내란이 끝난 뒤 팔랑헤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이 파시스트 세력이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가능했고, 그에 따라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맛보았던 의회 의석 확보의 실패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국민의 뜻과 주체성의 화신인 천황의 존재와 강한 군국주의 전통이 1930년대 파시즘 운동이 발전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제공해주었다. 1930년대 일본의 많은 지식인들은 서구화의 영향을 거부하고 예로부터 내려오는 고유한 종교와 윤리 및 무사적 전통의 가치관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특별한 가치관의 전형으로서 뿐만 아니라 미개한 민족을 정복하여 그 가치관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비준자로서의 임무가 세계 내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



사진1 : Copyright © Heinrich Hoffman, Munich
사진 2 : Copyright © H. Roger-Viollet
본문은 상당량 엠파스 백과사전에서 발췌






Trackback Address :: http://dext.tistory.com/trackback/75 관련글 쓰기
  1. 빨강머리앤 2007/08/22 09:51 수정/삭제 댓글에댓글달기

    블로그 구경잘 하였습니다. 블로그에 필요한 동영상, boom4u.net 도 구경 오세요~~

  2. 고마워요! 2009/01/16 10:33 수정/삭제 댓글에댓글달기

    오오, 나치즘 파시즘에대해 많이 해깔렸는데 덕분에 많은 자료를 얻었습니다. 고마워요!!










articles
recent replies
recent trackbacks
notice
Admin : New post
BLOG main image
조용히 혼자 누릴 수 있는
0 41,116
  rss skin by  m22m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